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했던 ‘매그니피센트 7’의 위상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IT 기술을 좌우하는 7곳의 빅테크를 지칭하는 매그니피센트 7은 지난해 주가총액이 두 배 이상 상승하며, 그야말로 미국 증시 광풍을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빅테크 간 격차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그 차이를 야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까지의 성장을 이끈 AI다. 생성형 AI 붐을 타고 몸값을 높여왔던 매그니피센트 7은 이제 AI에 대한 투자와 성과의 기로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상승세 끌어온 매그니피센트 7, 올해는?
매그니피센트 7은 미국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7개 기업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들은 미국 증시를 이끌며 연일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기준 7개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13조1000억 달러를 기록하며, G20 국가에서 시장 규모 2위인 중국(11조5000억 달러)을 추월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에만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를 16차례나 갱신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지난해 생성형 AI가 시장에서 본격적인 확산 조짐을 보임에 따라, 매그니피센트 7은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상승세를 이었다.
그랬던 매그니피센트 7이 최근 각기 다른 행보를 걷는 중이다. 일부 기업은 상승세를 이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도 있다. 특히 주식 시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아마존을 넘어 시가총액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시총 2위인 애플과 약 5000억 달러 차이가 난다(3월 15일 기준).
다만 상승세를 고려했을 때, 대다수의 전문가는 머지않아 엔비디아가 애플을 따라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테슬라의 경우 상황은 반대다. 지난 3월 마켓워치는 테슬라가 시총 기준 13개월 만에 미국 10대 기업에서 밀려났다고 전했다. 최근 테슬라는 전기차 수요 부진과 맞물려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I 기술과 로드맵은 매그니피센트 7 시가총액을 비롯해 매출 규모에서도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오늘날 AI는 전 세계 산업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며, 가장 많은 투자금이 쏠리는 분야기도 하다. AI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빅테크의 AI 기술 개발이 선행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아마존은 준수한 성과를 선보이는 반면, 애플과 테슬라는 아직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었다.
B100 앞세워 선두 확고히 한 엔비디아
지난 3월 18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GTC에서 차세대 AI 칩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엔비디아는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AI 칩 ‘B100’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블랙웰은 2년 전 발표된 엔비디아 호퍼 아키텍처의 후속 기술로, B100은 현존하는 최신 AI 칩으로 평가받는 엔비디아 H100의 성능을 뛰어넘는 차세대 AI 칩이다. B100의 연산 처리 속도는 기존 H100보다 2.5배 더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H100을 사용할 경우 GPT 훈련에는 90일 동안 8000여 개 GPU가 필요하지만, 블랙웰 GPU는 같은 기간에 단 2000여 개의 GPU만 사용하면 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B100 발표를 통해 AI칩 대표주자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고,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후발주자들을 따돌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블랙웰은 최대 10조 개의 파라미터로 확장되는 모델에 대한 AI 훈련과 실시간 거대 언어모델(LLM) 추론을 지원하며, TSMC 공정으로 제조된다. 젠슨 황 CEO는 “208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칩”이라며 “아마존과 구글, 메타, MS, 오픈AI 등 많은 기업이 블랙웰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진취적인 투자 이어가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로 생성형 AI 시장을 여는데 일조했다. MS는 사무용 소프트웨어 제품에 생성형 AI인 챗GPT를 도입해 매출을 키우고 있다. 이 덕분에 MS의 시장 가치는 3조1000억 달러를 기록하며 애플 2조7000억 달러를 앞질러 시총 1위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MS는 지속해서 AI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해 R&D와 기업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MS는 딥마인드의 공동창업자로 유명한 무스타파 술레이만을 자사의 AI 사업 책임자로 영입했다. MS는 무스타파 술래이만이 AI 챗봇 코파일럿을 비롯해 AI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조직 ‘MS AI’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MS 수석부사장 겸 MS AI 최고 책임자로서 사티아 나델라 CEO에게 직접 보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술레이만은 지난 2014년 딥마인드가 구글에 인수된 뒤에도 구글에 남았다가 2022년 퇴사했다. 이후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AI’를 공동 창업해 인간과의 친화력에 초점을 맞춘 챗봇 ‘파이(Pi)’를 선보였다.
생성 AI 기능 오류로 곤욕치르는 구글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의 이미지 생성 기능 오류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사임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로 구글이 AI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인식이 깊어지면서 그 책임론이 순다르 피차이 CEO까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지난 2월 자사의 최신 AI 모델 제미나이에 이미지 생성 기능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 기능을 도입한 지 불과 20여일 만이었다.
