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주목한 전자·정보기술 박람회인 ‘CES 2022’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지난 1월 5일부터 7일까지 총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다. CES 2022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열렸으나, 그때와 차별화된 면모를 선보인 행사였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래상을 제시하며, 기술 혁신의 장으로 마련된 CES 2022, 그 현장을 확인해보자.
준비된 혁신, 세상에 공개되다
CES 2022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CES 2022는 작년과 달리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개최가 준비돼 업계의 기대를 모았다. 다만 행사 기간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4일에서 3일로 줄었다. 여기에 구글,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과 화웨이, 오포, 아너, 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기업의 불참 소식이 전해지며, 행사 개최를 앞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올해는 스타트업 800여개 기업을 포함해 약 2300여개의 기업이 참가했으며, 이는 예년에 비해 절반 수준에 그치는 규모다. 약 4만 명의 참관객이 전시 현장 찾았으며, 참관객의 국가 수는 119개국이었다. 주최 측인 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CES 2022 헬스 프로토콜을 현장 참가자에게 적용했으며 백신 접종 증명, 실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고 검사 및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시행했다.
이처럼 축소된 규모에도 불구하고, CES 2022는 참가 기업의 혁신적인 행보와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선보이며 다음을 기대하게 했다. CES 2022에서는 산업 간 경계 파괴와 그에 따른 융합과 확장, 자동차 전동화 등의 산업 트렌드를 엿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AI,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 스마트홈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혁신 기술과 솔루션이 공개됐다.
CES 개최를 전담한 게리 샤피로 CTA 회장 겸 CEO는 “CES 2022에는 산업을 재구상하고, 헬스케어, 농업, 지속가능성 등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술이 집합했다”며, “올해 CES는 2년 만에 참가 기업과 참관객이 전시장에서 대면하게 됐고, 이를 통해 미래를 다시 정의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혁신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CES’와 ‘신기술’은 동의어다
CES 전시회는 지난 1967년 6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소규모 가전 행사로 출발해 점차 규모를 늘려왔다. 당시 CES는 ‘시카고 라디오 쇼’라는 전시회에서 분리된 작은 행사였으며, 참가한 가전 기업은 100여개, 방문객 수는 1만7000여명에 불과했다.
CES는 1978년부터 1994년까지는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 6월 시카고에서 연 2회 개최됐다. 그러다 여름 CES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1998년부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일 년에 한 차례 열리는 행사로 변경됐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라는 전에 없는 상황을 맞으며, 최초로 온라인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나 세계 최대의 기술 전시회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현재의 CES는 가전뿐 아니라 IT, 모빌리티, 메타버스, 우주항공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신기술을 아우르는 전시회로 거듭났다. 이처럼 CES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바로 ‘신기술’이다. 그동안 CES에서 발표된 신제품 및 신기술은 70만 개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최 측이 꼽은 제품·기술은 1968년 컴퓨터 마우스, 1970년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 1981년 캠코더 및 콤팩트디스크 플레이어, 1996년 DVD, 1998년 HDTV 등이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와 플라스마 TV(2001년), 블루레이 DVD(2003년), IPTV(2005년), OLED TV(2008년), 3D HDTV(2009년), 플렉서블 OLED(2013년), 3D프린터 및 웨어러블(2014년), 가상현실(2015년) 등이 있었으며, CES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이 같은 패러다임이 생겨나자,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저마다의 기술로 탄생시킨 최첨단 제품과 기술을 CES에서 공개하고 있다. 이에 업계 종사자를 비롯한 일반 소비자까지도 CES에서 기술 트렌드를 확인하고 있다.
한편, CES 2022에는 국내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그룹 등을 비롯해 보쉬, 캐논, 하이센스, HTC, 엔비디아, 소니, 파나소닉, 퀄컴 등의 글로벌 기업이 참여했다. 올해 행사에서 눈에 띈 점은 자동차 전동화를 앞세운 완성차 기업의 대거 참여였다.
주요 기업으로는 BMW, 메르세데스 벤츠,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이 있었으며, 베트남 최초의 자동차 기업인 빈패스트도 모습을 보였다. 주요 전시 분야인 디지털 헬스에서는 원격의료, 커넥티드 헬스 디바이스, 웨어러블 디바이스에서의 건강 기능 개선사항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애보트, 에센스, 바라코다 데일리 헬스테크 등의 기업이 부스를 마련해 참관객을 맞았다.
전시회 현장에서는 곳곳에서 AI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AI 기술은 자율주행, 디지털 헬스케어, 농업,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산업 속에 녹아들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스타트업도 유레카 파크 전시장에서 각자의 솔루션을 뽐냈다. 스카이드라이브의 에어 택시, 센트로닉스의 에브리휴먼 알고리즘 향수, AI로 작동하는 오비스크의 완전 자동화 음식물 쓰레기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그것이었다.
