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테크노트

배너

메타버스의 그림자...가상현실 세계에도 할렘가가 있을까?

URL복사
[선착순 무료] 자동차와 전자산업을 위한 AI 자율제조혁신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4/24, 코엑스1층 전시장B홀 세미나장)

[헬로티=이동재 기자]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8월 미국의 온라인 게임 로블록스(Roblox)에서 해커들이 시스템을 해킹해 선정적인 이미지와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노출하고 게임 캐릭터가 음란행위를 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일으켰다.


로블록스는 가상 공간 안에서 정해진 형식 없이 놀이 방식과 규칙을 플레이어 마음대로 설정하고 즐길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으로 하루에만 3천만 명 이상이 접속하는데, 그 중 절반이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다. 


사건 발생 직후, 로블록스 측은 악의적이고 부적절한 콘텐츠를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안전하고 깨끗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여러 차례 발견되며 아이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국내에서도 빅히트의 ‘위버스’,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등 로블록스처럼 메타버스를 지향하는 플랫폼이 청소년 이용자들로부터 인기를 끌며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는 만큼, 메타버스의 안전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메타버스, 어디까지 왔나?


메타버스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Meta(메타)’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유니버스)’ 의 합성어로서 일반적으로 디지털 공간의 가상 세계를 가리킨다. 


단순하게 온라인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메타버스는 그보다 진화된 개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서비스 이용자는 게임에서 설정한 목표에 따라 전투, 이동과 같은 제한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일이 가능하다. 완벽한 자유도를 바탕으로 학업, 쇼핑, 콘서트 관람 등,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을 날고 우주에 가는 등 현실 세계에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까지도 경험할 수 있다.


▲순천향대학교는 지난 3월 ‘점프VR’이란 플랫폼을 통해 버추얼 입학식을 열었다. (출처 : 순천향대학교)



작년 3월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 졸업식을 진행한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마인크래프트는 네모난 블록을 쌓아 자기만의 건축물을 세우고 친구를 초대할 수도 있는,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자랑하는 샌드박스 게임이다.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이 취소되자 아쉬워하던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학교와 강당을 실제와 똑같이 만들고 그 안에 모여서 졸업식을 진행했다. 순천향대학교는 지난 3월 ‘점프VR’이란 플랫폼을 통해 버추얼 입학식을 열었다. 순천향대 신입생들은 가상공간 안에 아바타로 접속해 총장님의 인사 말씀과 신입생 대표의 입학 선서를 듣고, 교수 및 동기들과 상견례를 나눴다. 신입생들은 서버 환경 불안정과 시청각 자료 위주의 콘텐츠 등 아쉬운 점을 들면서도 절반 이상이 만족스럽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닌텐도에서 출시한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약칭 모동숲)’ 안에서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게임 플레이어가 자신만의 무인도를 개척하고, 또 코드를 공유해 다른 친구의 섬에 방문해 소통하는 메타버스형 게임이다. 바이든 후보는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섬 ‘Biden HQ’를 만들고 모두에게 자신의 코드를 공개해 유권자들을 자신의 섬으로 초대했다. 유권자들은 Biden HQ에서 바이든 후보의 아바타에게 직접 캠페인 슬로건을 듣기도 하고, 섬 안의 선거 캠페인 사무실에서 바이든 후보와 선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캇은 작년 4월,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신의 콘서트를 열었다. 에픽게임즈의 대표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진행된 콘서트에는 총 123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트나이트는 원래 배틀로얄 방식의,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슈팅게임이지만, 이날 게임 이용자들은 마치 현실 세계의 콘서트장에서처럼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흥겹게 아티스트의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현재 메타버스는 일부 게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만 제한적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회사 업무나 학교 수업, 쇼핑 등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이뤄지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또 기술이 발전해 가면, 현재 게임 그래픽 수준의 공간 배경과 아바타가 아니라 현실에 더 가까운 시각효과가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여러 연구기관에서 개발 중인 텔레햅틱(원격 촉감 전달) 기술도 메타버스와 깊이 연관돼 있다. 미래에는 어쩌면 현실 공간과 메타버스 공간을 구별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메타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


