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제작소는 1945년 일본 미에현 요카이치에서 창립해 본사를 둔 프레스 금형과 가공 전문업체다. 1998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 진출했다. 초기에는 주로 가전용 부품과 자동차용 부품을 주로 생산해 현지의 일본계 고객들에게 납품했다.
2002년에는 라구나에 신공장을 신축했고, 2017년에는 수출전용 금형공장을 신축해 개발부터 양산까지 일괄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이토제작소의 임직원은 100여 명이며, 90%이상 고정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순송금형은 사내생산 지원과 일본 인도네시아 멕시코 태국 등의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탈화산 폭발에 이은 코로나 환란의 시작
2020년 1월, 타가이타이 탈화산이 높이 15km까지 분출하면서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마닐라까지 흩어졌다. 필리핀 정부는 ‘경보수준 4’를 발령하고, 반경 14km 내 주민 46만 명을 대피시켰다. 메트로 마닐라에서 라구나 지역까지 학교나 관공서에 휴업령을 발령하고, 화산 폭발 3일 후에는 반경 17km 이내 주민 93만 명을 대피시켰다.
이토제작소도 건물 외부에 화산재가 3cm 가량 쌓여 청소를 해가며 생산 활동을 하고 있었다. 타르 화산의 용암 분출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2월 하순 경, 외신을 통해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소식을 처음 접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필리핀 정부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에서부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되자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의 모든 항공편 입국을 금지시켰다. 시내에서는 마스크를 구비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마스크 품귀 현상이 지속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동북아시아보다, 아열대 지역인 필리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문제가 덜 할 것으로 인식했다. 이런 인식은 금새 바이러스를 확산시켰다. 필리핀은 의료시설이 충분하지 않고, 의료비는 국민소득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필리핀 국민들은 코로나19 감염병에 대한 의료복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사내 방역 관리 시스템 정비
이토제작소는 필리핀 경제특구(PEZA)에 지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경제특구청의 코로나19 감염병 관련 규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정부에 일일 상황을 수시로 보고하며 2주 단위로 바뀌는 정부의 각종 규제를 준수해야 했다. 확진자와 유사 증상자가 발생할 경우 격리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해당 상황에서 사내 관리 항목을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모든 책상에 비닐 칸막이 설치
・매일 출근 시 체온을 체크하여 유사 증상 유무를 설문 조사를 통해 실시
・외부 출입은 공식적으로 금지
・임직원의 타사 및 외부기관 방문 금지
・식당 식사시간을 조정하여 1미터 거리 준수
・타부서 이동시 안면보호대(페이스실드) 착용 의무
・모든 공용 구역에 알코올 비치 의무
・사내 간호사를 1차 책임자로 분류해 증상 발생 시 전화 상담 후 일정기간 격리
・모든 미팅은 온라인으로 실시
비타민C의 복용으로 전직원 면역력 강화
3월, 필리핀의 모든 기업은 임직원의 정문 출입 시, 체온 측정을 의무화하고 세척용 알코올을 제공했다. 이토제작소도 같은 절차를 시행했다. 당시 필리핀에서 마스크는 개당 100원 정도의 가격에 1인당 5개로 제한해 구입할 수 있었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지속되자, 대부분의 한국인과 일본인 주재원들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배우자와 자녀들을 본국으로 귀국시켰다. 현지 언론에서는 코로나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 비타민C 복용을 권장했으나, 해당 권장사항은 현지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토제작소는 회사 간호사를 통해 회사 부담으로 비타민C를 일괄적으로 구매해 직원들은 매일 1정(500mg)씩 간호사를 통해 비타민C를 복용했다. 이와 같은 노력은 당사에서는 2020년 말까지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해외출장 금지령과 화상 회의의 실시
3월 말, 필리핀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출장 금지령을 발령했다. 필리핀 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본으로 출장을 가는 것이 금지됐다. 이토제작소는 본사와의 모든 회의를 화상회의로 진행했고, 모든 외부인원은 당사로의 방문이 금지됐다. 이맘때 신규거래를 위한 품질감사가 일본 Y사에서 나오기로 돼있었으나 이 또한 취소됐다.
대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부품류의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산 활동에 치명상을 입었다. 일부 부품류는 생산거점을 급히 필리핀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필리핀의 제조업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록다운으로 인한 재택근무
두테르테 대통령은 2020년 3월 12일 마닐라 수도권 출입을 제한하는 ‘메트로 마닐라 봉쇄’ 긴급 조치를 발령했다.
