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규의 헬로BOT] “지능이 현실을 움직인다”...10조 원 승부수 던진 ‘K-피지컬 AI’

2025.12.08 18:07:04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모니터 속 텍스트와 이미지를 다루던 인공지능(AI)이 로봇과 제조 설비와 같은 실체를 입고 현실을 직접 움직이려 하고 있다. 기존 검색·추천의 기능에서, 기계가 스스로 주변을 인지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주체로 AI를 채택한 모양새다. 이 흐름을 통합한 개념이 바로 '피지컬 AI(Physical AI)'다.

 

피지컬 AI는 AI 모델이 로봇, 공장 설비, 도시 인프라 등 현실 속 하드웨어와 연결돼 복잡한 물리 법칙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아키텍처를 갖춘 시스템이다. 이는 센서에서 도출되는 신호, 공간 정보, 인간 언어 및 도메인 지식 등을 한데 통합한다.

 

이전에는 화면 속 시뮬레이션에 머물던 계획을 실제 동작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정해진 궤적을 반복하던 기존 자동화와 달리,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고 목표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 개념은 새롭게 탄생한 유행이 아니다. 설비 예지보전 및 품질 예측, 자율주행 기반 로봇,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공장을 향한 시도는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 최근에는 생성형 AI(Generative AI), 대규모 시뮬레이션, 월드 모델 등 기술 논의가 확산되면서 기존의 여러 흐름이 피지컬 AI라는 하나의 축으로 재편되고 있을 뿐이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최고경영책임자(CEO)가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체 지도자 회의(APEC Economic Leaders' Meeting)’를 앞두고 언급한 내용이 같은 맥락이다. 그는 “대한민국이야말로 피지컬 AI를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메모리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며, 반도체·선박·자동차 등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 같은 역량으로 피지컬 AI를 실현하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흐름은 산업·공장 자동화(FA), 모빌리티, 물류, 에너지 인프라 등을 동시에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를 둘러싼 투자와 규범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이 흐름을 한자리에 모아 한국식 해법을 논의하겠다는 취지의 행사가 지난달 20일 열렸다.

 

인프라에서 피지컬로, 파운데이션 모델 넘어 제조 강국 넘본다

 

 

‘피지컬 AI 국제 포럼 2025(Physical AI International Forum 2025)’는 ‘K-피지컬 AI: 글로벌 제조 혁신의 미래를 열다(K-Physical AI: Pioneering the Future of Global Manufacturing Innovation)’를 슬로건으로 내건 피지컬 AI 관련 첫 공식 국제 콘퍼런스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최하고 전북대학교 피지컬 AI 사업 컨소시엄, 한국인공지능학회가 공동 주관했다.

 

이날 행사에는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 박윤규 NIPA 원장, 정동영 장관 등 주요 인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정보통신기술(ICT) 및 AI를 지나, 피지컬 AI 기술 선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여기에 류제명 차관은 “대한민국은 기술 강국이자 제조 강국으로 피지컬 AI 혁신의 중심 국가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에 있다”며 “세계적 수준의 제조 인프라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큰 틀에서의 정부 AI 방향성과 피지컬 AI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이 공개됐다. 박윤규 NIPA 원장은 ▲정부의 AI 예산 10조 원 편성 ▲국가대표 파운데이션 모델 5개 컨소시엄 ▲엔비디아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 확보 계획 등을 언급했다.

 

그는 “현시점 우리나라는 피지컬 AI 인프라를 완성하기 위한 출발선에 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기업 투자와 젠슨 황 CEO의 GPU 우선 공급 약속을 함께 거론하며 “세계적 제조 인프라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피지컬 AI 혁신의 최적 실험장이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설계한 ‘K-피지컬 AI’ 퀀텀점프 판도

 

 

자신들을 피지컬 AI 분야 나이스 파트너(Nice Partner)로 정의한 박 원장의 방향성에 따라 정부도 이 같은 전략 카드를 내놨다. 피지컬 AI 1등 국가를 향해 산학역이 함께 뛰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또한 정동영 장관은 “국회·정부·산업계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피지컬 AI가 새로운 국가 성장모델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태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은 “정부는 AI 분야 투자를 내년에 10조 원까지 늘려 올해보다 3배 확대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가운데 30조 원을 AI에 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오는 2030년까지 고성능 GPU 26만 장을 확보해 국가 차원의 AI 컴퓨팅 인프라, 이른바 ‘AI 고속도로’를 깔겠다는 구상 또한 공개했다.

