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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테인먼트3] 콘솔 3세대의 등장…8비트의 영광이 현재로 이어지다

  • 등록 2012.11.30 09: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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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3세대의 등장
8비트의 영광이 현재로 이어지다


1980년대는 흔해 콘솔 게임 3세대라 부르는 8비트 게임기의 시대였다. 특히 1983년은 콘솔 게임 왕국으로 발전한 일본에서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가 등장해 전 세계 게이머들과 첫 만남을 가진 해이기도 하다. 닌텐도의 성공을 계기로 게임 시장에서 아타리 쇼크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패밀리컴퓨터(패미컴) 열풍은 아타리 쇼크로 인해 큰 피해를 본 미국 소매상들이 다시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를 판매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배경에는 닌텐도의 엄격한 게임 품질 관리와 개발사(서드파티) 제도를 통해 아타리가 붕괴시켰던 게임 시장을 바로 세운 것이 크게 작용했다.





콘솔 3세대의 개막
닌텐도와 패미컴의 성공은 일본을 비롯한 게임기 제작사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이는 세가가 본격적인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패미컴 열풍에 충격을 받은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사 세가는 2년 뒤인 1985년 ‘SG-1000’을 발매한다. 아타리 역시 1986년 8비트 게임기 ‘아타리 7800’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은 8비트 게임기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아타리는 1984년 ‘아타리 3600’이란 이름으로 시험 판매를 시작한 뒤 1986년 6월에는 아타리 7800이란 이름으로 개명해 정식 판매를 시작한다. 아타리 시리즈의 최신작인 아타리 7800은 단순해진 조작기(콘트롤러)와 아타리2600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호환 기능, 저렴한 가격(140달러)을 무기로 소비자를 유혹했다.(경쟁기종 패미컴은 190달러)
하지만 아타리 7800은 닌텐도와 패미컴이 점령한 콘솔 게임기 시장을 되찾아 오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아타리의 황금기를 함께 했던 개발사들은 이미 닌텐도와 서드파티 계약을 체결한 뒤였고, 50달러 이상 저렴한 가격 역시 ‘패미컴’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아타리 7800은 화면을 표시하는 동안 CPU가 잠시 멈추는 설계 결함도 치명적인 결점도 있었다. 이런 문제는 아타리2600용 게임을 실행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타리 7800 전용으로 제작된 게임은 부드럽고 빠른 화면 전환이 불가능해 시대에 뒤떨어진 기계라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세가, 콘솔에 뛰어들다
8비트 게임 시장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게임 회사의 길을 걷게 된 세가는 일본서비스게임즈와 로젠 엔터프라이즈가 합병해 설립된 회사로 원래 주크박스의 제조와 수리를 하던 가전제품 회사였다. 당시 주점이나 쇼핑몰 등에서 주크박스를 설치하던 세가는 주크박스 옆에 설치된 아케이드 게임기의 수익성과 가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세가는 주크박스와 아케이드 체감형 게임기, 인형뽑기 기계를 제작하며 하드웨어 설계 노하우를 쌓아 갔다. 마침 세가는 패미컴에서 시작된 가정용 시장에 주목하고 개발에 착수, 1985년 가정용 게임기 ‘SG-1000’을 세상에 선보인다.
SG-1000은 8비트 가정용 컴퓨터인 ‘MSX1’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기로, 초창기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MSX1 게임이었기 때문에 흥행 측면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세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G-1000을 경량화하고 새로운 컨트롤러를 탑재하는 등 연구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고, SG-1000의 마지막 시리즈가 된 SG-1000 마크4로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에 안착하는 성과를 거둔다.
세가가 콘솔 게임기 시장에 안착하는 계기가 된 SG-1000 마크4는 이후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하 마스터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판매를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삼성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게임기이다.
최신 가정용 콘솔 게임기 마스터시스템은 하드웨어 개발사로서 세가의 첫 완성품으로 꼽히고 있다. 세가가 자체 개발한 ‘알렉스키드’(Alex kidd in Miracle World)와 액션 어드벤처 ‘원더보이’ 등 퍼스트파티 게임이 본격적으로 출시된 것과 서드파티 제도의 본격적으로 도입된 콘솔 게임기라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세가의 마스코트가 된 세상에서 제일 빠른 고슴도치 ‘소닉’(Sonic the Hedgehog)은 마스터시스템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자리 잡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가정용 콘솔 게임기의 처리 속도의 한계까지 사용해 스피드 한 게임 진행을 선보인 소닉은 북미 게임시장에서 마리오와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세가는 기존의 가전제품 회사가 아닌 본격적인 게임 회사로서의 인지도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스터시스템이 세가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한 것과는 반대로 판매량과 게임 라인업 등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 미만이었다는 것이 당시 게이머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소닉과 ‘원더보이’ 등 일부 히트작을 제외하면 마스터시스템을 대표하는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북미 콘솔 게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닌텐도가 대부분의 게임 제작사를 자신의 서드 파티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이. 당시 닌텐도는 다양한 콘솔 게임기로 게임을 발매하는 멀티 플랫폼 정책을 허용하지 않아, 세가 진영에 참여를 원하는 개발사들도 닌텐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경쟁사인 아타리나 세가는 빈약한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자체 개발로 매 꿔나가야 했고, 부족한 소프트웨어 라인업과 히트작들은 마스터시스템의 평가를 낮추는 데 일조했다.
멋진 게임 솜씨를 뽐내며 억대 연봉을 받는 직업 프로게이머. 1980년대 일본에서는 ‘프로게이머’의 원조 격인 ‘명인’이란 직업이 존재했다. 일본 게임 업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타카하시 토시유키 명인(高橋利幸名人)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타카하시 명인은 전 세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보수를 받은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명인이란 칭호는 하나의 분야에서 특출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타카하시는 원래 운동선수 출신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타카하시는 컴퓨터를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90만엔(한화 1000만원)을 투자해 컴퓨터를 구입하며 게임과 인연을 맺는다.
1980년대 일본은 지금과 달리 컴퓨터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었고, 컴퓨터 관련 서적은 전문적인 용어와 낮은 번역 수준으로 독학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거금을 투자한 타카하시는 컴퓨터 공부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고, 컴퓨터를 활용할 방법을 배우기 위해 게임 개발업체 허드슨에 입사한다.



