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할 수는 없고, 누군가 하긴 해야겠고... 어떻게 하다보니 이 짐을 제가 짊어지고 있네요.(웃음) 참 험난한 길인데, 내가 여기서 못하겠다고 나자빠져버리면 우리 동료 스타트업들, 후배 기업들, 협력 기업들이 '우리나라는 정말 어려운건가?'하면서 탁 꺽여버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해요.“
"대표님께 자율주행이란?". 인터뷰의 막바지,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의 클로징 장면을 따라 반쯤은 장난스레 건넨 질문에, 뜻밖에 무슨 질문에도 척척 대답하던 그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뜨문뜨문 꺼내놓은 말들 사이에서, 단어 몇 개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진심이 느껴졌다.
자신이 창업한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장에서 산업의 구심점으로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한지형 대표는 업계에서 제법 뼈가 굵은 선배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창업하기 전, 한지형 대표는 11년간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했다. 처음 6년 동안은 일반 양산차 개발 PM(Project Manager)을, 이후에는 자율주행차 개발을 맡았다.
당시는 현대자동차가 합작법인 모셔널을 설립하기 전으로, CES 2017에서 정의선 회장이 타고 등장했던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와 평창 올림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승했던 넥소 자율주행차는 모두 한지형 대표와 동료들의 작품이다.
현대자동차에서 나와 경일대학교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을 하던 한지형 대표는 동료 연구자 네 명과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만도, 이레AMS 등 자동차 업체에서 함께 일했던 엔지니어와 삼성, LG, SKT 등 IT/통신업계에서 실무를 맡았던 개발자 들이 모여들었다.
"현업에서 양산 업무를 하던 인력들이 뭉쳐서 일하다 보니,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실제 양산을 위한 개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현재는 로봇택시, 자율주행버스, 무인특장차 등 다양한 형태의 자율주행차를 실증하고 있어요."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세종, 광주, 울산, 대구 등 지자체에서 자율주행 실증 사업을 수행 중이다. 서울 판교, 경북, 화성시, 강원도 등에서는 자체적으로 맵을 구축해 자율주행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자율주행 총 누적 주행거리가 20만km를 넘었다.
2020년 12월, 카카오모빌리티와 세종시에서 함께 시작한 자율주행 로봇택시 유상 서비스는 여러 뉴스 매체에서도 뜨겁게 다뤄지며, 대한민국에 자율주행 기술의 또 한번의 도약을 알렸다.
"작년 2월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와 연계된 자율주행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전국에 많은 자율주행 업체를 만나고 다녔대요. 그런데 실제 도로에서 자율주행으로 일반 고객을 태울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회사가 당시에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저희가 창업한지 1년 조금 넘었을 때였어요. 우연찮게 연결이 돼서 관계자가 저희 자율주행차도 타보게 됐고, 협업을 하기로 이야기된 거죠. 협업을 계기로 카카오가 저희 회사에 투자도 하게 됐고요."
한 대표는 "카카오와는 향후 스마트 시티(Smart City) 사업을 함께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귀띔해 줬다. 스마트 시티 안에서 이동에 대한 서비스는 카카오가 맡고, 모빌리티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만드는 그림이다.
"자율주행을 위한 도로 환경, 통신 기술, 인프라. 이 모든 게 담겨 있는 게 스마트 시티에요. 엔지니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의 도로환경에서 100% 자율주행은 힘들 것 같아요.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 무단횡단하는 사람, 길고양이 같은 동물 등 극복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너무 많거든요.
스마트 시티같이 자율주행차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구역 안에서는 무인 모빌리티가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펜스가 쳐진 자율주행차 전용도로, 전방에서 발생한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는 도로 인프라 등,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율주행차를 고려한 스마트 시티가 조성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100% 자율주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스마트 시티 안에서 무인으로 도로 위를 다닐 수 있는 셔틀버스, 배송차, 순찰차, 청소차 등 특수목적차량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도로 위'라는 단어를 굳이 쓴 이유는, 도로 위를 달리는 모빌리티는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을 준수하는 '자동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에요. 인도 위를 다니는 모빌리티는 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정확히 말하자면 '로봇'이거든요. 자동차와 로봇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완전히 다르고, 관련된 법규도 달라요. 저희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은 자율주행차 양산을 목표로 밤낮 분투하고 있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이지만, 한지형 대표는 처음부터 자율주행'차'를 만드려는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R&D 단계이기 때문에 자동차, 트럭을 사서 자율주행차로 개조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자율주행차 양산 연도로 설정한 2027년이 되면 이러한 개조차 형태로 진행되는 실증사업이나 R&D 시장은 닫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동차 OEM에 직접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소프트웨어는 반드시 어딘가에 얹혀져야 하니까, 결국 소프트웨어를 얹을 자동차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한 거죠."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뉴로(Nuro), 죽스(Zoox) 등 글로벌 자율주행 개발사들도 자율주행차를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사실 자동차를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자율주행차 양산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건, 저를 비롯한 회사 엔지니어들 대부분이 자동차 회사에서 실무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회사의 구성원들이 자동차 제조 전반의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그렇다고 해도 저희같은 스타트업이 고속으로 주행하는 일반 자동차까지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제한된 구역 내에서 저속으로 움직이는 특수목적차량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한지형 대표의 이야기처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과 자율주행차 제조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초거대 IT 기업 애플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자율주행차 애플카조차도 기존의 완성차 제조업체와 협력하지 않고는 출시가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차량 양산과 관련해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구체적인 전략을 물었다.
