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의 연결성은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국제특송기업 DHL과 뉴욕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은 지난 10일, 전 세계 181개국을 대상으로 무역, 자본, 정보, 사람의 국제적 흐름을 분석한 ‘DHL 글로벌 연결성 보고서 2026(DHL Global Connectedness Report 2026)’을 발표하고 이와 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90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출된 결과로, 2022년에 기록한 역대 최고 수준의 세계화 수치가 2025년과 2026년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중 간의 직접적인 무역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무역은 중립 국가들을 경유하는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며 회복력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세계화가 퇴보하는 ‘탈세계화’가 아니라, 복잡한 국제 정세에 맞춰 ‘재편(Reconfiguration)’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세계화된 국가로는 싱가포르가 선정되었으며, 네덜란드와 아일랜드가 그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유럽이 국제적 흐름의 집약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혔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무역의 ‘거리’다. 최근 몇 년간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인접국과 거래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강조되었으나, 실제 데이터상으로는 평균 교역 거리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이 특정 지역의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전 세계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 열풍이 국제 무역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했다. 보고서는 AI 모델 학습과 운용에 필수적인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반도체 및 데이터 센터 관련 하드웨어 무역이 지난 2년 사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AI 기술의 확산이 물리적인 하드웨어의 국경 간 이동을 촉진하며 세계 경제의 연결 고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존 피어슨(John Pearson) DHL 익스프레스 글로벌 CEO는 “지정학적 파고 속에서도 국제 무역이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은 세계화가 단순한 선택이 아닌 경제 성장의 필수 동력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물류 인프라의 디지털화와 회복력 강화가 미래 공급망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보고서가 다소 신중한 견해를 내놓았다. 양국 간의 직접적인 무역 비중은 2016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지만, 베트남이나 멕시코와 같은 제3국을 통한 간접적인 연결은 오히려 활발해졌다. 이는 미·중 디커플링이 진행되더라도 전 세계 공급망이 완전히 단절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다. 보고서는 2029년까지 국제 무역이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과 유사한 수준으로, 글로벌 경기의 완만한 회복세와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분석된다.
스티븐 알트만(Steven Altman)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선임 연구위원은 “세계화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데이터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며, “국가 간의 흐름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며, 이러한 연결성이야말로 글로벌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