필리핀의 누적 확진자는 140명, 누적 사망자는 11명이었다. 3월 15일부터 메트로 마닐라는 록다운 상태에 진입했다. 식료품 가게 이외에는 외부 출입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회사 출근은 가능하나 현지인 사원들의 권유로 저자도 재택근무를 진행했다. 마닐라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는 임시 검문소가 설치됐고, 무장한 군인과 경찰이 경계근무를 섰다. 현지 신문에는 지방에서 경찰의 검문에 항의하는 현지인 주민이 사망하기도 했다.
도시전체가 마비됐다. 모든 식당의 영업이 중단됐고, 필리핀 내 사람들은 식료품 가게에서 식료품 자재를 구입해 자택에서 직접 만들어 끼니를 해결했다. 특히 김치가 코로나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일설이 확산해 김치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필리핀 노동고용부(DOLE)는 4월 26일 코로나19 감염병 여파로 약 14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필리핀 정부는 바랑가이를 통해 쌀과 통조림 등 긴급 식료품을 지급했다.
보딩하우스를 통한 감염 확산과 출퇴근 대중 교통수단의 통제
5월 중순, 대규모 공장에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공단 주변은 시골에서 건너간 청년들이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해 여러 명이 함께 주거공간은 공유하는 ‘보딩 하우스 방식’이 일반화해 있었다.
이들은 주말에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낸 후, 일요일 오후에 보딩 하우스로 복귀하고, 평일에는 회사로 출퇴근했다. 이들 중 일부가 코로나19에 감염돼 회사 내로 확산시키는 사례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이토제작소는 전 직원의 주말 귀가를 자제하고 가족 면회를 금지시켰다. 대부분의 직원은 출퇴근 시 지프니나 트라이시클 등 열악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므로, 주요 감염원인 대중교통 수단 이용도 금지시켰다.
차량을 가진 직원에게 유류비를 일부 보조해 같은 방향의 직원을 함께 동승하게 하고 많은 직원이 사는 지역은 회사 승합차로 출퇴근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로 인해, 이토제작소의 임직원은 출퇴근 상황 및 대중교통으로 감염되지 않았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된 3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출근율이 저조해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토제작소 공단 내 인근 기업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감염을 우려한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토제작소는 공단 봉쇄 상황을 고려해 모든 재고를 납품하라는 고객의 요청을 받았다. 이때 처음으로 출근자에게 한시적으로 위험수당을 제공하는 정책을 펼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외국인 사망자 발생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포화상태였고, 병실이 부족해 병원 공터에 천막 등을 동원해 일시적으로 병동을 마련했다. 환자들은 최소한의 조치만 받은 채 죽어나갔다.
주변에서 의류 제조업체를 경영하던 한국인 경영자가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진 후 일주일만에 사망했다. 본국의 가족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지만 필리핀 입국이 불가해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불안감이 엄습했고 극심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매일 가족들과 카카오톡을 통한 화상통화를 하며 심리적 불안감을 달랬다.
운전수의 감염과 차내 차단막의 설치
내가 경험한 코로나19 팬더믹의 가장 치명적인 순간은 전용 운전수의 코로나19 감염병 확진이었다. 운전수는 퇴근 후 고열이 발생해 PCR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는 양성이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부인으로부터 감염된 것이다.
나는 차량 내에서 철저하게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에서 운전수와 함께 매일 2시간씩 호흡했기에 감염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다행히 PCR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을 받았다. 이후 차량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아크릴 차단막을 설치했다.
감염 피이크 시기 일시 고국으로 피난
8월,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이 절정인 시기다. 사망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필리핀 정부는 더욱 강력한 봉쇄령을 내렸다. 나는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2020년 9월 1일, 나는 본사의 승인 하에 결국 한국으로 피신했다.
마닐라 공항은 텅 비어 있었으며 마스크는 물론, 일부 승객들은 방역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공항과 기내에서의 다수 감염 사례를 발표했다. 승무원들도 긴장하는 모습이었고, 최소한의 기내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 후 2주간 자택에서 격리했다.
