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지난 수십 년간 원자력 의존도를 줄여온 결정이 에너지 안보와 경쟁력 측면에서 전략적 약점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3월 12일(현지 시간) 유럽의 탈원전 흐름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파리 에너지 행사 연설에서, 지난 30여 년간 유럽의 원전 비중 축소가 역내를 화석연료 시장의 변동성과 지정학적 긴장에 더 크게 노출시켰다고 말했다.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은 1990년에 전력의 약 3분의 1을 원자력으로 생산했지만, 현재 비중은 약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르줄라 위원장은 이 같은 감소가 정책적 선택의 결과라고 지적하며, 유럽이 "신뢰할 수 있고, 저렴하며, 저탄소 배출인 전력원"에 등을 돌린 것은 전략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값비싸고 변동성이 큰 화석연료 수입에 "완전히 의존"하는 상황은, 더 많은 자국 내 에너지 공급을 유지하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유럽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지난 10여 년 동안 풍력, 태양광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크게 확대해 왔다. 그러나 교통, 난방 등 에너지 시스템의 상당 부분에서는 여전히 화석연료가 지배적이고, 전력 부문에서도 가스발전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구조적 의존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공급을 축소한 지난 2022년에 뚜렷하게 드러났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각국 정부가 가계와 산업을 보조해야 했고, 공급 다변화 노력이 가속화됐다.
매체는 원자력 논쟁이 현재 기후정책과 산업 경쟁력 문제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철강, 화학, 첨단 제조업 등 대형 산업 부문은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력이 필요한데, 대규모 저장이나 백업 설비 없이 간헐적인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이를 항상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정부는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안정적인 저탄소 전력을 공급하는 한 방안으로 원자력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다만 원자력 정책을 둘러싼 EU 회원국 간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작된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23년에 마지막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 당시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이번 발언에 대해 독일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독일 환경장관 카르스텐 슈나이더(Carsten Schneider)는 3월 12일(현지 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더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를 제공하며,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 왔고, 방사성 폐기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여러 회원국도 여전히 원전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기존에 원전에 회의적이었으나, 전기화와 산업 부문 탈탄소화로 인한 미래 전력 수요를 검토하면서 정책 태도가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EU의 중앙 예산은 회원국 간 이견 때문에 원전 프로젝트에 직접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차세대 원전 시스템에 민간 자본이 유입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르줄라 집행위원장은 집행위가 혁신적 원자력 기술에 대한 민간 투자에 2억 유로(2억1,700만 달러) 규모의 보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원은 유럽연합 탄소시장 수익으로 조성될 예정이라고 설명이다.
매체는 투자자와 전력회사 입장에서 이번 계획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자력을 유럽의 탈탄소 정책 틀 안에 편입하려는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진다고 전했다.
공급망과 전략 경쟁도 논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유럽 최대 원전 보유국인 프랑스는 원자력을 유럽 에너지 전략의 핵심 기술로 계속 옹호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은 파리 행사에서 유럽이 러시아산 원전 연료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며, 공급원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원전 운영사들은 2024년에 러시아로부터 전체 우라늄 수입의 약 15%를 조달했으며, 프랑스는 2025년에 사용한 농축 우라늄의 39%를 러시아에서 들여온 것으로 관세 자료는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유럽 전역에서 원전 설계를 표준화해 인허가 절차를 단순화하고 건설 비용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는 프랑스 국영 원전 기업 EDF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체코 신설 원전 건설 사업 입찰에서 최소 18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따내며 EDF를 제쳤고, EDF는 이 고부가가치 프로젝트를 놓친 데 대해 법적 대응을 시도했다.
매체는 유럽 정책 입안자와 투자자들에게 원전 논쟁 재점화가 탄소 배출 감축, 안정적 전력 공급, 지정학적 에너지 충격 노출 축소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전략적 선택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력이 이 전환 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될지는 EU 회원국 간 정치적 합의, 금융 구조, 차세대 원전 기술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입장이 분명하며, 점점 불안정해지는 글로벌 에너지 환경 속에서 유럽의 에너지 전략이 원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다.
헬로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