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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슈] 삼성 대 애플 특허전…어디에서 어디로 가나?

  • 등록 2012.10.30 08: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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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대 애플 특허전…어디에서 어디로?

삼성전자와 애플. 애증의 관계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이들 업체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부문에서 협력과 동시에 전쟁을 치뤄야하니 말이다. 한 편에서는 스마트 디바이스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글로벌 특허 전쟁을 벌이는 이들의 형국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도 남는다. 과연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2004년 12월 6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 스티브 잡스 CEO의 집무실.
황창규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스티브 잡스에게 기존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를 저장장치로 사용하는 MP3플레이어와는 다른 신개념의 MP3P 샘플을 보여주며 MP3P의 새로운 가능성을 소개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기존 제품보다 훨씬 두께가 얇으면서도 가볍고 충격에 강하고, HDD에 비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콘셉트였다.
잡스는 황 사장의 말을 듣고, 자사의 MP3P인 아아팟에 낸드플래시를 탑재한 아이팟 나노를 2005년 9월에 출시하고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황 사장을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자택으로 초청해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했고, 애플은 뒤이어 2007년 아이폰 등 새로운 정보기기로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6년 4개월여 후인 2011년 4월 15일.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법원에 삼성전자를 자사의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이어 1주일 후 삼성전자는 한국, 독일, 일본에 애플의 특허 침해로 맞고소했다. 1년 6개월여간 전 세계에 걸쳐 양사는 지리한 특허 공방을 펼치고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셈이다. 별(Samsung)과 사과(Apple)의 전쟁. ‘세기의 특허전’으로 불리는 양사의 특허전쟁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됐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별과 사과의 전쟁은 왜 일어났나
벤처 역사의 출발점인 미국 내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혁신의 과정을 신봉해왔다. 애플 역시 많은 기술 혁신의 출발점은 남의 것에서의 모방에서 출발했다. 또 스스로의 모방에는 관대하지만, 타인의 모방에는 무서우리만치 강한 압박을 통해 성장해왔다.
2004년 협력 관계에서 2011년 소송의 상대방으로 선 양사 간의 어긋남의 시작은 삼성전자의 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2010년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은 삼성전자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애플은 삼성을 견제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에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5%도 못미치는 마이너였다. 하지만 2010년 갤럭시 시리즈를 출시한 이후 시장 점유율을 급격히 높였다.
스트레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2011년 지난 1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노키아(점유율 24.2%), 애플(18.6%), 림(13.8%)에 이어 삼성전자는 4위(12.6%)였고, 2분기 에는 애플은 아이폰을 무기로 노키아를 제치고 18.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스마트폰 시장 1위에 등극했다.
컴퓨터 업체 애플이 휴대폰의 세계 최강 노키아를 꺾은 역사점이 출발이었지만, 애플은 이 시기에 삼성전자에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애플의 우려가 현실이 돼 삼성전자는 지난해 올해 3분기에 23.4%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노키아를 제친 애플을 넘어서 1위에 올랐다. 애플과 노키아는 지난해 3분기 각각 14.3%와 14%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올해 2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판매량은 SA가 5050만대로 추정했고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4.6%, 애플은 17.8%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고, 과거의 스토리와 같이 ‘특허’라는 무기로 공세를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세기의 특허 전쟁 스토리
한국·미국·독일·일본을 비롯 이태리·네덜란드·영국·호주·프랑스. 삼성전자와 애플이 소송을 벌이고 있는 지역들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전 세계 9개국 50여 건의 특허 침해 여부를 두고 치열한 소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1심 및 배심원 평결이 나왔으며, 미국 ITC도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일본에서는 총 6건의 특허 중 2건에 대해 판결이 났다. 독일·영국·프랑스·네덜란드·호주·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혹은 판결이 이뤄졌다.
최근 두 번째 건에 대해 판결을 내린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애플과 삼성 모두에게 양측의 특허를 서로 침해하지 않았다고 밝혀 ‘무승부’가 나왔다.
삼성은 태블릿PC의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애플에 유리한 고지에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갤럭시탭 제품은 호주와 독일 등에서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으나, 호주에서는 항고심에서 이겼고, 독일에서는 디자인 수정을 통해 법원의 비침해 판단을 얻어내 승리했다. 지난 7월 18일 영국 법원에서는 애플이 신문·잡지와 영국 내 공식 홈페이지 등에 ‘삼성의 갤럭시탭이 애플의 아이패드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공지하도록 조치했고, 이에 불복한 애플의 항소심도 기각되면서 애플은 ‘삼성이 애플을 베끼지 않았다’는 광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법원도 갤럭시탭이 아이패드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미국에서는 판매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았으나 배심원들이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아 해당 조치가 풀렸다.
아직 양측 간 소송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출시된 애플 아이폰5에 대해서도 독일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굽히지 않고 있다. 애플도 삼성전자의 갤럭시S3를 소송 대상에 추가해 양측의 소송은 당분간 끝이 없는 평형선을 이어갈 전망이다.

