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은 세상을 바꿉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현장 안에서 일어납니다. [TECH온앤오프]는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기 ‘이전’과 ‘이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유즈 케이스 기반 스토리텔링 시리즈입니다. 기술 도입 전의 고민과 한계, 도입 과정 그리고 변화 이후의 놀라운 성과까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기술이 어떻게 경험을 바꾸고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 이러한 가치를 TECH온앤오프에 담아봤습니다.
[세 줄 요약]
2025년 7월 집중호우, 수도권과 지방 간 재난 대응 기술 격차 드러나
디지털트윈·자동 차수막 등 도입 지역 중심으로 사전 대응 효과 확인
인프라·인구 구조 등 복합 요인으로 기술 실효성 확보에 지역 편차 존재
집중호우가 보여준 기술 대응의 비대칭성
2025년 7월 셋째 주,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전북, 전남, 경북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저지대 마을이 급속히 침수됐고 일부 하천은 제방을 넘나들며 도로와 주택에 침수 피해를 입혔다. 기상청은 사전에 강한 강수 예보를 수 차례 발령했고 각 지자체는 재난 알림 문자를 발송했지만, 이 같은 사전 경보가 실질적 대응으로 이어진 곳은 많지 않았다.
수도권과 광역시 일부에서는 센서와 자동화 장비, 시뮬레이션 기반의 대응이 작동했으나, 지방 소도시와 군 단위 지역에서는 기존처럼 수작업 중심의 대응 체계가 그대로 유지됐다. 동일한 예보 속에서도 지역 간 피해 수준은 크게 달랐고 이는 기술 기반 대응 격차뿐 아니라 인프라, 인구 구조, 정책적 준비 수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OFF: 물이 넘쳐도 센서는 없었다…지방의 침수 대응 현장
전남 장흥, 경북 성주, 충남 청양 등 지방 중소도시는 이번 집중호우에 사실상 무방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천 수위가 빠르게 상승했지만 실시간 수위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 장비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제한된 범위에서만 운영돼 상황 판단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상청 예보에 의존한 문자 발송은 상황 발생 이후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문자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잇따랐다.
침수를 막기 위한 대응도 수작업 중심이었다. 일부 지역은 사전에 차수막이 준비돼 있지 않거나 설치 자체가 어려운 구조였다. 전북 정읍 한 지하차도 인근에서는 주민들이 모래주머니를 직접 쌓으며 대응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한편, 하수관로는 오래된 상태로 정비가 미비했고 일시적인 폭우에 하수 역류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확산됐다.
사전 예측 기반 경보 시스템이 없는 지방 시군은 상황 발생 후 대피 유도 방송이나 현장 인력 투입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마을단위 무선 방송이나 이장 중심의 알림 체계는 강수량에 비해 대피 속도가 늦었고, 차량 통제 역시 물이 차오른 이후에야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침수된 도로에 진입해 차량이 고립되거나 퇴근길에 고립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기술의 부재는 피해를 유발한 요인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령화된 지역 인구 구조, 재난 메시지 전달 방식의 비효율, 초기 대응 인력 부족, 예산 집행 구조 제약 등이 함께 작동하면서 지방 재난 대응력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피해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ON: 반응하는 기술, 도시를 먼저 지켰다

같은 시기, 서울 종로구를 비롯한 서울 지역은 하천 수위센서를 통해 침수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자동 알림과 대응 조치를 연계했다. 양재천, 도림천 인근에 설치된 실시간 수위센서는 수위가 기준치를 넘기자 즉시 관리자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송하고 주민에게는 자동 음성안내와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이 수치는 AI 기반의 예측 알고리즘으로 분석돼 침수 가능성과 확산 속도를 시뮬레이션했으며 그 결과 사전 차량 통제와 도로 차단이 빠르게 이뤄졌다.

부산 수영구와 인천 연수구, 경기 안양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자동 작동 차수막이 실제로 침수 피해를 방지한 사례가 보고됐다. 스마트 차수막은 수위 감지와 연동되어 자동으로 상승하거나 배수 펌프가 동작하게 설계돼 있으며 이는 기존 수작업 대비 10분 이상 빠른 초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는 작년부터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에스맵’ 기반 디지털트윈 침수 예측 시스템의 확대 운영 단계에 있다. 해당 시스템을 활용해 하천과 도로, 지형 정보를 3D로 통합 관리하고 실시간 강우량, 지하 배수능력, 경사도 등을 반영한 시뮬레이션은 침수 예상 지역을 사전 예측한 뒤 대피소 확보, 우선 배수 지역, 인력 투입 순위를 사전에 산정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술 자체 성능과 더불어 ‘어디에 설치되어 있느냐’가 실질적인 대응 격차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도입 여부는 예산과 기술 인력, 유지관리 역량, 주민 수용성과 정보 접근성 등 다양한 조건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야 실효성이 확보된다. 지방 소도시나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실시간 대응 체계를 완전히 구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결국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진단이 현실에선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술은 준비됐지만 지역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번 집중호우는 재난 대응 기술이 현실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술의 보급 범위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도 드러냈다. 실시간 센서, 자동 차수막, 예측 기반 시뮬레이션 등은 기술적으로 검증된 수단이지만, 전국 어디서나 사용 가능한 시스템은 아니다. 예산과 인력, 기반시설에 따라 설치 여부가 갈리는 구조 속에서 기술 격차는 곧 재난 대응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은 고령 인구 비율, 지형적 위험도, 예산 자립도 등에서 높은 취약성을 갖고 있지만, 기술 도입 우선순위에선 후순위로 밀려 있다. 이는 결국 집중호우와 같은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피하지 않았냐’는 책임만 남게 되는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기술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국적으로 ‘작동 가능한 체계’로 정착됐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재난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인프라로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책적 확산 전략과 지역별 맞춤형 기술 적용, 교육·대피 훈련 체계, 고령층 맞춤 커뮤니케이션 수단 등 복합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이 알려준 위기를 기술 없이 감당해야 하는 지역은 같은 피해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헬로티 구서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