전문가들의 말처럼 메타버스가 지금보다 더 깊이 일상생활과 연결된다면, 자연스럽게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많은 부조리가 메타버스 안에서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온라인 게임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높은 자유도로 인해 사용자의 행위를 온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상공간과 익명성이라는 메타버스의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범죄에 대한 가책감과 부담감이 경감돼, 더 악질적이고 교묘한 수법의 범죄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전 세계의 사용자들로부터 들어오는 무수히 많은 양의 데이터를 일일이 검열할 수 없으니, 메타버스가 무법지대가 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마냥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메타버스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다. 로블록스 게임 안에는 Oder(오더)라는 부류의 이용자들이 있다. 오더는 Online Dater(온라인 데이터)의 줄임말로 온라인에서 연애 상대를 찾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이 파트너를 찾는 행위를 Oding(오딩)이라고 하는데, 오딩 행위는 로블록스 안에서 금지되어 있지만 자유도가 높은 게임 성격상 규정을 피해가는 오더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로블록스를 비롯한 메타버스형 게임에서 오딩행위가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악의적 의도를 가진 성인이 자아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 미성숙한 청소년 및 유아를 노리고 접근하는 범죄 사례 때문이다. 지난달 영국에서는 포트나이트와 로블록스를 통해 미성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한 23세 남성이 징역 2년과 5년간의 성희롱 예방 명령(SHPO)을 선고받은 사건이 보도됐다. 매체에 따르면, 그의 표적은 주로 7세에서 12세 사이의 남자아이로, 게임상에서 친밀감을 형성한 후, 점차 반바지를 입은 사진을 요청하거나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내는 식으로 마수를 펼쳤다. 남자가 과거에 아동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 전력이 있다는 것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영국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로블록스는 개인이 자유롭게 게임을 설계하고 다른 사용자가 만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일종의 게임 플랫폼이기 때문에 부적절한 게임이 제작되고 유통되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작년 8월, 해커들에 의해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묘사하고,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담은 게임이 큰 규모로 확산되어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       


미성년자들이 부적절한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플로리다주에 살고 있는 한 8살 남자아이의 부모로부터 받은 제보를 전했다. 제보에 따르면, 부모는 회원가입 시 ‘보호자 가이드’에 따라 콘텐츠 노출이 제한되도록 설정을 했지만, 며칠 후 아들의 아이패드 속 로블록스 게임 화면에 끈속옷을 입은 여자의 사진과 음란한 메시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메타버스상에서 음란물을 올리거나 유통하는 등의 행위는 현실 세계의 법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세계가 아닌 가상 현실이라는 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사기성, 절도성 죄의 경우, 현재로선 처벌의 수위가 마뜩치 않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용자의 계정을 삭제하고 같은 계정으로 가입하지 못하게 막는 ‘밴’이 있지만, 가입 시 인적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는 매체의 경우, 쉽게 다른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로 다시 가입하거나, 다중으로 계정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로블록스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보호자를 위한 가이드. (출처 : 로블록스 홈페이지)


메타버스는 익명의 세계다. 메타버스의 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아바타를 앞으로 내세워 타인과 소통한다. 신분이 전혀 노출되지 않으며 현실과 비교해 제한적으로만 상대를 인식할 수 있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사람들이 더 쉽게 범죄 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톰 포스트메스와 러셀 스피어스는 몰개성화 이론(deindividuation theory)을 발표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게 되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 규범을 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실케는 마스크로 신분을 숨긴 사람이 공공기물을 파손하거나 타인을 위협하는 행동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내용을 살펴보면, 북아일랜드에서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500명을 분석한 결과 맨얼굴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에선 16% 피해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혔는데, 변장을 했던 범죄자 중에선 24%가 피해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작년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청소년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면서 청소년들의 온라인·미디어 사용도 현격히 증가했다. 로블록스는 2020년 평균 접속자가 전년 대비 85% 증가한 32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로블록스의 총 사용자 규모는 1억1천5백만 명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달 9일 ‘신산업 전략지원 TF’ 킥오프 회의를 열고 신산업 전략과 과제를 발굴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발표한 5개 신산업은 메타버스, 클라우드, 블록체인, 지능형로봇, 디지털 헬스케어다. 메타버스가 유력한 미래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인적, 물적 자원이 관련 연구와 산업으로 대거 편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적 플랫폼에 인류가 미처 적응을 마치기도 전에, 메타버스라는 또 다른 초혁신 플랫폼이 속도를 붙여 다가오고 있다. 메타버스가 인류의 생활 모습 전반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술의 발전과 상업화 방향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부작용과 불안요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배너









주요파트너/추천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