혁신과 카피캣 사이
애플은 IT 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가 하면, 카피캣의 이름도 갖고 있다. ‘애플’, ‘아이폰’,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마우스’, ‘MP3 플레이어(아이팟)’, ‘멀티터치’, ‘화면 넘김 기능’, 전원장치인 ‘맥세이프’ 등 애플이 가진 혁신의 이름 뒤에는 과거 이 기술의 선구자들이 있다는 것.
사업 첫 시작부터 회사 이름과 ‘사과’ 형상의 로고에 대한 논란이 컸다. ‘애플’의 사명과 로고를 먼저 쓴 곳은 전설적인 팝 그룹 ‘비틀즈’라고 한다. 비틀즈는 자신들의 음원 관리를 위해 1968년 음원유통회사 ‘애플’사를 설립하고, ‘사과’ 로고를 등록했다.
9년 뒤인 1977년 컴퓨터 업체 애플이 설립되고 ‘사과’를 로고로 쓰자, 비틀즈는 애플컴퓨터를 고소했다. 지루한 공방 끝에 애플컴퓨터는 8만 달러의 사용료와 음악 사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타협했다.
‘비틀즈의 애플’과 ‘잡스의 애플’ 소송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잡스의 애플이 약속을 깨고 1991년에 매킨토시에 음악 작곡기능을 넣었을 때(약 2600만 달러 배상)와 2003년에 아 이튠즈를 통해 음원 유통사업에 나서면서 다시 소송을 했다.
‘카피캣 애플’의 이력은 단순한 이름이나 로고뿐 아니라 기술에까지 이어진다. 애플의 창의적 산물로 알려진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나 마우스도 처음엔 복사기 업체 제록스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1979년 하순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밸리의 거대기업 제록스 PARC 연구센터를 사흘간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졸랐고, 그 대가로 상장을 앞둔 자사의 주식 일부를 제록스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래리 테슬러라는 제록스 엔지니어가 그에게 보여준 것은 화면 내에 사각형의 아이콘을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라는 기기로 움직여 ‘윈도’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GUI)이었다.
애플은 이 GUI와 마우스를 자신들의 매킨토시에 차용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제록스가 뒤늦게 애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제품이 출시된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아이폰’이라는 브랜드도 애플 것이 아니라 미국 최대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의 것이었다고 한다.
시스코는 2000년에 인포기어테크놀러지라는 회사를 3억 10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이 회사가 1996년 상표로 등록해 놓은 ‘아이폰’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다. 시스코는 2007년 자회사인 링크시스를 통해 인터넷폰인 ‘아이폰’을 출시했으나, 3주 후에 애플은 버젓이 ‘아이폰’이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제품을 내놨다.
시스코와 소송전이 붙었고,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이름을 같이 쓸 수 있도록 시스코에 합의금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애플이 기사회생하는 데 기여한 아이팟도 비슷하다. 1997년 최초로 MP3P를 상용화한 기업은 새한그룹의 새한정보시스템(디지털캐스트와 공동 개발)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미국 시장을 장악했고, 자금력이 달렸던 국내 기업들은 시장을 잃고 문을 닫았다. 애플은 그후 자사에게 소송을 걸어온 MP3P의 해외특허권자인 텍사스MP3와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애플의 멀티터치 기능은 이미 2006년 뉴욕대 연구원이었던 재미교포 2세 제프 한이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전원연결장치인 ‘맥 세이프’도 일본의 전기밥솥 업체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반대 상황에선 어땠을까? 일례로 2008년 뉴욕시가 ‘그린 NYC 환경캠페인’에 사과 로고를 쓰자 지적재산권 침해로 뉴욕시를 공격하다가 뉴욕시민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에 앞서 다른 기업들이 애플의 소송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왔다. 한국 PC산업의 효시인 삼보컴퓨터가 대표적인 사례. 삼보컴퓨터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활로모색을 위해 미국 저가PC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1999년 코리아데이타시스템(KDS)과 미국 내 합작사인 이머신즈(emachines)를 설립했다.
당시 대당 1000달러 수준이던 PC 시장에 삼보컴퓨터는 이머신즈의 이름으로 500달러 미만의 저가PC를 내놓았다. AOL과 제휴해 ‘6개월 무료 인터넷서비스’를 무기로 단숨에 100만 대를 판매해 그해 상반기 미국 내 PC 시장 점유율 10%를 기록하며 넘버 3위에 올라섰다.
이때부터 미국 내 PC 업체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 후 애플이 특허공세에 나선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컴팩을 인수한 HP는 1999년 이머신즈가 컴팩의 특허 9건을 침해했다고 텍사스 법원에 제소했고, 애플도 이머신즈의 일체형PC ‘eONE’이 자사의 아이맥을 베꼈다고 캘리포니아 지방 법원에 고소했다.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대우통신의 미국 판매법인 퓨처파워, 이머신즈를, 일본 도쿄지법에 이머신즈의 일본 내 제휴업체 소텍까지 제소했다. 당시에도 애플 재판은 현재 삼성전자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진행됐다. 주제도 ‘트레이드 드레스’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아쉬운 노블레스 오블리주
혁신의 귀재로 통했던 애플은 요즘 단가 인하의 귀재로 업계에선 통한다고 한다.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국내 한 기업에 종사하는 익명의 소식통은 “애플은 매 분기 3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는 애플이 더 이상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적자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소식통은 “외부에서는 우리가 대형 거래선인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면서 안정적 수요처를 갖고 있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내부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며 “다른 대안이 있다면 저가의 납품을 요구하는 애플과 거래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정도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단 국내만의 일이 아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최근 폭스콘, 폭스링크 등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주문형 제품 생산(OEM)업체들이 제품 가격 및 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애플에 잇따라 납품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공장에서는 생산라인 가동 중단 등 파업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 납품 업체의 한 관계자는 “애플이 협력업체와 구축해놨던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며 “이런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부품 경쟁력이 하락하고, 결국 아이폰의 신화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엽 객원기자 /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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