미국 건국자나 아인슈타인 등 역사적 인물을 유색인종으로 묘사하고, 독일 나치군을 아시아인종으로 생성하는 등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2월 제미나이의 전신인 바드가 시연회에서 오답을 도출했던 것을 연상시켰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4.5% 하락하기도 했다. 순다르 피차이 CEO는 오류에 대해 “사용자를 불쾌하게 하고 편견을 보였다는 것을 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AI 모델과 라마 업데이트에 집중하는 메타
메타플랫폼(이하 메타)은 지난 3월 페이스북 등 자사 플랫폼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동영상 추천을 강화하는 거대 AI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책임자 톰 앨리슨은 2026년 메타의 기술 로드맵에 대해 “이 중 하나는 틱톡처럼 릴스와 전통적인 형태의 긴 동영상을 모두 구동하는 AI 추천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각 제품에 별도의 AI 모델을 사용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로드맵 1단계는 회사의 현재 추천 시스템을 전통적인 컴퓨터 칩에서 GPU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이는 제품 성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아키텍처는 페이스북에서 릴스 시청시간을 8%에서 10%로 늘리는 데 도움이 됐다”며 “이 모델이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학습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디인포메이션은 메타가 오는 7월 AI 거대언어모델(LLM)의 새로운 버전 ‘라마3’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 버전은 사용자가 제기하는 논쟁적인 질문에 보다 개선된 답변을 제공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메타 연구원들은 최신 모델에 유통성을 갖도록 함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있는 질문에 최소한 맥락이 있는 답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메타는 이 모델이 답변을 생성하는 과정에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향후 몇 주 내에 이 모델의 말투와 안전교육을 감독할 담당자를 내부 선임할 계획이다.
아마존, AI와 로봇 융합된 제품에 투자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아마존이 10억 달러 규모의 산업혁신 펀드를 동원, AI와 로봇공학을 결합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이 2022년에 설립한 기업 벤처캐피털 부서 프란치스카 보사트 팀장은 언론을 통해 “생성형 AI는 로봇 공학과 자동화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며 “올해 우리가 집중할 분야”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펀드 투자 속도는 크게 빨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펀드는 아마존의 물류시스템 혁신을 위한 것으로 작년에 생성형 AI 회사에 처음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2건을 투자했다. 센서를 사용해 인간과 함께 일하는 로봇 팔을 개발하는 맨티스 로보틱스도 투자대상에 포함됐다. 아마존은 혁신 펀드와는 별도로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에도 최대 40억 달러를 투자했다. 아마존은 이전에도 로봇 분야 투자로 주목받은 바 있다. 2022년에 유럽 물류창고에 산업용 로봇과 분류 시스템을 배치하는데 4억 유로 이상을 투자했으며 운영 네트워크 전체에 75만 대의 모바일 로봇을 배치했다.
깜깜무소식인 애플의 AI 로드맵
애플이 AI 분야에서 뒤처지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의 매출 성장세는 정체되면서 제품에 AI를 활용하는 다른 테크 기업에 밀리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 경영진이 AI에 대한 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올해 들어 10% 넘는 주가 하락으로 시가총액을 약 3300억 달러를 잃었다. 이에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큰 기업의 자리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내줬다.
애플의 2023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했고, 2024 회계연도 매출은 2%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4회계연도에 엔비디아 매출이 79%, MS 매출은 15% 급증이 예상되는 것과 대조된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가 부진하고 각종 규제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AI에 대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문제로 꼽혔다. EU 경쟁당국은 최근 애플이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18억4000만 유로(약 2조7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애플 전 세계 매출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위기의 테슬라, 돌파구 어디서 마련하나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를 주목하는 48개 증권사 가운데 웰스파고를 포함한 9개 증권사가 테슬라에 대해 매도 혹은 비중 축소 등급을 부여했다. 이렇게 매도 의견이 많은 건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웰스파고는 이날 보고서에서 테슬라에 매도 등급을 부여하고 올해와 내년 테슬라의 암울한 실적 전망을 근거로 들었다. 올해 테슬라 시장 가치는 2450억 달러 이상 사라졌으며 S&P 500 10대 기업에서 밀려나 현재 12위다(3월 13일 기준).
테슬라가 이처럼 부진한 이유는 성장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매출과 이익 성장 속도는 작년부터 현저하게 둔화됐다. 월가 금융기관들은 테슬라가 3월 초에 실적을 발표한 뒤로 테슬라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과 베를린 인근 공장의 생산 차질로 인해 1분기 출하량이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기대치를 밑돌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가격 인하 정책을 폈지만 별 힘을 못 쓰고 있다. 최근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테슬라 주가는 여전히 미래 예상 수익의 약 55배 수준에서 거래된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