내가 죽더라도 고국의 가족들 앞에서 죽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직접 관리에 비해서는 업무의 질은 떨어졌지만,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고객 응대를 진행했고, 기타 사내 관리 업무도 차질 없이 이어졌다. 12월에 이르러 감염율의 추이가 내려가기 시작해 나는 다시 필리핀으로 복귀했다.
사내 임직원의 가족으로부터 코로나19 감염병 확산과 격리 실시
2021년 초, 사내에 코로나19 감염병 확진자가 증가했다. 주로 가족에 의한 감염이었다. 임직원의 가족 중에 외부와의 접촉이 있는 인원과의 차단을 권유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가족 중에 고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회사 간호사와 상담하고 출근을 하지 않도록 했다.
필리핀은 무노동 무임금 정책이 있어 확산 초기에는 증상을 속이고 무리하게 출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증상에 따른 결근 시에는 약간의 보조금을 지급해 해당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보조금을 과다하게 지급하면 이를 악용해 보조금을 수령하고 출근하지 않는 사례가 있을 것을 대비해 보조금의 금액은 적정선에서 결정했다.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결단
4월, 도시 봉쇄의 영향으로 출근율은 50%를 상회했다. 출근율이 20~30% 정도인 타사에 비하면 우리 회사 상황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우리 회사의 출근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건 셔틀 서비스 운영, 위험수당 지급 등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부품 부족 여파로 고객 주문은 코로나 이전인 전년 동기 대비 53%로 크게 감소했다. 필리핀 정부는 감염 확산 방지 차원에서 기업들에게 임직원 출근율을 50% 이하로 낮출 것을 지시했다. 이에 직원들은 수입이 감소해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기존에 진행하던 아우팅과 스포츠 페스티벌 등의 레크레이션을 즉시 중단하고 그 예산을 휴업 보상에 썼다. 도시 봉쇄로 출근하지 못하는 직원이나 출근 제한으로 인해 출근하지 못하는 직원들은 필리핀 정부의 ‘노워크 노페이’ 정책으로 인해 수입이 제로가 됐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수입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출근 로테이션 실시했다. 수입이 줄어든 일반 직원을 배려하기 위해 두 명의 매니저와 네 명의 간부 급료를 일부 삭감하는 등의 파격적인 대응을 했다. 한시적으로 지급하던 위험수당도 폐지하고 직원들에게 위기 속에 하나가 될 것을 독려했다.
동종업계 타사가 출근율 저하로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가운데, 우리 회사는 납품 지연 없이 부품 공급을 지속한 것에 대해 고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직원에게 동기부여가 됐다.
웹 회의 활용 및 전체 조회 중계
지난 해 2월을 기점으로 본사 출장은 여전히 금지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신규 수주 안건의 설계 개발에 대한 웹 회의에서 DR(Design Review)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사전에 일본 본사 기술부로 제품 도면과 레이아웃 검토 도면을 보내 웹상 공정의 문제점을 협의하면서 최종 공정을 결정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매출 회복
9월, 우리 회사는 코로나19 팬더믹 사태 이전 수준까지 수주가 회복됐다. 우리 회사는 일본과 인도네시아에도 거점이 있지만, 필리핀은 다른 거점에 비해 침체가 덜했고 회복 속도도 빨랐다.
회복세가 빨라 삭감했던 간부의 급료를 다시 복구하라는 본사의 권유도 받았다. 전 사원이 하나가 되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것에 대해 본사의 임직원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현지화를 통한 가족경영으로 코로나 위기의 극복
우리 회사는 1997년 해외 진출 이후 가족식 경영 이념을 현지에 도입해 현지의 인적자원을 육성해 왔다. 코로나19 팬더믹 이전부터 일본인 주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인 주재원이 중심이 되어 현지인들과 함께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2022년에는 매출액이 30% 이상 증가하는 등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당사는 경영상황의 가시화를 실시하고 있으며, 영업이익의 10%를 결산 상여로 매년 직원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본사에서는 일본 본사의 출장 지원이 없는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에서 원활한 경영을 수행하는 점을 높이 평가해 작년보다 결산 상여금을 이익의 15%로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연말 상여금이 50% 증가한 데 대해 직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만약 경영의 현지화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서류를 항공편으로 송부하고, 관련 절차를 거쳐 현지로 반송하는 등의 불편함이 많았을 것이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현지 임직원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한국식 가족경영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무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통해 어떤 난관이 오더라도 본사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현지인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는 강한 체질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