"2023년까지 T카, 2024년까지 프로토카, 2025년까지 파일럿카를 만들 계획이에요. 일반적인 차량 개발 프로세스와 유사한 단계를 거치면서 안전성, 내구성을 보완하고 관련 법규도 다 만족시키는 차를 개발할 거예요.
2025년경에 자율주행 관련 대규모 실증사업이 시작돼요. 도시 하나를 정해서 그동안 정부에서 진행한 다양한 자율주행 관련 R&D 사업의 결과물들을 모으고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서비스해보자는 건데요. 여기에 저희 파일럿카를 투입해서 다양한 실증사업을 하는게 저희의 1차 목표에요. 이곳에서 2년 동안 실제 서비스와 연동된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고, 2027년에 대량 양산을 하는 것이 최종목표입니다.
한지형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동차 회사 출신들이 모여서 그런지,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결코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형 대표는 일반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를 대량으로 양산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차의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동차의 완성도는 부품의 질에 달려 있어요. 부품이 잘 만들어져야지만 차가 완벽하게 나오죠. 비슷한 부품을 사와서 가공을 하거나, 조그만 업체를 껴서 어설프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는 실제 자동차 부품 업체들과 직접 부품 개발을 해서 제대로 된 차를 만들 거예요."
자율주행을 개발하는 회사로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지금도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자율주행이 완벽하게 잘 돼요. 그런데 예를 들어, 주행 중에 갑자기 차선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가 튀어나온다면, 이건 사람이 운전을 해도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사고가 발생하면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회사로서는 엄청난 타격이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대처하는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냐 하는 어려움이 있고요.
두 번째로 투자 환경이 아쉬워요. 미국이나 중국같은 경우에는, 저희처럼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를 할 정도의 실력이 있는 스타트업들이 조단위의 투자를 받아서 자율주행차 수백대로 테스트를 하거든요. 다양한 엣지 케이스를 발굴해서 개선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테스트 양이 굉장히 중요한데, 저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율주행차 10대도 대부분 정부 R&D 사업을 통해 확보한 예산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당장 수익은 안 나더라도 10여년 정도는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듯 기다려줄 수 있는, 그런 투자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대표님께 자율주행이란 무엇이냐' 물었다. 그가 자율주행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지형 대표의 대답에는 그가 연구자로서 걸어온 길과 겹겹이 쌓인 경험, 시간 같은 것들이 엉겨져 있었다.
"업계에서 10년 이상 있다 보니까,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알게 되잖아요. 자율주행이라는 것을 안 하면, 일이십년 뒤에는 산업이 다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우리나라 자율주행 산업 구조를 보면, 자율주행 관련 부품 기업이 80%, 자율주행차가 나온다는 전제 하에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업이 20% 정도인데요, 부품 기업이 부품을 납품할, 서비스 기업이 이용할 차를 만들, 0.1%의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회사가 중간에 들어가 줘야 비로소 그림이 완성되고, 생태계가 구축되는 상황인거죠."
"자율주행이란... 하자니 너무 어려운 길이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고 문득 두려울 때가 있어요. 깜깜한 데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데 왠지 앞이 낭떨어지같은 거죠.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인데, 그래도 돌이켜보면, 자율주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더 많이 후회하고 있을 것 같아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 간다는 것은 끝없는 막막함을 물리치는 싸움의 또 다른 말일 것이다. 그 지난한 싸움을 제대로 헤아리기엔 짧았던 한 시간의 인터뷰 동안, 그가 자율주행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에는 분명 선배로서의 의무감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가만히 생각했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