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DX] 똑똑한 AI보다 무서운 ‘현장 관습’...다쏘시스템이 제시한 AX 성공 방정식

2026.02.21 23:18:08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산업 현장으로 스며드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인공지능(AI) 방법론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시점 산업 내 경쟁력의 핵심은 똑똑한 AI 모델 차용보다 더 높은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현장 내 노하우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AI 사용료를 어떤 예산으로 결재하며, 한 번 만든 결과물을 어떻게 복기해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이 가운데 설계·제조의 실질적인 생산성은 AI 알고리즘의 신묘함보다 ▲데이터 거버넌스 ▲학습 곡선 ▲과금 구조 등 현장 변수에서 먼저 결정된다. 이렇게 조직 경영의 새로운 접근법으로 떠오른 AI는 조직을 운영하는 데 핵심 시스템으로 거듭난 모양새다.

 

이 같은 전환점에서 업무 시스템을 새로 설계하지 못하는 조직은 똑똑한 AI를 도입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조금의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정체 상태에 머물게 된다. 결국 AI 트렌드에서의 혁신점은 신기술 도입을 가로막는 조직 내의 구시대적 규칙을 얼마나 현실적으로 개선하느냐에 있다.

 

 

가상 동반자, 지식 자산을 실시간 의사결정 동력으로 바꾸는 전략

 

이달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3D익스피리언스 월드 2026(Dassault Systèmes 3DEXPERIENCE World 2026 이하 3DXW 2026)’는 앞선 고민에 대한 해답을 쏟아냈다. 글로벌 AI 트렌드 안에서 조직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며,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은 뭔지 등에 대해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다쏘시스템 측은 지난해 행사에서도 언급한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s)’의 개념을 고도화했다. 이를 통해 조직이 현재 갖춘 지식·기술을 어떻게 저장하고, 비용으로 환산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운영 프로세스를 선보였다. 이때 사측의 가상 동반자는 모델이 설계 화면 안에서 사용자와 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한 최신 AI 기술 비전이다.

 

쉽게 말해 여기서의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찾고, 설계도 모델을 효율적으로 바꾸고, 검증 과정(Simulation)을 준비해 주는 자연어(Natural Language) 기반 AI 조수다.

 

올해 3DXW 현장에서 만난 배재인 다쏘시스템코리아 CRE 본부장은 이 흐름을 한국 시장 상황에 대입해 풀어냈다. 한국에서 가상 동반자가 실제 업무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기술 요소가 되려면, 모델 성능 외적인 조건부터 정리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가 가장 먼저 짚은 기술 체계는 지난해 처음 가상 동반자로 데뷔한 ‘아우라(AURA)’의 현재 모습이다. 이는 프로젝트 맥락과 요구 조건을 정리하는 데 본연의 목적이 있는 AI 조력자다. 조직 내부 문서, 과거 설계 자산, 표준·규격 정보 등을 통합해 사용자 의사결정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지난해 가상 동반자의 주인공이 아우라였다면, 레오(LEO)·마리(MARIE)는 올해 행사에서 가상 동반자 라인업을 강화한 신규 동반자다.

 

 

이 중 레오는 형상 편집, 시뮬레이션, 제조로 이어지는 작업 순서를 제안하고 필요한 조정을 설계 모델에 반영하도록 돕는 실행 파트너로 자리한다. 이어 마리는 대상물의 소재·공정 선택 시 강도(Strength)·피로(Fatigue) 등 물성을 비롯해 환경 규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조건까지 함께 검토해 과학 기반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다쏘시스템은 아우라가 현재 제공되는 상태에서 레오·마리를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로드맵을 3DXW 2026 현장에서 제시했다. 이러한 접근은 AI를 ‘대화형 도구’가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내 의사결정·실행’을 한데 묶는 구조로 정의한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사측의 컴퓨터지원설계(CAD)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의 수장 마니쉬 쿠마(Manish Kumar)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이러한 방향을 ‘설계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Design)’로 규정한 바 있다. 복잡한 메뉴와 명령어 숙련을 진입장벽으로 삼았던 CAD 환경을 개선했다는 점이다. 사용자 누구나 자연어로 명령하며, 각종 설계 작업 내 요소를 즉각 검증하는 지능형 설계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다.

