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을 움직이는 단어 하나, 그 안에 숨은 거대한 흐름을 짚습니다. ‘키워드픽’은 산업 현장에서 주목받는 핵심 용어를 중심으로, 그 정의와 배경, 기술 흐름, 기업 전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차분히 짚어봅니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 기술의 흐름 속에서, 키워드 하나에 집중해 그 안에 담긴 구조와 방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즘 쉴 때 뭐해?”
친구들이나 직장동료 사이에서 가장 쉽게 묻게 되는 말이다. 한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도 이제 당당히 “뜁니다”라고 말한다. 운동으로 여겨졌던 러닝이 이제 단순한 개인 운동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러닝, 새로운 트렌드 이끄는 하나의 ‘문화’가 되다
최근 러닝은 헬스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개인 운동이 생활화되면서 달리기는 접근성과 자유도가 높은 운동으로 부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표한 ‘2024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 1회 이상 운동을 하고 이 중 걷기·달리기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 러닝은 단순한 체력 관리가 아니라 정체성이자 취향 표현이 되었다. SNS에는 러닝크루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주말마다 열리는 도심 러닝 이벤트가 빠르게 매진되고 있다. 건강한 루틴과 도시 감성을 결합한 일상형 러닝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또 애플워치·갤럭시워치 등 스마트워치의 보급도 빠르게 확대되며 운동 데이터 기록이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는 현상도 가속화됐다. 러닝은 이제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자기관리·자기표현·커뮤니티 경험이 융합된 또 다른 버전의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러닝붐이 촉발한 산업계의 변화 – 데이터를 러닝에 담기 시작했다
러닝 열풍은 산업계 전반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국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운동화 시장은 지난 2019년 3.13조 원에서 2023년 4조 원으로 커졌으며 그중 러닝화가 1조 원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커지면서 브랜드들은 기술력과 데이터를 결합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아식스는 3D 풋스캔과 보행 분석을 기반으로 한 ‘ASICS FOOT ID’를 도입했고, 스위스 온(On)은 초경량 쿠셔닝 기술 ‘클라우드테크(CloudTec)’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 나이키는 ‘나이키 런 클럽(NRC)’ 앱을 통해 러닝 데이터와 커뮤니티를 결합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웨어러블 시장도 러닝이 견인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IMARC에 따르면 국내 웨어러블 기술 시장은 2024년 14억 달러에서 2033년 67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의류 분야에서도 흡습·속건·자외선 차단 소재를 적용한 러닝복이 일상 운동복 시장과 맞물려 확장되고 있다.
신기술이 이끄는 러닝 혁신 – AI·스마트기기·소재의 진화
러닝의 산업화는 단순히 제품 다양화에 그치지 않는다. AI, 센서, IoT, 스마트 소재 등 첨단 기술이 결합하면서 러닝은 데이터 기반 운동으로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민(Garmin)의 ‘러닝 다이내믹스 팟(Running Dynamics Pod)’은 착지 충격, 보폭, 케이던스(분당 걸음 수) 등 6가지 핵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러너의 자세와 효율을 분석한다. 국내 스타트업 뉴마핏(Neumafit)은 호흡과 심박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피로도와 운동 강도를 조정하는 ‘Pacer 시스템’을 개발했다. 의류 분야에서도 심박·호흡을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 셔츠나 체온·습도 변화에 따라 통기성을 자동 조절하는 스마트 패브릭이 상용화 진행 중이다.
이런 기술 융합은 단순한 운동 효율 향상을 넘어 개인 맞춤형 러닝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AI가 실시간으로 운동 데이터를 분석해 러너의 목표 달성률을 예측하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트레이닝 히스토리를 관리하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향후 러닝과 데이터, 헬스케어가 결합된 스마트 피트니스 산업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웨어러블 시장의 성장세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글로벌 리포트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러닝기어 시장은 2024년 약 139억 달러에서 2033년 2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러닝, 이제 또 다른 스포츠 산업을 낳는다
이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닌 도시형 스마트 스포츠 생태계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러닝으로 인해 산업계의 변화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또 다른 파생산업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러닝 데이터를 활용한 AI 코칭 플랫폼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사용자의 보폭·심박·피로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러닝 플랜을 제시하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일부 스타트업은 이미 AI 기반 부상 예측 모델을 상용화 중이다. 도시 인프라 시장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서울과 부산, 성남 등은 야간 러닝 전용 조명 트랙과 IoT 기반 운동 코스 데이터를 구축하며 ‘러너 친화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브랜드×커뮤니티 협업 비즈니스 역시 이전과 달리 더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이키·온·살로몬 등 글로벌 브랜드가 러닝크루를 직접 운영하며 체험형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고 이 데이터를 토대로 리테일·멤버십 서비스를 재설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러닝 데이터가 헬스케어·보험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 국내 보험업계에서는 걸음 수나 활동 시간, 거리, 소모 칼로리 등 웨어러블로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시도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보험사가 웨어러블 데이터를 리스크 평가나 건강 증진 인센티브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단순한 취미 활동에서 시작한 러닝이 하나의 열풍이 되어 산업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바람은 이제 태풍이 되어 또 다른 산업을 파생시키기에 이르고 있다. 러너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이 변화가 산업계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해서 주목할 만하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