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 현장 내 로봇 도입 사례가 급증함에 따라, 시스템통합(System Integration 이하 SI) 역량이 화두에 올랐다. 로봇 SI는 로봇·센서·장치·설비를 비롯한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SCADA(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HMI(Human-Machine Interface) 등을 통합 연동해 단일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각기 다른 맛을 내는 각종 식재료와 이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레시피(Recipe)가 결합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현장 인프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기술을 통합하고, 각 현장에 맞춤형 로봇 도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는 사용자 분석부터 설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프로그래밍, 테스트, 설치, 유지보수까지의 과정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설비 자동·자율화,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등이 실현된다. 이러한 로봇 SI는 국내외 로봇 분야에 필수적으로 접목되는 분야다. 특히 기술 수요·공급 기업 간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
국내 로봇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약 2만여 곳의 로봇 SI 업체가 우리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앞서 언급처럼 로봇 생태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연 매출 100억 원 이상 규모의 업체는 3%가 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덩치에 비해 특화된 경쟁력을 갖춘 업체가 적은데다, 이들 대부분이 영세 규모로 이뤄져 있다.
로봇 자동화는 산업용 로봇, 협동 로봇, 서비스 로봇 등 로봇 하드웨어 단품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업계는 이 같은 로봇 시스템 특징에서, 앞선 양상이 국내 로봇 자동화 도입과 로봇 기술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는 연일 성장세를 보이는 글로벌 로봇 시장과 대조적이라는 분석도 함께했다. 결국 개별적인 로봇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기술을 한데 융합하는 역량도 중요함을 시사한다.

차별화된 '전문성'이 필요한 때...깊이 있는 '기술력'이 필살 성장 카드
현재 국내 로봇 SI 공급 시장은 대부분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전문 인력 부족과 자금력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공·설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외주 의존도를 높여 각 업체의 기술 내재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과 연결된다. 이처럼 SI 업체의 개별 역량이 부족하다 보니, 사후 서비스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한 로봇 자동화 활용에 걸림돌이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사용자 요구에 따른 맞춤형 로봇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기술 검토 없이 무분별하게 레퍼런스를 양산하는 것도 건전한 성장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이는 곧 SI 주체의 개발비 부담과 표준화된 솔루션 개발을 어렵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로봇 자동화 수요 업체는 적합한 SI 업체를 찾지 못해 로봇 자동화 도입을 망설이게 된다. 연이어 로봇 제조 업체도 영세한 SI 업체의 낮은 구매력으로 인해 판매 부진을 겪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로봇 밀도(Robot Density)’ 1위라는 높은 로봇 활용도를 갖춘 상황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로봇 도입률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형태로 시장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산업별 맞춤형·표준화 솔루션 개발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양적인 솔루션 확보보다, 특정 산업 공정에 특화된 모듈·표준형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SI 업체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시간·비용 등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수요 업체는 저렴하고 신뢰성 높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SI 업체는 설계·제작·설치·시운전·사후 서비스 등 로봇 SI 전 과정에 대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원스톱 토털 솔루션 역량은 각 SI 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다. 이 과정은 결국 수요 업체와 SI 업체 간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인공지능(AI)·3D 비전·에지 컴퓨팅·로봇 운영체제(ROS) 등 최신 기술과도 융합돼야 한다.

'퀀텀 점프' 돌입한 글로벌 로봇 산업...“韓, 내실부터 다져야”
최근 ‘피지컬 AI(Physical AI)’가 글로벌 이슈로 새롭게 급부상하면서 로봇 산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피지컬 AI는 로봇의 두뇌를 담당하는 기술이다. 로봇이 실제 환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간·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로보틱스 분야 차세대 솔루션이다. 해당 기술은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 구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받는다.
이달 10일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본격 출범한 ‘K-휴머노이드 연합’은 국내 40여 개 로봇 관련 산학연이 국내 로봇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합친다. 참여 주체는 각 전문 분야에 따라 총 6개의 그룹으로 나뉘고, 전문 그룹 대표로 구성된 총괄위원회가 유기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이 가운데 로봇 SI 분야가 연합 안에서 로보틱스 혁신의 핵심 역량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연합은 수요·공급 기업 간 연결, 맞춤형 시스템 구축, 융복합 기술 통합, 로봇 기술 실증·적용 지원, 지속적인 유지보수·관리 등을 위해 로봇 SI 생태계를 지원한다.
연합은 향후 개발될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산업 현장에 효과적으로 도입·활용하는 데, SI 업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로봇 SI 업체는 전문적인 기술 통합 능력과 현장 적용 경험을 지속 고도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로봇 SI 업체는 로봇 기술 수요·공급 업체를 연결하고,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UL·NFPA·CE 등 안전·품질 관련 글로벌 표준·인증 획득,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및 공급망 확대, 기술력 확보 및 특허 전략 전개 등을 통해 로봇 SI 업계의 글로벌 진출도 노릴 수 있다.
이렇게 국내 SI 업체의 해외 시장 진출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한국 로봇 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예정이다. 이는 국내 로봇 업체의 수출 증대 및 국가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업계 전문가는 숙련된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로봇 SI 산업 전반의 기술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점도 제언했다.