 

“회계가 막히면 기술 체계 혁신도 멈춘다”...과금 모델 ‘한국화’와 역할 세분화가 관건

 

배재인 본부장은 가상 동반자가 한국의 특정 산업군에서 강력한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적 화려함보다 당장 현장의 속도감을 높여줄 수 있는 곳이 우선순위라는 분석이다.

 

 

Q. 한국에서 가상 동반자가 두각을 나타낼 산업은 어디라고 보나?

A. 반도체 장비 업계가 유력하다고 본다. 이 분야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활용하는 모든 과정·주기·전략을 뜻하는 ‘고투마켓(Go-to-market)’ 사이클이 굉장히 짧다. 그렇기에 제품 콘셉트 설계부터 실제 제조·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좁혀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곳이다. 실제로 설계가 생산 요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상 동반자를 통한 ‘설계 시간 단축’ 효과를 가장 빠르고 강하게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배 본부장에 따르면, 이 같은 기술이 준비됐다고 해서 곧바로 현장에 AI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의 병목으로, 기술력이 아니라 조직이 비용을 지불하는 ‘지불 방식’에 있다고 짚었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를 한 번 도입하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AI와 노하우를 빌려 쓰는 시대로 프로세스가 바뀌고 있다는 관점이다.

 

Q. 사용량 기반 모델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조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접점은?

A. 한국 기업들은 기술을 쓴 만큼 돈을 내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격표의 숫자보다 중요한 건 그 비용을 회사가 어떻게 납득하느냐다.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라 회계 처리가 낯설어서 도입을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토큰 방식이나 다양한 사용권 모델을 한국 정서에 맞게 잘 조율해야 한다. 결국 현장에서 ‘이 정도면 운영할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그는 이어 레오의 방향성을 ‘단일 만능형’이 아닌 ‘역할 세분화’로 바라봤다. ‘디자이너 전용’ 레오, ‘특정 공정 전문’ 레오처럼 역할이 나뉘어야 비용도 합리화되고 도입 문턱도 낮아진다는 논리다. 이렇게 필요한 역량만 골라 쓰는 구조가 정교해질수록, ‘기술 전면 교체’라는 부담을 버리고 ‘업무 단위 적용’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결과물’ 보다 더 중요한 ‘과정 지식화’, 그리고 데이터 거버넌스 원칙

 

배 본부장이 짚은 두 번째 관문은 바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Learning Curve)’이다. 그에 따르면, 가상 동반자를 도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 하나를 더 배우는 차원이 아니다. 각 조직이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이를 다시 복기해 활용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설계의 진짜 실력이 완성된 결과물, 즉 설계도·도면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고민, 그 과정에서 시도했던 조건들과 반복된 선택의 패턴이 진짜 지식 자산이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엔지니어링 AI가 제대로 가동되게 하려면, 결과물만 저장하는 습관을 버리고 과정을 기록하는 습관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가상 동반자 도입 이후의 ‘교육’ 역시 조직의 일하는 습관을 통째로 바꾸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Q. 사측이 말하는 ‘노하우’가 이 메커니즘을 대표하는 키워드인가?

A. 그렇다. 우리는 설계단의 통상적인 결과물인 도면·설계도만 저장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노하우는 그 결과에 이르는 이력(History)·방법, 그리고 데이터의 배경(Metadata)에 있다. 도면 한 장만 단편적으로 저장하면 추후 AI가 활용할 자료가 충분치 않다. 이렇게 설계한 이유나 맥락에 대한 과정이 쌓여야 하고, 그 데이터가 정돈돼야 AI도 업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보조할 수 있다. 결국 과정이 쌓여야 지식이 된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스타트업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도 관점이 달라진다. 배재인 본부장은 기존의 낡은 습관이 굳어지지 않은 작은 조직일수록 새로운 방식의 학습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봤다. 데이터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를 표준화하고 최고의 사례(Best Practice)를 신속하게 흡수하는 시뮬레이션 속도가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면, 결국 미래의 경쟁력은 보유한 데이터 총량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AI를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허들은 데이터 관리 체계(Governance)다. 배 본부장은 AI 활용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데이터라고 전제하며, 가상 동반자의 확산은 데이터의 양보다 저장·관리·접근의 규칙을 먼저 요구한다고 말했다. 같은 데이터라도 거버넌스 아래에서 구조화될 때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된다는 시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기술적 저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조직이 데이터 생애주기(Life-cycle)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데이터는 훌륭한 기반이 될 수 있지만, 그 연료를 어디에 보관하고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Q. 중견·중소 제조는 데이터 규모가 제각각이다. 최소 기준점을 숫자로 제시할 수 있나.

