HBM(High Bandwidth Memory)이 가진 시장 가치가 치솟고 있다. 최근 반도체 시장이 호황에 접어들면서, HBM은 AI 반도체에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더욱이 HBM을 원하는 시장 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HBM을 생산하는 주요 기업의 행보도 연일 뉴스거리다. HBM3E 납품을 시작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아직 HBM3E 검증기간을 거치는 삼성전자가 그 주인공들이다. 업계에서는 주요 고객사로 납품되는 5세대 HBM3E을 넘어 6세대 HBM4의 향방을 점치고 있다.
수출, 고객 수요에서 영향력 확대되는 HBM
국내 수출 부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단연 반도체다. 반도체 안에서도 메모리 반도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HBM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에 따르면, 6월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134억2000만 달러였으며, 이중 HBM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은 88억 달러로, 반도체 수출에서 65.8%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시스템 반도체 수출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증가하는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AI 성능 개선을 위해 요구되는 HBM의 수요 증가와 D램과 낸드플래시 평균판매단가 상승 등이 주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HBM 수요 확대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막대한 호재로 작용했다. 양사는 모두 개선된 2분기 실적을 올렸으며, 3분기 이후 시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분기 매출 74조 원, 영업이익 10조4000억 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한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DS 부문 매출을 약 28조 원대로 예상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2분기 매출 16조1886억 원, 영업이익 5조1923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전년도 2분기에는 2조8821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바 있는데, 1년 만에 큰 폭으로 개선된 것이다.
HBM 수요는 주요 빅테크 AI 서버에 공급됨으로써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포스가 공개한 최신 AI 서버 산업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출하량 전망치는 전년 대비 41.5% 성장한 167만 대로 상향 조정됐다. 트렌드포스는 “CSP 및 브랜드 고객으로부터 AI 서버 수요는 올해 지속될 것이다. 특히 올해 주요 CSP가 AI 서버 조달에 꾸준히 예산을 집중하는 반면, 일반 서버 성장 모멘텀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렌드포스는 “AI 서버 시장 가치는 올해 1870억 달러를 넘어 6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체 서버 시장 가치의 65%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성기 누리는 HBM3E ‘벌써부터 완판’
현존하는 HBM 중 가장 진보된 제품은 5세대인 HBM3E다. 한 예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높은 수요를 차지하는 엔비디아의 ‘H100’에 HBM3E이 탑재된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H100에 80GB HBM3가 탑재되며, 내년 출시를 앞둔 엔비디아의 블랙웰 울트라와 AMD의 MI350는 최대 288GB의 HBM3E가 탑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HBM 공급량이 2025년까지 두 배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HBM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은 SK하이닉스다. 지난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세계 HBM 시장 점유율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가 38%,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9% 순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HBM3E 8단 양산에 돌입하며 엔비디아에 가장 먼저 납품을 시작해 화제를 모았다. SK하이닉스는 오는 3분기에 HBM3E 12단 양산도 준비하고 있다. 차지하는 비중이 증명하듯이, SK하이닉스가 보여주는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자사 HBM이 올해 이미 완판 상태며, 내년 물량 또한 대부분 완판됐음을 밝혔다. 업계에서도 SK하이닉스가 생산 규모, 수율 등의 측면에서 타사 대비 나은 경쟁력을 보유했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특히 80%에 근접한 HBM3E 수율이 강점으로 손꼽히며, 당분간은 선두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HBM3E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여부가 연일 관심사에 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HBM에 대한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준 상황에서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HBM3E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가 관측됨에 따라, 양산 시기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의 몇몇 공급망 파트너사가 최근 빠른 주문과 용량을 예약하라는 정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HBM 양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3E 8단·12단 제품 모두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삼성전자가 HBM3E 12단에 대한 퀄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역전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차기 경쟁무대 될 HBM4, 어디까지 왔나
HBM3E를 넘어 6세대 제품인 HBM4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JEDEC솔리드스테이트기술협회(이하 JEDEC)에서 HBM4 표준 규격이 거의 완성됐음을 밝혔다. JEDEC은 반도체와 관련된 제품의 규격을 표준화하는 기관이다. JEDEC는 HBM4 표준 제정에 있어 개선된 대역폭 및 전력 소비, 데이터 처리 속도 향상 등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단수 또한, 현존 최대 높이인 12단에서 16단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차기 전장인 HBM4를 두고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양사의 사업 전략은 치밀하게 진행 중이다. HBM4부터 TSMC와의 협력을 강화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맞춤형 HBM 개발에 나선다. SK하이닉스는 HBM4부터 성능 향상을 위해 베이스 다이 생산에 TSMC의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하고, HBM4를 2025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양산 일정 또한 2026년에서 1년을 앞당김으로써 주요 고객사에 대한 물량 확보를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 7월 HBM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HBM 개발팀을 신설했다. HBM 개발팀은 HBM3와 HBM3E뿐 아니라 HBM4 기술 개발까지 바라본다. 삼성전자 역시 커스터마이징된 HBM을 주목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파운드리 포럼을 통해 16층 HBM4 생산을 위한 계획 준비에 착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