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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테인먼트8] 32비트 시대 개막…업계의 잇단 출사표와 엇갈린 명암

  • 등록 2013.05.03 10: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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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비트 시대의 개막
업계의 연이은 출사표…엇갈린 명암


콘솔은 산업의 일부분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전했다. 콘솔 황금기인 1990년대 중반 32비트 시대를 설명하는 데 있어 기술의 발전과 유저의 성향을 먼저 알아보는 게 순서로 타당하다. 당시 수많은 업체들이 이 분야에 출사표를 연이어 던졌다. 하지만 연이어 명암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서삼광 객원기자 (seosk@dailygame.co.kr)


32비트 시대가 열리다

1990년대 중반, 콘솔 게임기의 교체 속도는 기술의 발전과 발맞춰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8비트 게임기인 패미콤이 10년이 넘는 기기 수명을 누렸던 것과는 달리 16비트 게임기인 세가 메가드라이브(북미명 제네시스)와 닌텐도 슈퍼패미컴(북미명 슈퍼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6~7년여의 수명을 끝으로 차세대 게임기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16비트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1994년부터 각종 게임 매체에서 차세대 콘솔 게임기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1과 세가 세턴 등 32비트 CPU를 사용한 차세대 기종의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미 메가드라이브로 콘솔 게임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세가는 차세대 휴대용 게임기 발매가 소니에 뒤쳐질 것으로 예상되자, 게이머의 관심과 32비트 게임기 시장의 선점을 위해 32X라는 메가드라이브 추가 기기(Add on)를 발매한다.
32X는 메가드라이브의 롬팩 슬롯에 장착하는 기기로 32비트 CPU가 장착되어 게임에 필요한 연산(계산)을 담당하는 기기이다. 메가드라이브는 32X의 등장으로 32비트(bit)로 처리 데이터가 2배가 되면서 기존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게임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최초의 3D 폴리곤 격투 게임인 버추어파이터도 메가드라이브 32X를 사용해 가정용으로 발매된다. 메가드라이브 32X용 버추어파이터는 아케이드 버전보다 그래픽과 성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게임 플레이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이식됐다. 당시 하드웨어 기술로는 가정용 게임기와 같이 소형기기에 고성능 CPU를 탑재 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16비트 CPU 기반의 콘솔 게임기에서도 3D 게임은 존재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2D 게임의 기본이 되는 레이어 중첩을 이용한 눈속임에 가까웠다. (스타폭스 시리즈, 스페이스헤리어 등)때문에 X축과 Y축, Z축을 이용한 가정용 3D 폴리곤 게임은 버추어파이터이라는 주장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가 32X는 개발 기간만큼이나 빠르게 게이머들에게 잊히게 된다. 당시 많은 게이머들이 세가 세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의 발매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 라인업의 부족과 32X의 내부 문제, 게임의 각종 버그도 32X 부진에 한 몫 하게 된다.
콘솔 게임 역사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32X를 먼저 설명한 이유는 최초의 32비트 게임기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3D 게임의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버추어파이터를 비롯한 전용 게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3D 시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존재로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흔히 3D라는 개념을 영화와 게임에서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3D 영화와 3D 게임은 엄격히 구분해 사용해야 한다. 물론 3D 입체 효과를 사용하는 닌텐도 3DS가 발매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2비트의 트레이드마크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3D 영화는 하나의 물체에 원근감을 주는 것으로 눈의 착시를 이용한 화면 표시 방식이다. 하지만 게임에서 말하는 3D는 폴리곤 기반의 표시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물체를 입체적으로 표현해주는 방식은 3D 입체 영상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가상현실을 3D 폴리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기술적 내용을 파고들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이제 콘솔이나 컴퓨터용 게임에서 사용하는 폴리곤 방식을 3D로 부르겠다.
3D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둬야 하나는 개념이 바로 폴리곤(Polygon)이다. 폴리곤은 다각형이라는 뜻으로 3D 캐릭터를 만들 때 쓰이는 최소 단위 중 하나이다. 폴리곤은 작은 다각형으로 물체 표면을 표현 하는 데 쓰인다. 인체에 비유하면 근육과 피하지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피부의 질감이나 색상은 텍스처(Texture)로 표현한다).
많은 수의 폴리곤으로 제작된 3D 게임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처리장치의 빠른 연산 속도가 중요하다. 3D 게임은 폴리곤과 텍스처의 움직임을 수학적 계산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흔히 렉이라 부르는 프레임 드롭(Frame Drop) 현상은 폴리곤의 움직임을 처리하는 CPU나 GPU의 계산 속도가 느려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3D 게임을 정상적인 속도로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수학 계산에 특화된 빠르고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가진 32비트 CPU의 존재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특수한 경우는 예외로 하겠다).




