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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IT9] 스마트폰의 역사I- IBM에서 삼성까지…공룡들의 전쟁

  • 등록 2013.11.08 1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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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역사 I
IBM에서 삼성까지…공룡들의 전쟁


20여 년 전. 스마트폰은 오래전에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IBM이 개발한 사이먼이다. 이 휴대전화는 지금의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능을 구현했다. 이른바 PC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최초의 휴대전화였던 셈이다. 그 후 삼성전자가 글로벌 초강자로 자리하기까지 관련 업계에선 숱한 부침이 있었다. 2회에 걸쳐 그 속을 살핀다.

황재훈  객원기자


‌소통의 혁신을 부르다

1876년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던 시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의 전화기를 발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류는 먼 곳에 떨어진 사람과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마련했고, 시간과 거리의 장벽이라는 결코 넘지 못할 것 만 같았던 장애물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말(馬)로 대변되던 동력(動力)이 증기와 전기로 바뀌면서 인류가 급속도로 발전했듯이 의사소통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받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는 법. 이때부터 인류는 고도화된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업적을 쌓을 발판을 마련했고, 이 소통의 혁신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산업의 양상도, 전쟁의 전개방식도 정보와 속도가 갈수록 중요해졌고, 성패와 승패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속도’와 ‘정보’가 되는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그로부터 97년 뒤 최초의 휴대전화가 등장했다. 모토로라의 마틴 쿠퍼는 최초의 휴대전화기를 개발했다. 1979년 첫 상용화를 시작하면서 전화기는 이제 고정물에서 소지품으로 변화할 수 있는 중대한 고비를 맞이했다. 그로부터 19년 뒤 현대 IT 산업의 대표주자인 IBM은 기어코 스마트폰을 시장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21세기 기술혁명, 문화혁명의 선두주자인 스마트폰은 전화기를 개발한 지 약 120년 만에 인류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최초의 스마트폰 사이먼

스마트폰은 흔히 PC와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휴대전화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전화할 수 있는 소형 컴퓨터가 바로 흔히 이해하기 쉬운 스마트폰의 본질이다. 최초의 스마트폰이라 꼽히는 사이먼은 1992년 등장했고, 현재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주소록, 전자우편, 팩스 송수신, 세계시간, 게임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특히 터치스크린 방식을 도입했다. 가격은 90만원대(899달러).
IBM과 벨사우스에 공동 개발한 사이먼은 199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듬해인 1993년 일반인들에게 시판됐고, 미국 내 15개주 150개 도시에서 판매됐다.
사이먼은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 이동통신 사업자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가의 제품이었고,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으면서 IBM에 구조조정의 바람을 몰고 오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
사이먼은 현재 스마트폰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능을 1990년대 초반에 보여줬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을 뿐, 요즘과는 거리가 있는 특징 때문에 외면받았다. 무엇보다 소형 컴퓨터가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제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PC 동기화 기능,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동시킬 수 없어 하드웨어 제조업체에 의존한다는 점들이 사용자들에게 큰 제약으로 다가왔다.
사이먼은 실패한 제품이지만 현재 스마트폰이 구동되는 기본 방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터치패드 방식, 오락기능 등이 스마트폰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고 개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스마트폰’이라 이름 짓다

핀란드의 휴대폰 절대 강자 노키아는 1996년 첫 스마트폰 제품라인(Nokia Communicator line)을 발표했다. 이 스마트폰은 당시 노키아의 베스트셀러의 휴대전화와 휴렛팩커드의 PDA 모델을 결합한 것이었다. 
노키아 9000은 접이식으로 상단에 디스플레이와 하단에 키보드를 장착했다. 전화와 팩스 송수신, 인터넷 연결, 카메라 기능을 갖추고 있었고, 심지어 와이파이(WiFi)도 사용할 수 있었다. 운영체제 또한 개방형 운영체제였고, 컬러 스크린 모델까지 도입했다. 그제야 인터넷 업무방식에 익숙해진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사무실을 주머니 속으로 옮겼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통신 기간망의 부재가 노키아 9000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전 세계 IT 시장은 기간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광통신으로 바꾸던 시대였고, 그 과도기에 탄생한 노키아 9000은 갖고 있는 기능을 100% 활용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마치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우리나라 골목길에 주차돼있는 모습이었던 것.
기록될만한 사실은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이 노키아 9000에서 처음 쓰였다는 것. 노키아는 제품을 홍보하며 처음으로 스마트폰이라 이름 지었고, 그 단어가 현재 스마트폰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MS의 도전, 윈도폰

