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현지시간) 나흘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조지 R. 브라운 컨벤션 센터(George R. Brown Convention Center)에서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Dassault Systèmes 3DEXPERIENCE World 2026 이하 3DXW 2026)’이 전개됐다.
본 행사는 키노트, 라이브 데모, 대규모 전시장 등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글로벌 컨퍼런스의 아키텍처를 갖추며 막을 올렸다. 그러나 무대 뒤를 관통하는 어젠다는 명료했다. 피지컬 AI(Physical AI), 산업용 월드 모델(Industrial World Model), 버추얼 동반자(Virtual Companions), 그리고 글로벌 경진대회까지. 미래형 제조 생태계를 위한 기술 설계도였다.
“인공지능(AI)과 가상 공장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떤 영역을 인간의 고유한 판단으로 남겨둘 것인가”
피지컬 AI, 공장을 통째로 가상 환경에 집약하는 新 성장동력
사측이 올해 내세운 피지컬 AI는 현실의 설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버추얼 트윈 공장(Virtual Twin Factory)’이 주요 콘셉트였다. 이는 공정·품질·운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공장(AI Factory)’을 결합한 메커니즘이다.
버추얼 트윈 공장은 실제 현장을 3차원(3D)으로 모사하는 ‘디지털 육체’고, 인공지능 공장은 그 안에서 흐르는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찾아내는 ‘산업용 두뇌’다. 이러한 기술 접근법은 제조 끝판왕으로 기대받는 ‘자율제조(Autonomous Manufacturing)’의 실질적인 토대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묘사됐다.
이 구조를 산업 전반으로 확장한 것이 엔비디아(NVIDIA)와 함께 선언한 산업용 월드 모델이다. 자사 가상 환경 방법론인 버추얼 트윈(Virtual Twin) 플랫폼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의 범용성을 부각했다. 동시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컴퓨팅 인프라를 결합해, 물리 법칙이 실시간으로 지배하는 디지털 제조 세계를 구현하겠다는 청사진을 구체화했다. 이는 특정 라인이나 장비에 머무르지 않고, 설계·생산·물류·서비스에 이르는 산업의 전 과정을 하나의 시뮬레이션 공간 안에서 통합 제어하려는 장기 프로젝트로 풀이된다.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솔리드웍스 최고경영책임자(CEO) 겸 연구개발(R&D) 부사장은 이 청사진을 설계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가시화했다. 피지컬 AI는 설계·검증을 가속하는 강력한 추진체이지만, 항로를 정하고 최종 착륙을 결정하는 조종사는 여전히 설계자라는 메시지다.
그는 “설계 데이터, 제조 이력, 품질·납기 정보 등이 한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 위로 인공지능(AI)이 가동되면, 공장은 단순한 시뮬레이터를 넘어 조직의 노하우를 응축한 ’지식 기반 공장’으로 진화한다”고 강조하며 이해를 도왔다. 지난해부터 다쏘시스템이 주창한 ‘생성형 경제(Generative Economy)’는 바로 이 지식 공장을 기반으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사용되는 순환 생태계를 의미한다.
데이터는 연료, 보안은 엔진의 안전장치
다만 이러한 피지컬 AI와 버추얼 팩토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고순도의 연료가 필요하다. 쿠마 CEO가 이번 행사에서 거듭 강조한 핵심 전제 역시 데이터와 노하우였다. 각 기업마다 선호하는 볼트 규격, 허용 안전율, 규제 대응 방식이 다르며, 이 미세한 차이가 곧 ‘사용자의 지적재산권(IP)이자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공개 데이터로 학습한 범용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며, 각 조직의 설계 룰(Rule)을 학습한 도메인 특화 모델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행사 내 여러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이 지점에서 데이터의 생애주기와 보호 문제는 신뢰의 문제가 된다. 피지컬 AI가 조직의 기밀 노하우를 학습하는 만큼, 이 지식의 소유권과 사용 범위 그리고 삭제·추적 가능성을 투명하게 제어하는 프로세스가 없다면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요약하면, 다쏘시스템의 피지컬 AI 전략은 그동안 산업에서 강조됐던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모으느냐’가 아니다. 각 사용자의 지식 자산을 얼마나 안전하게 격리하고 활용하느냐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버추얼 동반자, 자연어로 제어하는 설계 인터페이스
피지컬 AI가 공장의 두뇌를 교체하는 전략이라면, 설계자의 눈앞 화면을 혁신하는 실질적인 인터페이스는 버추얼 동반자다. 다쏘시스템은 지난해 공개한 버추얼 동반자 라인업을 올해 아우라(AURA)·레오(LEO)·마리(MARIE)라는 세 가지 축으로 재정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설계 화면 안에서 프롬프트 기반 자연어(Natural Language)로 대화하며 과업을 수행하는 AI 파트너라는 것이다.
