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 결과, 미국은 제 47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손을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은 전 세계 산업·경제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특히 새 정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기존 바이든 정부와의 차별점을 강하게 어필하며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맹국을 비롯해 경쟁 관계인 중국도 각자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으며,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트럼프 정부, 반도체지원법 손 댈까?
11월 6일(현지시간) 제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자택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를 선포했다. 그는 “미국에 대한 모든 것을 고칠 것”이라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며, 새 정부가 가져올 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이를 웃음짓게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동맹국을 비롯해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 모두 향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안보,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영향을 주고받기에 다가올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재까지 확정된 사실은 없지만, 반도체지원법에 대한 수정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한, 중국 제재로 인한 반사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약 23조5000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까지 총 4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는 삼성전자에 보조금 총 64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8월에는 미 상무부와 최대 4억5000만 달러의 연방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PMT 단계로 보조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기존 보조금 대비 투자 확대 요구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조항 추가로 해외 생산업체에 불리한 방향으로 수정될 우려가 있다”며 “대출 지원·세제 혜택 조항은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인텔·마이크론 등은 여전히 계약과 관련해 일부 주요한 세부 사항을 처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다른 소식통을 통해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 등 일부 기업은 협상을 마무리했고 조만간 최종 보조금을 발표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2022년 제정된 반도체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 390억 달러와 R&D 지원금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對中 압박, 더 강해질 것으로 보여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1기는 중국 화웨이 등 일부 기업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며 본격적인 수출 통제를 시작했고 이 같은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며 중국에 대한 전반적인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 등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중국 수출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1~10월 기준 한국의 대중 무역 비중은 23.3%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합계(25.3%)에 필적하는 수치다. 중국에 편중된 수출 비중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이 중국 내 생산설비 운영을 문제삼을 경우 문제가 커진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쑤저우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의 시안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의 28%, SK하이닉스의 우시·다롄 공장은 각각 전체 D램의 41%, 낸드의 31%의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중 통제가 한층 강화하면 국내 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는 시간을 버는 등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기존 대중 반도체 제재는 극자외선(EUV) 장비 등 첨단 분야에 집중됐으나 올해 들어 범용 반도체 수요, 중국산 비중 등을 알아보기 위한 공급망 조사에 착수하는 등 레거시 분야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반도체 넘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다수의 전문가는 보조금 폐지와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변화는 국내 반도체 산업을 넘어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선임고문은 워싱턴DC의 아메리칸대학이 주최한 행사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IRA와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여한구 PIIE 선임위원은 다양한 정책 변화로 한국의 무역과 투자의 초점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지부장은 “지금은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테네시, 조지아, 앨라배마 등 한국 기업이 투자한 지역 정부가 한국의 동맹이 되고,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국내 경제·산업에 부장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하 협회)가 연구개발 조직 보유기업 900여 개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68%는 대선 결과가 글로벌 경제환경을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관세정책 확대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 글로벌 공급망 변화 등의 위험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수출 중심 경제구조와 반도체, 배터리 등 미중 기술패권 핵심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경제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다만 부정적 영향이 커도 기업 경영활동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도 53%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업황 부진도 시장 불안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의 경쟁력 훼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약진으로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독점적 지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삼성전자 자체 문제에 더해 삼성전자가 주력으로 하는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9월부터 하락 중”이라며 “주식시장은 반도체 영향이 절대적인데, 삼성전자 주가 하락이 전체 지수를 끌어내리는 추세다”고 말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