8비트 시대의 명인 타카하시
당시 허드슨 장기나 바둑 리그처럼 게임도 ‘명인’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신입 영업 사원이었던 타카하시를 프로게이머로 훈련시킨다. 원래 운동선수 출신이었던 타카하시는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1초당 16번 버튼을 누르는 실력(전성기에는 초당 17연타도 가능했다)을 선보이며 일본 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타카하시는 가수로 데뷔해서 앨범을 발매하거나, 각종 만화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이 붙은 게임이 발매하는 등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얻게 된다. 이러한 타카하시 명인의 유명세는 허드슨과 같은 게임 개발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허드슨은 타카하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청소년층에서 버튼 빨리 누르기 경쟁이 유행하자, 버튼 클릭 속도를 주변기기나 자사의 게임 ‘미궁조곡‘(한국에서는 마일론의 비밀로 유명했다)에 버튼 클릭 속도를 측정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등 발빠른 대응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





콘텐츠 사업의 메인이 되다

8비트 게임기의 전성시대를 누린 닌텐도와 세가는 게임을 바탕으로 여러 콘텐츠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패미컴과 세가마스터시스템을 바탕으로 창조된 마리오와 소닉은 콘솔 게임기 최대 시장인 북미와 유럽을 노린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 돼, 게임 개발사들에 새로운 매출원으로 성장한다.
소닉과 마리오의 활약은 만화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와 유아 교육용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등 여러 사업분야로 뻗어 나갔다. 소닉은 미국에서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화 되어 방영됐고, 마리오는 셀 수 없이 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는 게임 제작과 판매라는 한정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었던 게임 업체들에게 캐릭터 산업이라는 새로운 매출원을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게임 캐릭터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가 영화화되는 현상도 생겨났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1989년 작 ‘전자오락의 마법사’(The Wizard)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영화는 게임을 통해 가족과 인간관계를 회복한다는 주제를 그린 가족 영화로, 게임은 스토리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 등장했다.(참고로 닌텐도의 대표적인 흥행작인 슈퍼마리오3는 전자오락의 마법사를 통해 전 세계에 최초 공개 됐다)
대표적인 콘텐츠 산업 중 하나인 음악 역시 이 현상을 피하지는 못했다. 당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위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실험적으로 게임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일본과 북미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이런 현상 덕에 게임은 아이들의 장난감이 아닌 예술적인 측면에서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된다. 이후 문명4의 타이틀곡 ‘바바예투’(Baba Yetu)가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하고,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게임 음악를 중심으로 연주회를 개최하는 식으로 발전한다.