대중화에 기여하지만…

폴리곤의 장점은 캐릭터의 기반이 되는 모델을 만들어 놓으면 캐릭터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특징을 바탕으로 3D 게임은 2D 게임에 비해 개발 기간 단축과 게임 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2D 게임은 수많은 이미지를 그리고,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3D 게임은 캐릭터의 뼈대(프레임), 폴리곤(근육과 피하지방), 텍스처(피부)만 만들어 놓으면 움직임은 수학적 계산으로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덕에 기존의 2D 게임 개발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캐릭터 디자이너의 비중이 대폭 낮아지게 되었고, 이는 개발 비용의 감소와 집중으로 통해 저렴하고 고품질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2D 스프라이트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게임의 용량이 낮아지는 추가 효과도 덤으로 따라왔다. 당시에는 게임 용량이 게임의 가격을 결정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32비트 게임기가 선택한 고용량 저비용 매체인 CD(Compact Disk)와의 시너지 효과로 10만엔 이상하던 고품질의 게임이 4만~7만엔대로 떨어지는 데 일조한다.
고품질, 저비용, 생산성이라는 장점으로 똘똘 뭉친 3D게임의 단 하나의 약점은 고성능 게임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제약 때문에 비교적 드물게 제작되던 3D 게임은 32비트 게임기가 출시되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3D 기술이 32비트 게임기와 만나 발전하면서 중소 게임 제작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3D 게임의 개발은 2D게임에 비해 초기 단계가 길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오류나 캐릭터 변경이 더 손쉽고 싸게 가능하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비용으로 게임을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중소 개발사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게임들을 쏟아내면서 콘솔 게임기 황금기에 시작을 알린다.
또한 게임에 사용되는 3D 기술은 영화나 뮤직 비디오에서 사용되는 3D 특수 효과와 유사한 특징이 있다. 이런 특징은 대형 영화사의 관심을 게임으로 돌리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대형 영화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을 이용해 손쉽고 간편하게 캐릭터 게임을 만들어 게임 시장에 진출을 시도했고 이는 하나의 문화 산업 콘텐츠를 이용한 사업 영역 넓히기에 딱 맞는 모델이 되었다.
대형 영화사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청을 받던 특수효과 전문팀들은 그 동안 영화로 쌓은 노하우를 살려 중소 개발사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만일 32비트 게임기와 3D 게임이 게임의 질적 양적 성장을 이끌지 못했다면 지금의 게임 산업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3D 게임이 게임 산업 규모와 질적 향상에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3D 게임 특징은 짧은 개발기간과 낮은 투자비용, 손쉬운 개발 등의 특징과 잘하면 ‘대박’, 못해도 ‘중박’이라는 당시 분위기와 맞물려 저품질의 게임이 쏟아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현상은 아타리 쇼크와 매우 유사했기 때문에 당시 몇몇 전문가들은 게임 산업의 위기론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닌텐도가 시작한 개발사 관리 제도와 게임 가격 하락, 주요 소비층의 변화 등이 복합되어 아타리 쇼크 때와 같은 산업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게임 전문 매체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정보를 얻기 쉬워진 것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상대적으로 긴 개발기간과 많은 투자가 필요했던 기존의 2D 게임 업체들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화려하고 신기한 3D 게임에 밀려 2D 게임은 게이머의 눈길을 끌지 못했고, 마구 쏟아지는 3D 게임의 물량과 품질을 따라잡지 못한 중소 게임 개발업체들은 자금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물론 고품질의 2D게임은 마니아 층에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메탈슬러그가 대표적) 그동안 게임 산업의 기반 역할을 담당하던 SNK와 허드슨 등의 중견 업체가 부도로 몰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NEC의 도전

일본전기주식회사(日本電氣株式會社, Nippon Electric Company, 이하 NEC)는 아는 것처럼 개인용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가전 기기를 만드는 업체.
NEC는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와 일본 경제 버블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었고, 여러 가지 사업에 도전해 실패하더라도 제정 측면에 위협(Risk)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 기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도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 리스크, 하이 리턴’(No Risk, High Return)은 게이머의 요구(Needs)를 분석해 제품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즉, 잘되면 대박이고 성공 못해도 상관없다는 안일한 시장분석이 NEC 휴대용 게임기 시장 진입에 실패의 요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NEC는 이런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PC엔진을 이용해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 도전을 한다. 휴대용 게임기 PC엔진 GT는 기존의 PC엔진에서 사용하던 휴 카드 게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플랫폼이 아닌 기존의 콘솔 기기를 소형화 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PC엔진 GT가 발매된 1990년도는 고밀도 집적회로와 배터리 용량의 한계 때문에 2.6인치 스크린과 거대한 본체 크기, 시야에 따라 색이 변경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PC엔진 게임은 메모리 카드인 하늘의 소리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EC는 1991년 PC엔진 LT를 발 빠르게 추가했지만 비싼 가격과 게임보이와의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초라한 성적을 남기게 된다. NEC는 이런 휴대용 PC엔진을 살리기 위해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를 비롯한 할리우드 드라마와 영화에 간접 광고 형식으로 등장하지만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하고 곧 시장에서 사라진다(이런 시도는 IT 제품을 홍보하는 데 많이 쓰인다. LG나 삼성의 모니터는 물론 노키아의 휴대폰 등은 첨단 스파이 도구로 자주 등장).