 

정부의 승부수는 GPU에서 끝나지 않는다. 박 정책관은 엔비디아 플랫폼 종속을 줄이기 위해 우리 기술로 만드는 ‘월드 모델(World Model)’ 개발에 내년 15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데 활용되는 월드 모델은 피지컬 AI의 두뇌에 해당한다. 여기에 저전력 AI 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MPU), 프로세스인메모리(PIM) 등 차세대 칩을 더해 GPU 중심 구조의 전력·비용 한계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각 산업 현장을 위한 전략도 병행될 전망이다. 전북 ‘AI 팩토리 테스트베드’를 포함해 경남·광주·대구 등 네 곳에 인공지능 전환(AX) 거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역 산업 현장을 피지컬 AI 실험장으로 만든다는 그림이다. 각 지역의 자동차, 조선,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에너지 등 현장에 피지컬 AI를 입히겠다는 로드맵이다.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다시 국가 전략과 월드 모델 학습에 반영하는 구조다. 박 정책관은 이 인프라를 특정 대기업 전용이 아니라 협력사와 중소기업까지 함께 쓰는 공공재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잃어버린 퍼즐을 맞추는 힘, 석학이 제안한 피지컬 AI 문화는?

 

학계는 피지컬 AI의 본질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제이 리(Jay Lee) 메릴랜드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제조 시스템의 맹점을 언급했다.

 

그는 “기계가 생성하는 방대한 현장 데이터가 제대로 수집·학습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퍼즐처럼 흩어져 있다”는 데서 배경을 찾았다. 파도·바람, 진동·소음, 미묘한 온도 변화 등 변수로 작용하는 ‘비가시성(Invisible)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야만 연료 절감과 품질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리 교수는 이때 “AI를 위한 AI가 아니라 목적(Purpose)을 위한 AI여야 한다”고 피지컬 AI의 목적을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목적지는 무고장을 뜻하는 ‘제로 다운타임(Zero Downtime)’과 품질 문제를 미리 막는 ‘예측 품질(Predictive Quality)’ 두 가지다. 이는 데이터를 목적에 맞게 구조화하고, 설비·공정·사람을 아우르는 지식 구조로 통합했을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메시지다.

 

그는 이를 분야(Domain)·데이터(Data)·규율(Discipline)을 모두 갖춘 ‘3D’ 역량으로 요약했다. 이를 갖춘 인재 없이는 피지컬 AI가 현장에 도입되도 신뢰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데니스 홍(Dennis Hong)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는 피지컬 AI의 ‘몸’을 맡은 로봇 하드웨어 영역의 화두를 던졌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 로멜라(RoMeLa)에서 만든 여러 로봇을 보여주며 시뮬레이션과 현실 사이 간극을 강조했다.

 

홍 교수는 “가상 환경에서 계산한 마찰과 충돌 역학(Collision Dynamics)은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실제로 각종 연구에서 탄생한 시뮬레이션 기반 모델은 실제 환경에서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메시지는 피지컬 AI의 데이터는 결국 넘어지고 부딪히고 망가지는 물리 실험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데니스 홍 교수는 동시에 피지컬 AI 관련 인재의 조건도 짚었다. 그는 “데이터를 모델에 많이 이식할수록 걷고 집는 로봇 행동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수학·물리·동역학(Dynamics) 등 기본 공학 지식을 버리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데이터만으로 동작을 맞춰 놓으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설명할 수 없는 엔지니어가 양산된다는 우려다. 그는 피지컬 AI 시대 교육의 핵심으로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보는 ‘눈’ ▲3D 역량을 갖춘 ‘인재’ ▲실패를 허용하는 ‘교육 문화’로 정리했다.

