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산업에서 초미세 공정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H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더 작고 효율적인 공정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도체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들은 자국의 반도체 기업과 함께 초미세 공정 확보를 위한 인프라 구축, 기술 개발, 인재 양성 등의 과제를 실천하고 있다.
전략 핵심으로 부상한 초미세 공정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2나노(nm) 이하 공정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의 양산을 2025~2026년 목표로 추진하며, 일본 라피더스도 2027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선언하며 시장 진입을 예고했다. 미세 공정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칩 크기 축소를 넘어 성능 향상과 전력 효율 극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 간격이 좁아질수록 연산 속도가 빨라지고 전력 소모가 줄어들어 AI, 데이터 센터,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산업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기술적 난이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수율 확보가 어려워지고, 공정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선제적인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2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한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나서며, TSMC 역시 엔비디아·AMD 등 주요 고객사들과 협력을 확대하며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다. 반도체 미세 공정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향후 1나노미터 이하의 첨단 반도체 개발도 시장 판도를 결정할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 절감한 삼성, 반도체 위기 돌파 나선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위기 극복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뒤처진 성과를 보이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연간 영업이익은 15조1000억 원으로, SK하이닉스(23조4673억 원)에 비해 크게 낮았다. SK하이닉스가 선제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한 반면, 삼성전자는 HBM 납품 지연으로 주도권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삼성전자는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조직 개편을 통해 삼성글로벌리서치 내에 ‘경영진단실’을 신설했으며,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을 시작으로 전사적인 점검에 나서고 있다. 특히 HBM 시장에서의 대응이 강화한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3E 제품을 올해 1분기 말부터 주요 고객사에 공급하고, 2분기부터 본격적인 공급 확대에 나설 예정이다. 6세대 HBM4는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대만, TSMC 미국 공장에 ‘N-1’ 규정 재확인
TSMC의 미국 공장에 대해 ‘N-1’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는 대만에서 운영하는 공정보다 한 세대 낮은 기술만 외국 공장에서 허용하겠다는 정책으로, 최첨단 반도체 기술 유출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은 입법원 대정부 질의에서 TSMC의 미국 투자와 관련해 “대만 기업의 최첨단 공정은 대만에서, 한 세대 낮은 공정은 해외 공장에서 운영하는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TSMC의 미국 공장 운영과 관련해 ‘최신 기술은 대만에 남긴다’ ‘핵심 기술은 해외로 이전하지 않는다’ 등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원칙을 지속적으로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만 정부에 따르면, TSMC의 2나노 반도체는 올해 대만에서 시험 생산을 마치고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 반면, 미국에서의 2나노 공정 생산은 2028년경으로 예정돼 있어 최소 48개월 이상 차이가 날 전망이다.
라피더스, 2나노 반도체 개발 속도낸다
라피더스가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한 생산 일정에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고이케 아쓰요시 라피더스 사장은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계획에 차질이 없으며, 생산 장비 반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홋카이도 지토세시에 공장을 건설 중이며, 오는 7월부터 시제품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지금까지 약 1조 엔의 지원을 했으며, 올해에도 1000억 엔을 추가 출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2나노 반도체 양산까지는 약 5조 엔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라피더스에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주주로 참여했지만, 이들의 출자 규모는 아직 73억 엔(약 716억 원)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은행 융자도 검토 중이다. 인력 확보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라피더스의 직원 수는 약 700명이며, 이 중 공장 인력은 300명 수준이다. 양산이 본격화되면 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기술 협력사인 미국 IBM에서 양산 기술 개발을 담당한 인력들이 일본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의 반격, 1.8나노 CPU로 차세대 AI 시장 공략
인텔이 최첨단 1.8나노 공정을 적용한 첫 중앙처리장치(CPU) ‘팬더 레이크’를 내년 1월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최근 중국에서 열린 제품 설명회를 통해 차세대 노트북용 CPU 로드맵을 공개했다. 팬더 레이크는 AI 기능이 탑재된 신형 프로세서로, 1.8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최초의 제품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3나노 공정이 주력으로 활용되는 가운데, 1.8나노 공정은 TSMC와 삼성전자의 최신 기술보다 한 단계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로이터 통신은 최근 인텔의 1.8나노 공정 가동이 수율 문제로 2026년 중반까지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달리, 인텔은 내년 초부터 해당 공정을 적용한 CPU를 공개하며 시장에 본격 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인텔 이사회는 새 CEO로 립부 탄 전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CEO를 임명한 바 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