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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그 다음은?Ⅰ] 폐배터리 시장, 꼭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전기차 폐배터리 처리사업,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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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티 이동재 기자 |

 

 

지난 11일 막을 내린 국내 최대 이차전지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1’에서 참여기업들의 부스를 둘러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업계 경영진들이 가장 처음 방문한 부스는 LG에너지솔루션도, 삼성SDI도, SK이노베이션도 아닌 성일하이텍이었다. 성일하이텍은 사용 후 배터리에서 황산코발트, 황산리튬, 황산니켈 등의 원재료를 추출해 배터리 제조사에 되파는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이다.

 

관계자들은 이날 문 장관과 업계 인사들이 한국 대표 배터리 3사가 아닌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을 가장 먼저 방문한 것을 두고, “최근 배터리 기업들이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폐배터리 처리가 중요한 이유, 향후 수거 전망

 

유럽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덮은 탄소중립 구호는 친환경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촉발했다. 순식간에 다크호스로 떠올라 주식시장의 괴물이 된 테슬라 이외에도 기존의 기라성같은 완성차 업체들까지도 연달아 탈탄소 동참을 선언하며 내연기관차의 생산 비중을 낮추고 전기차 개발에 뛰어드는 등, 전기차 시장은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역시 배터리다. 지난 100여 년 간 인류의 생활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기 위해 전기차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주행거리, 충전, 안전성 등의 문제는 모두 배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들이다. 배터리의 성능이 곧 전기차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할 만큼,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산업 생태계에서 단연 가장 핵심적인 산업 분야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우리 기업들을 비롯, 파나소닉, CATL 등 글로벌 배터리 제조 기업들은 시장 규모의 팽창을 등에 업고, 연일 유례 없는 성장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세계 각국에 신규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65.9GWh로 전년 동기 대비 2.4배 이상 급증했다. 선두를 달린 CATL만 놓고 보면, 작년 동기간 5.5GWh의 배터리 사용량이 올해 21.4GHw까지 늘었다. 성장률로 보면 285.9%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이다.

 

 

이렇듯 인류사회는 전에 없이 많은 양의 고용량 배터리를 매일매일 양산해내고 있다. 문제는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라는 것이 아무리 충전이 가능한 이차전지라 해도, 결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고, 충전·방전 횟수에 제한이 있는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현재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일반적으로 500회 정도 충전하면 급격히 성능이 저하된다. 급속충전을 할 경우, 성능 저하가 훨씬 빠르다. 지난 2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진이 대용량 전기차 배터리를 400회 이상 고속충전해도 성능과 용량을 유지할 수 있는 첨가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첨가제를 사용한 배터리가 400회 충·방전 후에도 처음 용량의 81.5%를 유지해, 상용화된 첨가제보다 10~30% 향상된 성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첨가제의 성능 개선으로 배터리의 수명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첨가제를 개발해낸다 해도, 사람의 수명이 유한하듯, 모든 배터리는 반드시 소모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폐배터리는 산화코발트, 리튬, 망간, 니켈 등을 1% 이상 함유한 유독 물질이다. 전기차에서 나오는 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할 경우, 심각한 환경오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친환경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전기차 산업이 오히려 또 다른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영국 버밍엄대학의 재료공학과 교수 폴 앤더스 박사는 과거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폐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선 직면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미국에서만 올해까지 약 5억개의 리튬이온배터리를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친환경차 폐배터리가 2024년에 1만여개, 2040년에는 245만여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폐배터리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ing)’, 해외 폐배터리 사업 현황

 

전기차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평가 방식이나 기준이 없다.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방식의 재활용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전기차 폐배터리를 폐기하지 않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전기차에서 회수한 폐배터리를 재정비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재사용(reuse)’과 배터리를 분해해 원재료인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recycling)’이 그것이다.

 

배터리 재사용의 경우, 전기차에 사용되는 고용량의 배터리가 많은 양의 에너지를 담아야 하는 ESS(에너지저장장치)와 구조상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특히 ESS 산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김연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배터리 재사용 사업은 배터리 팩을 일부 개조하거나 기존 팩 형태 그대로 ESS에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재활용처럼 모듈과 셀 단위 해체가 필요하지 않아 안전하고 추가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자동차 OEM 및 배터리 업체들의 신규 사업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의 배터리는 성능이 70~80%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폐배터리로 분류되는데, 충전 능력이 70%대를 유지하는 배터리는 ESS로 재사용이 가능하다.