 

물리 학습과 무결점 연결의 시너지...현장 간 경계 허무는 新 방법론 나와

 

 

산업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로봇·AI 기반 완전 무인 자동화 공장인 ‘다크 팩토리(Dark Factory)’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6G’가 제조 현장의 신경망을 어떻게 깨우는가가 이들의 핵심 어젠다다.

 

이재민 현대자동차 글로벌전략오피스(GSO) 기술기획실장은 다크 팩토리를 차세대 제조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지난 2023년 싱가포르에 신설한 미래형 자동차 공장 겸 연구소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테스트베드로 하는 전략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HMGICS에서는 비정형 부품 조립 및 자율 물류, 작업자·로봇이 상존한 협업 구역 등에 피지컬 AI를 도입하고 있다. 향후 이 모델을 자사 울산 소재 전기자동차 전용 제조 공장 등으로 확산시킬 계획을 전했다.

 

이때 현대자동차가 지향하는 피지컬 AI 공장은 ▲소프트웨어 기반 제어 ▲디지털 트윈 ▲물리 학습 ▲비전 AI(Vision AI)가 통합된 구조다. 구체적으로 물성 테스트 데이터를 바탕으로, 로봇이 부품의 탄성·마찰·무게를 고려해 최적 동작을 찾아가도록 만든다. 이어 3D 비전이 비정형 부품을 인식해 조립 계획을 수행하는 연속적 메커니즘이다.

 

이 센터장은 “새 공장을 짓는 것보다 이미 돌아가는 기존(Legacy) 공장을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더 어렵다”며 “공장 내 데이터 구조를 바꾸고 센서·네트워크를 다시 재설계하는 작업, 협력사 제조 데이터를 한데 묶어 표준화하는 과정 등이 피지컬 AI 도입의 가장 큰 장벽”이라며 자사 전략이 대안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필립 제라드(Philippe Gerard) 노키아 전략 및 기술 부문 디렉터 겸 부사장은 인프라 관점에서 피지컬 AI를 뒷받침할 조건을 짚었다. 그는 “AI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려면 손실이 없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연이어 광산 같은 위험 현장에서 네트워크 혼잡이 안전 문제로 직결되는 사례를 들었다. 이러한 현장에는 고성능 데이터센터, 초고속 광전송, 5G·6G 무선 인프라 등이 하나의 신경망처럼 동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이런 기술 배치(Layout)야말로 공장·로봇·클라우드 등 핵심 인프라를 밀리초 단위를 연결한다는 설명이다.

 

피지컬 AI, 이상향 넘어 실체로

 

결국 이날 포럼 현장에서 반복된 어젠다는 한 가지 결로 수렴된다. 앞선 모든 계획을 실제 공장, 로봇, 노동, 교육 등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정부는 인프라와 예산으로 골격을 도출했고, 학계는 인재와 교육 문화를 주문했다. 산업계는 미래 공장과 데이터 표준화, 그리고 협력사 연동이라는 현실의 장벽 해소를 드러냈다.

 

데니스 홍 교수의 “현실에 발을 딛고, 동시에 별을 향해 나아가라(Keep your feet on the ground, reach for the stars)”는 메시지는 피지컬 AI가 공상이나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실과 구상 속 비전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10조 원 예산, GPU 26만 장, 다크 팩토리, 6G 인프라 등 숫자가 ‘현실’이라면, 제로 다운타임, 예측 품질, 피지컬 AI 1등 국가 등 목표가 ‘방향성’이다. 이 둘을 함께 잡지 못하면 피지컬 AI는 슬로건으로만 남는다는 의미로 읽힌다.

 

또한 류제명 차관이 강조했듯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기업·학계·연구계의 혁신이 함께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피지컬 AI 생태계가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앞선 모든 요소와 역량이 하나로 모어야 함을 시사한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Copyright ⓒ 첨단 & Hellot.net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