일상을 개선하는 제품 대거 공개
3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만덜레이베이 호텔에서 전 세계 미디어에 공개된 ‘언베일드 라스베이거스’가 진행됐다. 여기에서는 전 세계에서 참가한 전자·IT 분야 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연이 펼쳐졌다. 참가 기업은 일반인 대상의 본 행사를 앞두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언론에 공개했다. 소비자기술협회는 행사장 입구에 ‘미래로 가는 대기줄의 맨 앞’이란 문구를 걸었다.
프랑스 기업인 에어크좀은 구리와 탄소 등을 소재로 한 3중 필터를 장착한 첨단 마스크를 선보였다. 에어크좀은 능동 여과 기술을 적용한 이 마스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99.94% 죽이는 등 미생물을 제거하고, 화학적 오염물질을 걸러낸다고 전했다. 에어크좀은 이 마스크가 탁월한 여과 기능을 발휘하는 한편, 숨 쉴 때 답답하지 않도록 제작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인 바디프랜드는 올해 CES 혁신상을 받은 ‘더 파라오 O2’를 전시했다. 이 제품은 앉았을 때 코와 입이 위치하는 자리에 산소 발생 모듈을 달아 산소를 공급해주는 안마의자다. 더 파라오 O2는 의료용 산소 발생기와 같은 지오라이트 필터를 이용해 대기 중에서 질소를 포집해 빼낸 뒤 45∼55% 농도의 산소를 공급해준다.
네덜란드 기업 비디오윈도는 액정을 이용해 동영상을 띄우는 투명한 창을 출품했다. 이 제품은 빛 센서와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주변 밝기를 측정하고 이에 맞춰 적정한 밝기로 동영상을 송출해준다. 반사 억제 기술도 적용돼 눈부심을 막아준다.
이 제품의 강점은 전력 소비를 크게 줄여 기후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프랑스 기업인 나이오 테크놀로지는 농업에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자율운행 농기계를 공개했다. 100% 전기로 작동하는 이 농기계는 진돗개보다 작은 ‘어스’부터 소보다 큰 ‘다이노’까지 세 종류로, 파종과 재배, 잡초 제거 기능을 수행한다. GPS 기반으로 밭을 돌아다니며 일하지만 카메라도 이용한다.
일본 기업 퀀텀 오퍼레이션은 바늘로 찔러 피를 뽑지 않아도 혈중 포도당 수치를 측정하는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글루코미터’를 내놨다. 퀀텀 오퍼레이션 관계자는 CES 혁신상을 받은 이 제품이 세계 최초의 비외과적 혈당 측정기며, 식사 전후 공적인 장소에서도 언제든 혈당 수치를 측정하고 추적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기업 픽휠은 발만으로 운전하는 개인용 모빌리티 장비를 전시했다. 1회 충전으로 30㎞를 가고, 최대 시속 15㎞로 달리는 픽휠은 운전자가 운전 시 손으로는 다른 일을 하도록 고안됐다. ‘손으로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라’가 이 회사 모토다. 한 예로, 환경미화원은 발로 장비를 운전하며, 손으로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다.
산업 트렌드 제시한 기조연설
CES는 매년 기조연설로 전시회의 시작을 알린다. 기조연설자로 선정된 업계 리더들은 신제품 및 신기술과 산업 트렌드, 기업 비전 등을 소개한다. 올해 기조연설 무대에도 주요 기업의 리더들이 모습을 보였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겸 DX 부문장을 비롯해 메리 바라 GM CEO, 헬스케어 업계 최초로 기조연설을 맡은 로버트 B. 포드 애보트 회장 겸 CEO 등이 참여했다.
한종희 부회장·DX 부문장은 기조연설 첫 주자로 나서 ‘미래를 위한 동행’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발표에 앞서 게리 샤피로 CTA 회장은 한 부회장을 ‘강력한 리더’라고 소개하며 삼성전자가 대면 행사에 대규모로 참가하고 기조연설에 나서줘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한종희 부회장 기조연설에는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 국내외 전자·IT 업계 관계자까지 750여명이 몰리며 행사장인 베네시안 팔라조 볼룸 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한 부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의 가치를 일깨웠다”며 삼성전자 기술의 지향점을 지속 가능한 미래로 규정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경쟁사를 포함한 세계 전자업계, 소비자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사용자 경험과 고도화된 연결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실천으로 옮겼다. 한 부회장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업종을 초월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삼성전자의 솔라셀 리모컨 등 친환경 기술을 누구나 활용하도록 외부에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라 삼성전자는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함께 미세 플라스틱 배출 저감을 위한 기술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에 대한 연결성 강화를 위해 글로벌 가전 업체들과 손잡고 ‘HCA 협의체’를 발족하기로 했다.
