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완성차 기업 비롯해 삼성SDI 등 배터리 관련 기업 대거 참가 예정
유럽연합(EU)이 지속가능성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도 핵심 자원인 배터리 소재의 역외 반출을 제한하는 이중 전략을 펼치고 있다. 경쟁력 확보와 자원 주권을 동시에 챙기려는 이번 움직임은 한국 배터리 재활용 기업들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EU 집행위는 지난 2월 말,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과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규제의 적용 시기와 대상을 일부 완화하는 '옴니버스 패키지 법안'을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에 밀리는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유연한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후인 3월 5일, EU는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추출한 재활용 원료인 ‘블랙매스(Black mass)’를 유해폐기물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블랙매스의 역외 수출이 제한되며, 리튬, 니켈, 코발트 등 전략 광물의 역내 순환 체계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즉,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반 산업 규제는 푸는 한편, 배터리와 같은 전략 자원은 유럽 안에 묶어두려는 ‘선택적 규제 완화’ 전략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 맞서 한국 배터리 재활용 기업들도 유럽 현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에코플랜트의 자회사 SK테스는 최근 BMW와 유럽 내 배터리 재활용 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재활용 공장에서 연간 전기차 4만 대 분량의 배터리를 처리하고, 최대 1만 톤의 블랙매스를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보하고 있다.
성일하이텍은 더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헝가리, 독일, 프랑스 등을 대상으로 최대 3개의 후처리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며, 이미 헝가리에 전처리 공장을 가동 중인 만큼 후속 투자 역시 그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2022년 폴란드에 연산 7천 톤 규모의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준공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해당 시설은 성일하이텍과의 협업을 통해 운영 중이다.
이처럼 유럽 시장 진입과 확장을 모색 중인 한국 기업들에게 오는 9월 9일부터 14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IAA 모빌리티 쇼'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전시회에는 BMW,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BYD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뿐 아니라 삼성SDI 등 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세션에서는 배터리 소재 재활용, 자원 순환 기술 및 정책 동향이 집중 조명된다.
배터리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EU 규제가 강화되는 만큼, IAA 모빌리티 쇼는 기술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완성차 제조사와 장기적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며 “블랙매스 규제 시행을 앞두고 협력사를 선점하려는 유럽 완성차업체들의 니즈가 높다”고 전했다.
시장조사기관 Research and Markets는 글로벌 블랙매스 재활용 시장이 2022년 10억1000만 달러에서 2033년 148억3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폐기물이 약 13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18개월 내 본격 시행될 EU의 블랙매스 규제는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이자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한 규제 완화의 틈을 활용하면서도, 현지 재활용 거점을 확보한 기업들만이 유럽 순환경제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작은 뮌헨 IAA 모빌리티 쇼에서부터일 수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