당시 PC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슬슬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 버릇 남 못주듯’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윈도 모바일(당시 OS 이름 ‘포켓 PC’)을 통해 유무선 네트워크 연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2002~2003년에 이르러 정식으로 운영체제 상에서 전화 모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개발이 완료됐고, PDA폰과 스마트폰이 출시되었다.
이중 윈도 모바일은 기존 포켓 PC와 동일한 사양에 전화 모듈을 넣은 것을 포켓 PC 폰 에디션으로, 터치스크린이 없고 UI가 일반 휴대 전화에 맞춰진 것을 스마트폰으로 명명하여 별도로 취급했다.
윈도CE를 탑재한 PDA 또는 스마트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2000년 등장한 컴팩 H3600. 폰 위에 성냥갑만한 와이파이 모뎀을 장착해 PC처럼 인터넷 연결을 지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던 윈도CE를 기본으로 현재 윈도폰8까지 출시한 상태다. 기본적으로 윈도폰은 윈도CE의 기본을 계승한 윈도 임베디드 컴팩트 기반으로 알려져 있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메트로를 도입했고, 검색엔진 빙과 엑스박스 라이브 등이 기본 탑재돼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가트너그룹의 최근 예측에 따르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스마트폰 기종 중 하나이다.
사실 윈도폰8이 나오기 전까지 10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에서 만큼은 갈 곳 잃은 탕아와 다름없었다. 윈도CE를 주무른 결과, 어떤 IT기기에도 윈도 기반의 OS를 탑재하는 데 성공했지만, 운영체제인 윈도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불안함이 해소되지 않았고, 애플, 삼성전자 등이 제공하는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을 따라잡을 만큼 건실한 하드웨어 제조사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기업과 손잡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주받은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옴니아 시리즈로 사용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았고, 디자인에서는 애플에 완패, OS의 무결성에서는 iOS와 안드로이드에 밀렸으며, 애플리케이션 생태계 조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PC시장 초기에 IBM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을 얻어 기반 OS로 자리잡는 데에 성공했던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환경이었고, 이 결점을 메우기 위해 시도했던 모든 도전들이 시장에서 실패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다방면에 걸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3~4년 동안 뼈를 깎는 절치부심을 해왔기 때문. 메트로 유저인터페이스 도입, 엑스박스 라이브 탑재, 노키아와의 협약을 통한 ‘망고’ 업데이트 발표 등을 통해 하드웨어 제조기업의 눈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현재 델, HTC, 삼성전자, LG전자가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한 상태다.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윈도폰 플랫폼은 안드로이드보다 개발자들에게 더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위키디피아에 따르면 2012년 6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마켓플레이스에는 약 10만개의 앱이 등록돼있다.



스마트폰 초강자,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001년 처음으로 스마트폰 SPH-I300을 출시했다. 외국에서만 팔린 이 모델은 팜OS 3.5를 탑재했고, 2007년 PDA폰의 형식을 탈피한 첫 스마트폰을 해외에 출시했다. 갤럭시S1과 상당히 닮아있던 이 모델은 2009년 삼성이 옴니아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졌다.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제작할 당시 휴대형 컴퓨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동 중 무선으로 인터넷 및 PC통신, 팩스 전송 등을 지원했고, 이 기능을 코드분할 다중접속방식, 이른바 CDMA로 개발했다는 점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특히 휴대용 컴퓨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2000년 내놓은 모델은 일반 휴대용 전화기의 화면보다 2배 정도 큰 LCD(액정디스플레이)를 채택했고, 데이터 송수신은 물론 1000개에서 2000개에 이르는 주소를 관리할 수 있는 개인정보관리시스템(PIM, Personal Information Management)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운영체제가 없었던 삼성전자는 제휴와 오픈소스를 적극 활용하는 공격적인 태도로 시장에 접근했다. 이 전략은 자연스럽게 갈 곳 모르고 길을 헤매던 마이크로소프트와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노키아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행보였다.
삼성전자가 2007년과 2009년에 선보인 국내 최초(?)의 스마트폰인 옴니아와 옴니아2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을 기반으로 제작했고, 2009년 안드로이드를 내장한 갤럭시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 6월 갤럭시S를 출시하면서 드디어 애플의 대항마로 자리잡게 되는데, 갤럭시 S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잡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삼성 갤럭시S는 슈퍼 AMOLED를 탑재해 기존의 AMOLED를 탑재한 기종보다 더 선명한 화면을 보여줬고, 애플 아이폰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동영상 무인코딩 재생을 지원했다. 삼성전자는 이전 스마트폰인 옴니아 시리즈에서 받았던 질타를 잊지 않고 있었고,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면서 운영체제의 안정은 물론 애플리케이션 부분에서 모바일 생태계에 편입되려는 적극적인 도전이 주효했다. 2012년 1월에 갤럭시S 판매량은 전세계에서 2500만대를 돌파했다.
스마트폰의 역사는 IBM과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가 첫단추를 끼웠고, 삼성전자가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사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전쟁이라고까지 명명되는 애플과 안드로이드의 대결과 더불어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이끌었던 블랙베리는 다음편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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