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바둑기사와 벌인 바둑 경기에서 4대 1로 승리한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함께 안겨주었다. 그 경기로부터 채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인공지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이제 사람들은 검색창에 입력하는 대신 내가 원하는 말투와 눈높이로 학습시킨 챗 GPT에게 궁금한 정보를 묻는다. 산업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마트 팩토리를 비롯해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에서 점점 비중을 늘려가는 한편 사람들은 인간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은 인공지능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창작물과 인공지능 창작물이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 알고 보니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작품으로 밝혀지는 사례가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보고되거나, 처음부터 공모전 출품 작품 대상을 AI 작품으로 받기도 한다. 대중이 즐겨보는 웹툰을 그리는 과정에서 어시스트 역할을 대신하는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고 인간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생성형 AI와 인간이 공존을 꾀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할까.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예술이 인간의 예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심상용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장으로 현대 미술 흐름을 읽어내고, 같은 대학 조소과·미술경영학과 교수로 미술 교육계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공저로 집필한 <AI 예술의 미래를 묻다-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예술과 가능성>은 대한민국 현대 미술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는 주제를 두고 각 분야 전문가가 의견을 전하는 현대 미술 ing 시리즈 중 하나로, 현대 미술계에서도 최근 주요 이슈로 AI 예술이 떠오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심상용 교수를 만나 AI 시대에 예술과 생성형 AI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나눴다.
생성형 AI가 예술계에 끼친 영향
2016년에 공개됐던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는 각종 수상 이력과 더불어 그해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프로젝트는 렘브란트 회화의 특성을 딥 러닝 알고리즘과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데이터화하고 렘브란트 화풍을 그대로 살려 3D 프린트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를 시작으로 생성형 AI가 미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2022년에는 한 미술 공모전에서 AI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혀 논의가 벌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심상용 교수는 “약 3년 전쯤부터 미술계에도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를 활용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창작한 작품이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심 교수는 “해당 논의가 예술계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보수적인 판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하게 기류가 변화하고 있고 잠재적으로는 크게 위협을 느끼는 정도가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특히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은 이미지를 산출할 때 이미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생성형 AI와 함께 예술계에 등장한 개념 ‘기여도’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어시스트 도움을 받거나, 포토샵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흔했다. 겉으로 보기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 또한 이러한 도구 활용의 발전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으나, 생성형 AI가 예술 작업에 도입되면서 이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개념이 등장했다. 바로 기여도다. 기여도란 말 그대로 작업의 결과물을 두고 작업자의 예술적 창의성, 독창성을 제외하고 작품에서 AI가 관여한 정도를 따지는 개념이다.
예술이란 작품 발상부터 시작해 발상을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고 표현하는 과정까지 전 범위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심 교수는 생성형 AI는 예술의 시작점인 발상 단계부터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까지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을 들어, 생성형 AI와 예술가의 협업이 긴밀해질수록 생성형 AI가 기여한 정도를 객관화·수치화·지표화를 해나가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동시에 이러한 기준들이 정확도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예술의 본질과 충돌하는 생성형 AI
무엇이 예술을 예술로 존재하게 하는가. 예술의 본질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심 교수는 ‘진실성’을 추구하는 데에 예술의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심 교수는 생성형 AI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사용자가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될 때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생성형 AI로 구현한 풍경화나 정물화를 10개씩 가져다 두고 AI 그림인지 인간이 그린 그림인지를 구분하라고 하면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정확히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으며,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왜곡되면서 AI의 발전이 진실성이라는 본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사람이 똑같은 판화 틀을 가지고 판화를 100장을 찍어낸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모두 같은 결과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잉크를 묻히고 판화를 찍어내는 과정에서 반드시 차이가 생기고 그렇기에 그 결과는 틀은 같을지언정 고유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된다”며 “예술이 지니는 의미로 봤을 때 이러한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예술을 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와 관람 끊임없이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이 되는지를 직면하게 만든다”며 본질과 질문의 힘을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역시 하나의 ‘지능’이기는 하나 자기 고백적이고 역사와 존재를 기반으로 반추해 가며 반성하는 인간적인 지능과는 다른 지능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한계성과 취약성을 지니고 있고 이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역할을 ‘예술’이 제공해 왔다고 전했다. 심상용 교수는 이것이 생성형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예술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예술과 생성형 AI가 공존하는 미래
발전하는 기술과 산업의 형태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생활의 형태를 결정하고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상을 필연적으로 반영한다. 심상용 교수는 “AI 기술이 시초 단계를 넘어가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기술이 생산적일 수도,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여기서 질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이라고 전하면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주체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성형 AI 시대에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예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역시 “AI에게 예술의 미래를 묻는 것이 아닌 예술에게 AI의 미래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이자 서울대 미술관장인 그는 정교해지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갈수록 미술관처럼 사람들이 예술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예술 기관의 중요성 또한 커진다고 말했다. 심 관장은 “미술관은 단순히 미술 작품을 만나는 자리를 넘어 작품으로써 인간을 백업하는 장소”라고 밝혔다. 특히 “이러한 장소를 예술 관련인이나 일반 관람객뿐만 아니라 특히 AI 개발자를 포함한 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분들이 자주 찾아주시고 이 공간 안에서 떠오르는 사유와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을 기술 발전에 녹여주셨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심상용 교수는 “기술 개발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개발 과정에서 선택지가 주어지는 순간에 예술로부터 전달받는 제보와 고뇌가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예술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며 이를 위해 심 교수 역시 세미나 및 관련 서적 출간 등 예술 시장과 예술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헬로티 구서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