약이 된 롬팩의 한계
지금이야 컴퓨터나 게임기에 사용되는 메모리(Read Only Memorie, ROM)가 테라 바이트(Tera Byte) 영역을 넘나들고 있지만, 3세대 콘솔 게임기가 판매되던 1980년대 당시에는 메가 바이트(Mega Byte) 시대였다. 현재 대부분의 게임이 2기가 바이트(Giga Byte) 대에서 제작된다고 했을 때 1980년대 게임은 현재의 200분의 1 수준인 4메가~6메가 바이트로 제작됐다. 또한 메모리 역시 현재 전자적 신호를 통해 읽고 쓰기가 가능한 것과 달리 공장에서 입력한 데이터만을 기록할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고가였던 메모리로 인해 게임은 저용량으로 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대작 아케이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패미컴으로 이식됐을 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아케이드 용으로는 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용의 둥지’(Dragon’s Lair)가 패미콤으로 이식 될 당시 횡스크롤 액션으로 변경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용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프로그래머들은 스프라이트 이미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스프라이트 이미지는 여러 가지 행동을 그린 이미지를 이어 붙여 하나의 파일로 만들고, 필요할 때마다 특정 부분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스프라이트 이미지는 게임을 만들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그래픽적 고민과 게임 용량을 줄이는데 획기적인 역활을 하며 고품질 게임 개발에 중요한 기술로 사용되었다. 스프라이트 이미지가 고품질이면서도 저용량이라는 장점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이미지 파일의 시작과 끝부분에 헤더와 패리트라는 추가 정보를 최소화하는 기술 덕분이었다. 즉, 여러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 사용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RPG와 같은 플레이 시간이 긴 게임은 필연적으로 많은 이미지와 프로그램 코드를 필요로 했고, 프로그래머들은 이미 사용된 이미지의 색상을 변조(색상 팔레트 방식)하는 것으로 적 몬스터를 생산해 게임의 전체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개발해 사용하게 된다. RPG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몬스터와 후반의 몬스터가 생김새는 같고 색깔만 다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미지의 좌우를 변경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게임의 한계를 깨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개발된 이미지 좌우 변경 방식은 현재 2D 방식으로 제작되는 게임들에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방식으로 국산 MORPG인 던전앤파이터에서도 사용되었다.
던전앤파이터에 등장하는 귀검사의 경우 칼을 쥔 손이 시선에 따라 오른손과 왼손으로 변경되는 것이 이 방식을 사용한 흔적이다. 앞서 설명한 스프라이트 이미지와 좌우반전, 색상 팔레트 사용 등은 8비트 3세대 콘솔 게임기 패미컴과 세가마스터시스템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8비트 게임기 시대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만한 것이 있다. 바로 SROM(Static ROM)과 배터리를 이용한 세이브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기존 게임들은 게이머가 행한 행위나 획득한 아이템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게임을 깨기 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리오나 록맨 등의 횡스크롤 게임에서는 워프존(숨겨진 위치에 존재하며 특정 스테이지까지 바로 이동해 주는 장치)을 게임에 넣거나 패스워드를 통해 게임을 이어할 수 있게 하는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SROM이 보편화 되면서 게임의 연속성 문제가 해결되자 게임의 장르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액션 어드벤처의 고전인 ‘젤다의 전설’ 시리즈나 롤플레잉게임(RPG)처럼 긴 시간이 필요한 게임들이 등장한 것도 SROM 덕분이다.

서삼광 객원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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