다른 한편, 온디바이스(On-Device) 기술과 로봇 SI 역량을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론 또한 제시된다. 온디바이스는 클라우드 연결 없이 개별 장치 자체에서 데이터를 처리·분석·제어하는 기술이다. 로봇 자동화 영역에서는 로봇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분산형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지원한다. 특히 온디바이스 AI는 로봇 시스템의 아키텍처나 작동 방식에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로봇 SI는 다양한 요소를 통합·최적화해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원초적인 역할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온디바이스 AI를 효과적으로 통합·활용하는 SI 업체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양 역량을 조화롭게 활용해 로봇 고도화를 이룰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로봇 생태계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규모 확장도 중요하지만, 다각적으로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혁신 DNA의 관건' 로봇 SI, 국내외 성공 방정식은?
앞서 로봇 SI 업체를 한정해 로봇 SI 분야를 설명했지만, 사실 로봇 SI 구현의 주체는 여러 형태로 세분화돼 있다. 구체적으로 ▲전문 로봇 SI 업체 ▲로봇 SI 역량을 갖춘 로봇 제조 업체 및 자동화 솔루션 기술 업체 ▲로봇 SI 역량을 갖춘 최종 사용자(End-user) ▲특정 산업 전문 SI 업체 ▲로봇 SI 일부를 지원하는 컨설팅·엔지니어링 전문 업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전문 로봇 SI 업체, 로봇 SI 기술을 확보한 로봇 제조 및 자동화 솔루션 업체가 이 분야 발전에 키를 쥐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주체의 국내외 레퍼런스가 증가하는 추세다.
우선 국내 로봇 SI 업체 ‘HCNC’는 방산 업체 ‘풍산’의 안강사업장에 로봇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돕고 있다. 해당 사업장 내 155mm 탄체용 단조·노징프레스·노징 3개 공정에 대한 로봇 자동화 및 IT 기반 통합 제어 기술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고위험 환경에서 고정밀 공정이 요구되는 탄체 제조 현장에 SI를 진행해 가공 정밀도 및 품질 향상, 작업자 안전 확보 등 이점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어 독일 산업 자동화(FA) SI 업체 ‘FFT Produktionssysteme GmbH & Co. KG 이하 FFT’는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라이프치히 공장에 로봇 SI 시스템을 비롯해 지능형 무인운반차 ‘FFTigv’를 공급했다. 차체 쉘(Car Body Shell) 라인부터 최종 조립 라인까지 관장하는 FFTigv는 FFT가 구축한 생산 시스템 안에서 공정 수행은 물론 자동 충전 기능까지 제공한다.
로봇 SI 역량을 갖춘 국내 로봇 제조 업체 레퍼런스는 ‘HD현대로보틱스’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FA·엔지니어링·SI 등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구 달성군 대구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소재 자사 로봇 공장인 현풍공장에 ‘로봇 생산용 로봇 인프라’를 조성했다. 쉽게 말해 로봇을 만드는 로봇 기반 공장인 셈이다.
이 로봇 자동화 시스템에서는 부품 이송, 조립, 용접, 도장, 핸들링 등 공정을 로봇이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통해 생산 효율성, 품질, 안전성 등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풍공장은 연간 1만 대의 산업용 로봇과 6000대 규모의 서빙·방역용 서비스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 ‘화낙(FANUC)’은 스마트폰 및 전자기기 제조 업체인 애플(Apple)의 스마트폰 조립 공정에 로봇 생산 시스템과 고속 스카라 로봇, 다관절 로봇 등 로봇 하드웨어를 공급했다. 소형 부품의 초고속 정밀 조립, 제품 외관·기능 검사, 생산 라인 내 부품·완제품의 핸들링 작업 등을 로봇 시스템으로 다룰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했다.
끝으로 자동화 솔루션 제공 업체 사례다. 국내 로봇 SI 및 로봇 하드웨어 업체 ‘브릴스’는 생산성 향상 및 효율성 증대를 목표로 한 각종 제조 현장에 로봇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특히 약 300여 종의 표준화된 SI와 사용자 맞춤형 솔루션을 각 공정에 맞춰 융합한 후 특화된 시스템 형태로 기술을 공급한다. 주요 적용 공정은 부품 가공, 조립, 용접, 핸들링, 품질검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다관절 로봇, 스카라 로봇, 협동 로봇 등 다양한 형태의 자체 개발 로봇 기체도 함께 공급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각 공정의 요구사항에 최적화된 로봇 자동화 턴키 솔루션을 구현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제조 현장에서는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정밀하게 용접하거나, 통풍시트 품질검사 과정에서 최적화된 로봇 시스템을 제공하는 식이다.
해외 사례는 스위스 소재 전기·자동화 엔지니어링 업체 ‘ABB’가 있다. 같은 스위스 식품·음료 업체 ‘네슬레(Nestlé)’의 브라질 공장에 팔레타이징(Palletizing) 로봇 시스템을 구축해 로봇 자동화 혁신에 기여했다. 생산이 완료된 다양한 크기·형태의 제품 박스를 로봇이 처리하고 있다. 이 로봇은 3D 비전 시스템을 통해 대상물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최적의 패턴으로 팔레트에 자동으로 적재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는 생산 라인의 효율성 향상과 작업자의 노동 부담 경감에 효과를 드러냈다.
한편, 그랜드뷰리서치·마켓리서치퓨처·글로벌인포메이션·리서치앤마켓 등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로봇 SI 시장 규모는 745억 달러(약 106조 원)에서 821억 달러(약 11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로봇 산업 급성장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최대 연평균 성장률(CAGR) 14.4%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시장이 거대화될 전망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