메리 바라 GM CEO는 기조연설에서 쉐보레 픽업트럭 ‘실버라도’의 전기차 출시를 발표했다. 실버라도는 GM의 간판 상품이자 최대 수익원으로, 전기차 버전 출시는 경쟁사인 포드가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내놓기로 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뿐 아니라 메리 바라 CEO는 SUV 이쿼녹스와 블레이저 전기차도 앞으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공개했다.
여기에 2035년까지는 트럭과 대형 픽업트럭도 모두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바라 CEO는 아울러 고도의 자율주행 기술인 ‘울트라 크루즈’를 내년 중 자사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의 플래그십 세단 ‘실레스틱’에 도입한다고 밝혔다. GM은 이미 일부 모델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슈퍼 크루즈’를 도입했다.
GM은 슈퍼 크루즈가 중앙분리대로 나뉜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으로 운전하지만, 울트라 크루즈는 도심에서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고 언급해왔다. GM은 또 완전 자율주행 전기차 콘셉트 ‘이너스페이스’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메리 바라 CEO는 “GM의 얼티엄 플랫폼은 탄소 배출 제로의 미래를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며, “우리는 그걸 만들고 있다. 모두를 위해 우리는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하며,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 분야 기업으로서 최초로 CES 기조연설에 참여한 로버트 포드 애벗 래버러토리 CEO는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휴먼 파워드 헬스’를 회사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이를 통해 “인생을 최대한으로 살라”고 강조했다.
의료 기업의 기조연설 참가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관심과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의료·바이오도 전자·가전 등 CES의 전통적인 주 종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로버트 포드 CEO는 기조연설에서 웨어러블 센서 ‘링고’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버트 포드 CEO는 “몸이 말하는 독특한 언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데이터로 번역해 주는 장치”라며, “이를 통해 체내의 포도당이나 케톤, 젖산 같은 핵심 지표를 추적한다”고 말했다. 로버트 포드 CEO는 “링고는 오늘날 소비자용 웨어러블 기기의 한계를 넘어 여러분의 건강과 영양, 운동 퍼포먼스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넘어 미래로’, 왕좌 오를 솔루션은?
현대자동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이 로보틱스와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를 결합한 ‘메타 모빌리티’를 미래 모빌리티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는 자동차나 경량 항공기인 어번 에어 모빌리티(UAM) 같은 이동 수단을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인터페이스로 삼으면서 로봇을 대리인으로 이용해 메타버스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소니는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을 전해준 기업 중 하나다. 소니는 전기자동차 사업 진출 의향을 공식화한 소니는 올해 초 전기차 기업인 ‘소니 모빌리티’를 세우고 전기차의 상업적 출시 가능성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혔다. 소니도 전동화 트렌드를 받아들여 이미지 센서,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강점을 발판으로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반도체 시장에서는 경쟁사의 텃밭을 정면으로 겨냥한 제품을 내놓으며 심화될 경쟁을 예고했다.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의 1인자 엔비디아, 모바일 통신칩 시장 1위 업체 퀄컴 등은 외장형 GPU, 그래픽 통합형 CPU, 차량·PC용 반도체를 새롭게 출시할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조만간 대형 인수·합병(M&A)이 있다고 공개했다.
아직 관련 업체가 공개된 바 없지만, 파운드리, 차량용 반도체, 로봇, 전장 등 삼성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큰 분야가 후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삼성은 올해 출시할 QD-OLED TV에 들어갈 OLED 디스플레이를 경쟁사인 LG에서 공급받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을 선포한 메타가 빠지며 올해 CES에서 눈에 띄는 이 분야 신기술은 없었지만, 메타버스 세계를 확장하려는 전 세계 기업들이 개성 있는 솔루션을 선보였다.
롯데정보통신은 자회사 칼리버스와 함께 걸그룹의 콘서트 현장에 있는 듯한 경험을 관람객에게 제시했고, 일본 카메라 기업 캐논은 ‘코코모’로 명명된 VR 기반의 몰입형 영상통화 서비스를 선보였다. 체코의 VR지니어스는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 기술을, 국내 기업인 비햅틱스는 VR 세계에 촉각까지 접목한 촉감형 메타버스 기술을 관람객에게 선보여 많은 관심을 끌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등 억만장자들이 우주탐사·관광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올해 CES에는 시에라 스페이스, 제로 G 등 우주기술 기업이 여럿 참가해 앞으로의 시장 가능성을 가늠하게 했다. 블록체인 관련 업체가 참가하고, 새로운 가상자산인 NFT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가 열리는 등 첨단 신기술로 행사의 외연이 확장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