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국내 산업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키워드는 ‘초격차’였다. 이 단어에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장기적인 시장 전략, 최적의 인력 구성, 준비된 인프라 등의 의미가 모두 내포돼 있다. 지난 5월, 새롭게 구성된 정부가 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꺼내든 카드 역시 초격차 전략으로 불린다. 특히 정부는 초격차 국가전략기술로 다섯 가지 분야를 낙점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 위한 정부의 장단기 계획은?
정부는 내년 R&D 예산 증액으로 초격차 국가전략기술 강화에 나섰다. 초격차 전략기술에 투입되는 예산은 총 1조96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7.7% 증액된 수치다. 이 초격차 기술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 원전, 수소, 5G·6G가 선정됐다.
특히 반도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간산업이자 미래 먹거리로 손꼽힌다. 과기정통부는 강점을 보유한 반도체 분야에 대해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신기술이 최단 시간에 시장에 진입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민관총력체제를 가동해 산학연이 보유한 장비와 인프라를 연계·공동 활용한다.
단기 계획으로는 수요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중장기로는 고급 인재 확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위해 교육부를 중심으로 대학에 계약정원제로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하고 마이크로학위와 디지털 석·학사 통합과정 등 패스트러닝 트랙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반도체 기업과 대학교의 계약학과 개설이 업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 예로, 삼성전자는 카이스트·포스텍·연세대·성균관대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으며, SK하이닉스는 고려대와 서강대, 한양대에 계약학과 개설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반도체 인재 공급 방안으로 단기 이수 과정인 마이크로·나노 디그리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마이크로·나노 디그리는 세 과목 정도를 이수했을 시 작은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반도체 분야 마이크로 디그리 인증서는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시 반도체 분야를 공부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편, 지자체에서도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용인시, 이천시, 안성시, 여주시 4개 시군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를 적기에 가동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각 지역 관계자들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적인 추진과 지역 상생협력을 위한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공동합의문에는 정부의 ‘K-반도체 벨트’ 완성과 최고의 반도체 공급기지 구축을 위한 핵심기반 확충, 이를 위한 규제·행정절차 간소화 등에 상호 협력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전시는 나노·반도체 부품소재 실증평가원을 설립하는 등 관련 산업을 시의 새로운 핵심 주력산업으로 육성키로 했다.
이를 위해 대전시는 실증평가원 설립·산업단지 조성·인력양성 등 3대 전략을 제시했다. 대전시는 기업이 안정적으로 제품을 테스트하도록 실증평가원을 설립해 지원하기로 했다.
잠재력 품은 AI 반도체 정조준하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 가운데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AI 반도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AI 반도체 성장 지원 대책을 살펴보면, AI 반도체 분야에 투입되는 자금은 5년간 약 1조 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전문 인력 7000여명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된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3%의 초라한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AI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 안에서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AI 반도체는 오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의 3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차세대 지능형반도체 개발, 프로세싱-인-메모리(PIM) 반도체 개발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신소자와 설계기술을 융합한 차세대 신경망처리장치(NPU), PIM 반도체,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NPU와 PIM의 장점을 결합해 시스템 성능을 극대화할 초거대 AI 시스템 등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미국과 올해 10억 원 규모의 신규과제 착수를 시작으로 공동연구 협력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는 등 국제협력에도 나선다.
한편, 과기정통부는 국산 AI 반도체 초기 시장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내년에 반도체 최대 수요처 중 하나인 데이터 센터를 국산 AI 반도체 기반으로 구축하는 ‘NPU 팜(Farm) 구축 및 실증’ 사업을 신설하고 AI 개발자에 컴퓨팅 파워를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또한, AI 제품·서비스 개발에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하고 성능을 검증하는 ‘AI 칩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지능형 CCTV, 스마트 시티 등 각 부처·지자체가 구축하는 공공사업에도 국산 칩이 적용되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초격차 전략의 화두 ‘3나노’
삼성전자가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양산을 공식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3나노 양산은 TSMC보다 한발 앞선 것으로, 메모리 분야에 이어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삼성의 초격차 전략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삼성은 이런 초미세 공정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기존의 ‘핀펫’ 기술 대신 업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했다. 반도체를 구성하는 주요 소자인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 채널을 제어하는 게이트로 구분되는데 GAA는 핀펫의 3차원 구조와 비교해 전류가 흐르는 통로인 채널의 아랫면까지 모두 게이트가 감싸 전류 흐름을 세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더해 채널을 얇고 넓은 모양의 나노시트 형태로 구현한 독자적 MBCFET(Multi Bridge Channel FET) GAA 구조를 적용해 전력 효율을 높이게 했다. 3나노 GAA 1세대 공정은 기존 5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해 전력은 45% 절감되고 성능은 23% 향상됐으며, 면적은 16% 축소됐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내년에 나오는 3나노 GAA 2세대 공정은 전력은 50% 절감되고, 성능 30% 향상, 면적 35% 축소될 예정이다. GAA 구조의 트랜지스터는 AI,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등 고성능과 저전력을 요구하는 차세대 반도체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3나노 공정의 HPC용 시스템 반도체를 초도 생산했으며 앞으로 모바일 SoC 등으로 확대해갈 계획이다.
현재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제공하는 곳은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위탁생산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제한돼 있기에 퀄컴과 AMD 등 글로벌 팹리스들은 첨단 미세공정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설계하는 팹리스는 매년 성능이 개선된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만큼 최첨단 공정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업계는 삼성전자가 선제로 GAA 3나노 공정 양산에 성공하면서 애플, 인텔, 구글, AMD, 엔비디아 등 글로벌 IT업체들이 향후 삼성의 잠재 고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최첨단 기술을 먼저 선보였다고 해서 삼성전자가 하루아침에 시장 점유율이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율이 뒷받침돼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