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W 2025] 도면이 데이터가 되는 순간...제조 현장의 문서·지식이 흐르기 시작했다

2025.10.26 18:10:14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하드웨어 제조의 병목은 ‘가공’뿐만 아니라 ‘문서’에서 생긴다. 도면, 사양, 공정 지시, 검사 리포트, 변경 이력(ECR/ECO) 등이 파편화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엔지니어는 하루의 상당 시간을 자료 찾기에 소모한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업체 맥킨지(McKinsey & Company)의 글로벌 연구는 이 현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식근로자의 주당 약 하루는 정보 탐색에 쓰인다는 진단이다. 이에 대한 해결법으로 협업·지식 공유 체계 구축이다. 이를 제대로 완성해 놓으면 상호작용형 인력의 생산성이 20~25%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또 제조 현장에서 ‘문서 체계화’와 ‘검색의 지능화’가 곧 납기·품질·원가(QCD)와 직결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글로벌 제조 벨트의 과제는 도면이 곧 데이터가 되도록 문서 거버넌스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도면, 표준운영절차(SOP), 검사 리포트, 불량 사진 및 영상 등의 모든 핵심 제조 데이터가 한 화면에서 버전·권한·이력을 기준으로 묶는다. 전문가들은 이 통합 관리 시스템을 통해 조달·가공·검사·출하에 이르는 전체 제조 프로세스의 타임라인이 단일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제조 과정 중 발생하는 모든 변경 사항에 대한 대응 시간이 기존의 시간 단위에서 분 단위로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여기에 모바일 현장 캡처가 즉시 도면에 귀속되면 재발 불량의 근본 원인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ESG·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최근 강조되는 환경 규제에 대한 추적성(Traceability)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전망이다.

 

결국 문서의 지능화는 빠른 납기와 균일한 품질이 대세였던 제조 생태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드웨어 강국으로 인식되는 대만은 가성비·품질이라는 강점을 확장하는 ‘최소 비용, 최대 효과’의 첫 단추로 이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제조 현장 문서의 병목’ 푸는 법...도면 중심 'DX'로 제조의 언어를 바꾸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중 국제전시장(Taichung International Exhibition Center)에서 열린 ‘대만 산업주간(Taiwan Industry Week, TIW 2025)’은 이 같은 변화의 트렌드를 한눈에 짚었다.

 

TIW는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네 개의 기존 전문 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했다. 대만국제하드웨어박람회(THS), 국제철강기술타이완(IMT), 직업안전타이완(T-SAFE), 냉동·공조기술타이완(RHVAC Taiwan) 등 각기 다른 산업의 수요를 ‘공급망 교차 조달(Cross-Sourcing)’ 구조로 연결했다.

 

이 가운데 일본 소재 제조업 특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플랫폼 기술 업체 ‘팩트베이스’가 앞선 문제의 해결책을 들고나왔다. 회사의 클라우드 기반 도면 관리 시스템 ‘즈멘(ZUMEN)’은 제조 현장의 디지털 전환(DX)을 목표로, 중소 제조 공장들이 겪는 비효율적인 문서 관리, 기술 단절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플랫폼으로 대만 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즈멘을 담당하는 카이하쿠 센(Kaihaku Sen) 대만 지역 매니저는 “도면은 각 부서의 공용어”라며, 도면을 중심에 두고 영업·생산·설계·품질·출하 데이터를 한 화면에 묶는 방식이 현장의 병목을 푸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센 매니저가 언급한 ‘도면은 공정의 공용어’라는 전제 위에서, 도면 중심의 지식 흐름을 어떻게 작업자의 하루 업무로 만들 것이냐다. 즈멘은 부서별로 흩어진 견적·발주·자재이동·검사·출하 기록을 제품 및 도면을 기준으로 자동 라벨링·분류해 한 화면에서 엮는다.

 

최신 현상을 기본값으로 보여 주고, 업무 지침서, 셋업 동영상, 설정 파라미터까지 도면에 귀속시켜 현장 작업자가 정보를 직관적으로 보게 한다. 예를 들어, 도면만 열면 바로 가공·조립에 필요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매니저는 검색 및 추적 기능을 구체적으로 개선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혁신적인 기능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제조 현장의 효율을 높인다. 2차원(2D) 및 3차원(3D) 기반의 컴퓨터지원설계(CAD) 파일로부터 품명·도번·재질 등의 텍스트 정보를 인공지능(AI)이 자동 추출한다. 이를 통해 복잡한 키워드 검색을 지원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유사 도면을 찾아 과거 견적·단가를 재사용하는 기능도 주목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프로젝트 번호로 ‘견적·샘플·수주·제조·납품’ 등 진행 상태를 한눈에 보는 보드형 화면과 불량 이력, 포장 사양, 출하 사진까지 모으는 구조 또한 특징이다. 센 매니저는 “감사나 고객 실사 때 제품만 지정하면 관련 이력을 한 번에 꺼낼 수 있다”고 플랫폼이 제공하는 이점을 강조했다.

 

즈멘의 이러한 접근은 대만 제조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대만은 타이중을 축으로 정밀기계·부품 기업이 밀집해 ‘짧은 리드타임’과 ‘다품종 변동’이 상수다. 정부·지자체가 스마트 기계 전환을 독려해 온 만큼, 설계·생산·검사·출하를 하나의 디지털 스레드로 묶는 시도는 클러스터 경쟁력과 결을 같이한다.

 

매니저는 글로벌 표준 관점에서도 플랫폼이 설득력을 갖췄다고 내세웠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ISO 9001 인증이 이를 증명한다. 이 표준은 문서화된 정보의 버전·접근·보호·배포를 통제해 언제 어디서나 최신·승인본을 쓰도록 요구한다. 도면 중심 저장소, 리비전 제어, 권한 기반 접근·변경 이력 관리 등이 품질시스템 준수의 기본 골격이라는 사측의 철학에서 획득한 인증이다.

 

 

연이어 즈멘이 내놓은 도면 중심 문서, 지식 운영체제(OS)는 경영 효과의 손쉬운 계량을 지원한다. 앞선 맥킨지의 협업·지식 흐름의 디지털화를 반영한 것이다. 이메일·폴더·메신저에 흩어진 파일을 구조화된 공동 저장소와 검색 기능으로 치환할 때 얻는 이득을 강조한 부분이다.

 

또한 매니저는 현시점 제조 현장의 난제에 대해 지목했다. 그는 “여전히 분산된 파일 체계, 사내 메신저 캡처, 외부 협력사 자료 등을 규격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핵심은 각 부서의 흩어진 정보를 도면 중심으로 묶어 필요한 순간에 바로 찾게 만드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데이터 이행과 권한 설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던진 메시지를 명료화했다. “글로벌 제조 경쟁은 설비 사양을 넘어 ‘문서·도면의 흐름’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하느냐에서 판가름난다”며 “타이중의 민첩한 공급망에 도면 중심의 지식 운영체계를 덧입힌다면, 납기·품질 일관성·감사 대응 속도에서 체감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장 참관객은 ZUMEN의 사례에 대해 “제조 하드웨어 스펙 경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에 어떻게 발맞추냐의 경쟁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결국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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