 

 

폭스바겐, BMW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ESS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등 폐배터리를 분류해 재사용하는 사업을 이미 시작했다. 국내에선 올해 초, 현대차가 화학회사 OCI와 손잡고 전기차 폐배터리를 태양광 발전에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 울산공장 내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전기차 폐배터리를 모아 만든 2MWh급 ESS에 저장한 뒤 다시 외부로 전력을 공급하는 친환경 발전소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현대자동차, KST모빌리티 등과 폐배터리를 매입해 안전성‧잔존가치 등을 분석 후 ESS로 제작하는 방안이 포함된 ‘전기택시 배터리 대여 및 배터리 재사용 실증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는 재작년 전기버스에 들어갔던 사용 후 배터리를 전기차 충전용 ESS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재사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에 지분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한편 배터리 재활용(recycle)은 분류, 파쇄, 용융 등의 공정을 통해 폐배터리를 완전히 분해해 추출한 원재료를 신규 배터리 생산에 재투입하는 것이다. 수명을 다한 리튬 배터리를 재활용하려면 수백개의 리튬 셀을 일일이 분해하는 공정을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대량 방출되거나 폭발할 가능성도 있어, 현 수준의 기술로는 재활용이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리튬이온 배터리의 재활용 비율이 5% 수준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지만, 많은 기업들이 향후 배터리 생산에서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데서 미래 사업성을 보고 점차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배터리 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0%에 달한다. 거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용량 배터리의 수요 증가에 따라 원재료의 가격이 불안정한만큼, 폐배터리 재활용이 활성화된다면 배터리 제조기업 입장에서는 생산과정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독일 화학기업인 뒤젠펠트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분쇄물질과 전해질 중 하나만 남을 때까지 분해해 파쇄된 재료로부터 흑연, 망간,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의 원료를 얻는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과정을 통해 모든 배터리 구성요소의 96%를 재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잘츠기터에 배터리 재활용 시범공장을 지었다. 공장에서는 폐배터리를 분류해 충전 능력이 70% 이상인 배터리는 전기차 충전기용으로 재사용하고, 그렇지 못한 배터리는 파쇄한 뒤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을 추출해 신규 배터리 생산에 투입한다.

 

폭스바겐 측은 "리튬, 니켈 등의 광물은 조달은 물론 폐기하는 것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도 2030년까지 새롭게 생산하는 배터리의 50%를 폐배터리 재활용 소재로 만들기 위해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노스볼트는 "2022년부터 해당 공장에서 연간 2만5000톤의 폐배터리를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폐배터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존 배터리 제조기업이나 완성차 회사들이 아닌 배터리 재활용에 주력하는 스타트업들도 등장했다.

 

테슬라 공동창업자인 JB 스트라우벨이 설립한 ‘레드우드 머티리얼(Redwood Materials)’은 미 네바다주에 위치한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받은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원재료를 되파는 재활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에너지 펀드인 BEV(Breakthrough Energy Ventures)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폐배터리 관련 국가 정책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국은 2017년 친환경자동차 생산·판매량이 각각 79만4000대와 77만7000대로 집계돼 내년부터 폭발적인 전기차 배터리 교체기를 맞게 된다. 중국자동차기술연구센터는 2025년 국내에서 발생되는 폐배터리가 35만톤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배터리연맹에 따르면 올해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약 65억 위안(한화 1조1000억 원)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판매업체가 배터리 회수에 관한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 구축에 나섰다. 수십만 톤 규모의 폐배터리 회수 및 재활용을 관리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시성, 상하이시 등 17개 성‧시를 시범지역으로 정해 각 지역마다 재활용센터를 세우고 배터리 제조사 및 중고차 판매상, 폐기물 회사와 공동으로 회수 및 재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독일의 경우, 일찍이 2009년부터 배터리 수거 의무를 규정하는 신배터리법을 도입했다. 배터리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 유통업체에 노후한 배터리의 회수와 재활용에 대한 의무를 지운 것이다. 

 

미국도 폐배터리 재활용에 손을 걷어붙였다. 지난 5일 외신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강국’ 전략에 국내 배터리 재활용 촉진이 포함될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언급을 보도했다. 폐배터리 재활용 연구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르곤 국립연구소의 주도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르곤 연구소는 배터리 음극과 다른 배터리 부품을 재활용하는 것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지난해 말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면서 올해부터 폐배터리를 빌려쓰거나 재활용하는 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네비건트 리서치는 향후 중고 배터리 거래가 활성화될 경우 관련 시장 규모가 2035년에는 30억 달러(한화 약 3조5600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 시장 전망

 

한편, 폐배터리 시장은 2025년 이후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전기차 시대를 연 테슬라가 2012년 처음 선보인 전기차 ‘모델S’의 폐배터리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019년 200만 대, 지난해 250만 대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2025년을 기점으로 폐배터리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은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19년 기준 15억달러(약 1조6500억 원)에서 2030년에는 180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까지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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