아우라는 지식을 탐색하는 조력자다. 프로젝트 착수 시 필요한 규격, 과거 사례, 최신 가이드라인을 수집하고 제약 조건을 정리해 준다.
레오는 형상 구현과 시뮬레이션에 최적화된 답을 제시한다. ‘해당 부분을 보강해 달라’는 말 한마디에 모델을 수정하고, 과거의 유사 부품을 찾아 제안한다.
마리는 검증 단계의 과학적 접근을 수행한다. 소재 변경 시 강도뿐 아니라 피로 수명, 환경 규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목표까지 복합적으로 검토한다.
다쏘시스템 측에 따르면, 이 세 동반자의 분업을 통해 설계자는 복잡한 메뉴와 아이콘을 기억하는 인지적 부하를 덜어낼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해답 찾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마니쉬 쿠마는 이를 ‘설계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sign)’라고 규정했다. 도구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도 문제 정의 능력만 있다면 설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다쏘시스템이 그리는 설계의 미래상이다.
완주 경험을 키우는 글로벌 설계 엔지니어의 놀이터 ‘플레이그라운드’
3DXW 2026은 ‘끝까지 프로젝트를 설계한 엔지니어를 얼마나 많이 길러낼 것인가’라는 인재 육성의 화두를 정면으로 다뤘다. 수칫 제인(Suchit JAIN) 다쏘시스템 전략 및 비즈니스 개발 부사장은 자사가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프로젝트의 전체 주기를 몸소 체험한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플레이그라운드에서는 설계 엔지니어링 유망주부터 현재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고 있는 인재, 커뮤니티 기술을 활용하는 산업계까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명했다. (촬영·편집 : 휴스턴(미국)=헬로티 최재규 기자)
캐나다 출신 엔지니어 제이 보글러(Jay Vogler)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된 인재의 설계 프로젝트 수행 과정을 묘사했다. 설렘에서 시작해 좌절을 거쳐 확신에 이르는 감정의 곡선으로 표현한 것. 그는 “이 곡선을 단 한 번이라도 완주해 본 경험이야말로 설계자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프로세스”라고 피력했다. 피지컬 AI와 버추얼 팩토리는 설계 엔지니어링을 포기하고 싶은 좌절 구간에서 등을 떠미는 조력자이자, 그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저장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메시지다.
"기술은 거들 뿐, 프로젝트 최종 완성도는 인간의 몫"
이번 3DXW 2026이 남긴 결론은 거창한 구호보다는 현실적 균형점을 제시했다. AI와 가상 공장은 정교해지고 버추얼 동반자는 손발이 되어주지만, 무엇을 만들고 어떤 설계 청사진을 가졌는지 그리고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주권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피지컬 AI와 버추얼 팩토리는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던 경험과 규칙을 시스템의 지능으로 옮기는 도구다. 한 번의 완주에서 얻은 지식이 다음 프로젝트의 연료가 되고, 개인의 노하우가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순환하는 구조.
휴스턴에서 열린 이번 3DXW는 이 같은 흐름을 제품·공장 단위로 구현하겠다는 다쏘시스템의 의지를 ‘산업용 지능 생태계(Industrial Intelligence Ecosystem)’로 함축했다. 특정 기술의 화려함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경험과 데이터가 하나의 흐름으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어떻게 제조의 장벽을 허무는지 명확한 시뮬레이션을 제시한 것이다.
휴스턴(미국)=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