A. 무작정 몇 테라바이트(TB)가 필요하다고 숫자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적절한 관리 체계 안에서 노하우로 잘 쌓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명확하다. 체계 없이 데이터를 축적하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데이터 규모가 작더라도 정돈된 데이터가 축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이러한 주장은 데이터가 곧 신뢰의 문제로 이어지는 점을 시사한 부분이다. 배 본부장이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데이터 주권(Sovereignty)’과 ‘격리(Isolation) 원칙’이다. 조직의 소중한 지식 자산이 구성원의 업무 숙련을 돕기 위해 활용될지언정, 그 데이터 자체가 담장 너머 다른 조직의 AI를 가르치는 용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만약 이 경계가 불분명하면 기술 검토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계약 단계에서 도입이 무산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Q. 다쏘시스템의 고객 데이터가 타 조직의 AI 학습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는 어떻게 해소되는지.

A. 자사 고객 데이터가 다른 고객과 공유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자사 고객사인 A사 데이터가 또 다른 고객사 B사의 AI 학습에 쓰이는 상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객이 클라우드에 쌓은 지식은 오직 그 고객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동돼야 한다. 조직마다 가진 보안 규정과 국가별 규제까지 충족해야 사용자가 안심하고 데이터를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을 기술적으로 정렬하는 데 역량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고객별 데이터 경계를 전제로 한 클라우드 운영 구조를 구축한 후, 조직 노하우가 외부 AI 엔진의 학습 재료로 오용될 가능성을 방지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작은 성공의 선순환’과 ‘글로벌 생태계 편입’이 뜻하는 것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 제조의 허리인 중견·중소기업들이 처음부터 가상 동반자를 들여와 모든 시스템을 한꺼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배재인 본부장은 전면적 전환은 조직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을 전했다. 자체 AI 역량을 내재화하거나 대규모 서버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비용과 리스크 측면에서 많은 자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 본부장은 도입 전략을 ‘작게 시작해 성과를 확인하며 키우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디지털 전환(DX)을 이제 막 시작하거나 여전히 실현하지 못한 현장에서 가상 동반자와 같은 인공지능 전환(AX)이 가능할까?

A. 초기부터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면 도입 부담이 커진다. 일단 조직이 관리 가능한 작은 범위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는 ‘작은 성공’의 경험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게 축적한 모멘텀을 다음 단계의 투자로 잇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프로세스가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조직의 지식 축적 방식이 정돈되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AI의 효용을 키우는 순환 체계가 완성된다. 즉, 작게 시작해 단계적으로 넓혀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영리한 AX 전략이다.

 

로봇 산업의 사례는 배 본부장이 제시한 '단계적 확장'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영역 중 하나다. 특히 복잡한 기구 설계와 고도의 제어 알고리즘이 맞물리는 로봇 분야일수록, 실제 제작 전 가상 환경에서 무수한 시뮬레이션을 거치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Q. 로봇 분야 고객들은 현재 설계와 운영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나.

A. 이미 전 세계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 중인 산업용 로봇은 양산 단계가 안정돼 있다. 반면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나 자율주행로봇(AMR) 등 비교적 신흥 분야는 설계와 운영의 비중이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모델을 시장에 내놓기 전까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목업(Mock-up) 설계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구조적 특성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Q. 스타트업이 다쏘시스템 기술 생태계에 들어왔을 때 체감하는 가장 큰 이점은?

A. ‘글로벌 무대’에 올라탄다는 점이다. 자사 가상 환경 방법론인 버추얼 트윈(Virtual Twin) 플랫폼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안에서는 파트너나 고객사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게 매끄러워진다.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쓰는 게 아니라, 협업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줄여주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셈이다. 글로벌 레퍼런스를 확보하거나 마케팅 지원을 받는 것도 스타트업에겐 큰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이 과정이 중요하다.

 

결국 배재인 본부장이 제시한 결론은 엔지니어링 AI가 조직에 어떤 프로세스로 구현되는지가 성패를 가른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AX 경쟁은 각 조직이 AI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방식의 차이로 결정될 전망이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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