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미세유리관’ 접촉판별, 제조기술·생명공학 혁신 기대
디스플레이·반도체·생명공학·3D프린팅 분야 등 활용 가능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세계 최초로 나노미터급 미세유리관의 접촉 여부를 빛을 통해 판별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기술은 스마트 3D프린팅 연구팀의 표재연 박사팀이 주도했으며, 나노미터 단위의 초미세 유리관을 활용한 정밀 가공 및 다양한 응용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세유리관은 직경 0.1mm에서 0.000010mm에 이르는 초정밀 도구로, 생명공학, 전기도금, 나노 3D프린팅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 장비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에서는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난자에 정자를 주입하거나, 세포의 연구 과정에서 세포벽을 침습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또한 전기도금 분야에서는 특정 영역에만 금속 도금을 형성할 수 있어 정밀한 전자 회로 제작에 도움을 주며, 3D프린팅에서는 초미세 구조물을 정교하게 인쇄하는 노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세유리관의 접촉 여부를 판별하는 일은 큰 과제로 남아 있었다. 기존의 광학 현미경 관찰 방식은 나노미터급의 해상도를 구현하지 못해 접촉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웠다. 전류나 진동을 활용하는 방식도 있지만, 재료의 제약 및 결과의 변동성 등으로 인해 널리 쓰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표재연 박사팀은 접촉 여부를 ‘빛’을 통해 판별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미세유리관에 빛을 비추어 끝단에서 접촉 여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빛이 유리관을 타고 전달될 때, 끝단이 물체와 닿지 않았을 때는 선명한 빛을 유지하지만, 접촉 순간 빛이 사라지며 접촉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나노미터 단위에서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한 결과로, 간단하면서도 기존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적 기술이다.
표 박사팀은 다양한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빛이 접촉 지점에서 산란되지 않고 접촉한 물체로 전달됨을 규명했으며, 이 기술을 나노 3D프린팅 공정, 미세 구리 전기도금 공정, 세포벽 침습 등의 다양한 분야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그 결과, 정확하고 즉각적인 접촉 판별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화학회가 발행하는 나노과학 분야 최상위급 학술지인 ‘ACS Nano’에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어 국제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해당 학술지의 영향력 지수(JCR Impact Factor)는 15.8로, 이는 전 세계 상위 5.9%에 속하는 높은 평가다.
KERI 표재연 박사는 “기존의 나노 3D프린팅 공정은 해상도와 안정성에서 물리적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광물리 현상을 활용해 3D프린팅 노즐로 사용되는 미세유리관을 접촉 판별 도구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했다”며 “이번 연구 성과는 초미세 구조물 제작의 정밀도와 안정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KERI는 이번 성과에 대한 원천기술 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나노미터급 초정밀 공정이 필요한 3D프린팅, 디스플레이, 생명공학, 전기도금,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수 있는 기술로, 전등 하나만 비추는 간단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어 향후 적용 범위가 매우 넓을 것으로 보인다.
표재연 박사팀은 더 많은 분야에서의 기술 검증과 적용을 추진하고 있으며, 다양한 수요 기업을 발굴해 기술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기존 공정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접근으로 나노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헬로티 임근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