필립스, 콘텐츠 사업 도전


전기면도기로 유명한 필립스. 이 회사는 첨단 의료장비와 소형 가전기기로 소비자에게 더 친숙한 회사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가 위치한 필립스의 정식 명칭은 로얄 필립스 일렉트로닉스 N.V.(Royal Philips Electronics N.V.)이다.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네덜란드 축구클럽 PSV 아인트호벤의 스폰서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소형 가전과 첨단 의료 기기 메이커인 필립스도 한때 게임 시장에 주목한 적이 있다. 물론 게임만을 위한 기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필립스는 1986년 소니와 함께 CD를 매체로 하는 기록 표준 규격인 그린 북(Green Book)을 획득하면서 콘텐츠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필립스 최초이자 마지막 게임기로 볼 수 있는 CD-i 플레이어는 1991년 세상에 등장했다. 이 기기를 정확하게 분류하자면 오디오 CD와 비디오 CD(옵션 상품이었다)를 재생할 수 있는 가정용 영상 재생기였다.
CD-i는 주로 교육이나 음악, 자기 계발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유통이 되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다. 필립스의 주요 사업 영역인 병원이나 소형 가전시장에서 게임기가 아닌 비디오 플레이어로서 말이다.
하지만 필립스는 CD-i를 이용한 게임에도 욕심을 내기 시작한다. CD-i는 1994년 발매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어드벤처 게임 미스트(Myst)를 선두로 레밍스와 7번째 손님 등 PC 게임과 호텔 마리오, 젤다의 전설 등 닌텐도의 간판 타이틀을 전용 타이틀로 내세웠다.
그러나 CD-i는 콘솔 게임기로 인정받기에는 너무나 성능이 뒤떨어져 있었고, 닌텐도의 간판 시리즈 2종의 이름을 빌린 타이틀을 발매하기는 했지만 게임의 품질이 너무 낮았기 때문에 콘솔 게임기로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 금성전자의 실패

지금은 LG전자로 이름을 바꾼 금성전자도 현대, 삼성에 뒤이어 콘솔 게임 시장에 도전한 적이 있다. 백색가전시장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른 금성전자는 일본의 마쓰시타(지금의 파나소닉)이 만든 가정용 게임기 규격을 이용해 3DO 얼라이브라는 제품을 한국에 출시했었다.
3DO는 오디오(Audio)와 비디오(Video)에 뒤를 이을 가전과 사용자가 소통 가능한 세 번째 표준 규격 디오가 되는 것을 뜻하는 이름이다. 이 게임기의 개발 목표는 비디오 시장의 제도(라이선스를 구매하면 누구나 생산이 가능한)를 차용해 여러 게임사가 소규모 자본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오픈마켓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3DO는 32비트 기반의 제품으로 비디오 CD의 재생이 가능한 복합기기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 일본에서 출시된 세가의 새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1에 밀려 설자리를 찾지 못했다(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은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았음에도 3DO보다 잘 팔렸다). 3DO의 실패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유는 3DO가 가진 출신 배경 때문이다. 마쓰시타는 가전제품 메이커로는 유명했지만 콘솔 게임기에는 신규 진출한 업체라는 점이 작용했다.
즉, 신규 진출한 업체의 게임기에 대한 기존 게임 개발사의 평가는 냉담할 수밖에 없었고, 세가나 소니에 비해 열려있는 라이선스 정책은 아타리 쇼크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또한 3DO용 게임을 제작할 경우 기술의 일부를 마쓰시타에 공유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개발사의 노하우(Know-How)를 빼앗기기가 싫었던 것이다.
때문에 3DO 게임은 유명 게임 시리즈가 빠진 부실한 라인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슈퍼 스트리트파이터 2X나 미스터리 호러물 D의 식탁 등은 3DO로 발매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게임이 거의 모든 콘솔 게임기로 발매가 되었기 때문에 3DO를 구매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또한 높은 가격은 제품 판매 초반부터 보급에 큰 걸림돌이었다. 1990년도 초반 콘솔 게임기 제작사의 주요 수입은 게임 업체들이 만든 게임을 출시 해주고 얻는 라이선스 비용과 카트리지 제조비용이었다. 하지만 마쓰시타는 콘솔 게임기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무시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정가를 고집하며 3DO 부진을 부추겼다.
결국 마쓰시타의 판매정책과 게임 개발사들의 협력 부재로 금성전자의 콘솔 게임 시장 진출은 큰 실패만 남고 말았다. 이때의 실패 때문에 지금의 LG전자가 게임 산업 진출에 소극적인 면을 보이는 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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