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저성장 국가, 전혀 다른 결과의 이유
요즘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말이 있다. “일본 부동산은 괜찮다는데, 한국은 왜 이렇게 조용할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부동산은 ‘잃어버린 30년’의 상징이었다. 집값은 오르지 않았고, 인구는 줄었으며, 부동산은 투자 대상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늘고 있고, 외국인 투자 자금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바닥인가요?”라는 질문이 반복되고, 거래 회복의 체감은 더디다.
이 차이는 단순한 경기 흐름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저성장 국가,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가진 두 나라가 왜 전혀 다른 부동산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그 원인을 구조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 부동산은 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나
먼저 일본의 사례부터 보자. 일본 부동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정책의 일관성과 시장 자율성이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긴 침체를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가격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았다. 시장이 조정할 것은 조정하도록 두었고, 대신 금융 시스템과 기업 구조를 정비하는 데 집중했다.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변수가 더해졌다. 바로 초저금리의 장기화다. 일본은 오랜 기간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했고, 이 환경 속에서 부동산은 ‘가격 상승 자산’이 아니라 ‘현금 흐름 자산’으로 재정의됐다.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아도 임대 수익이 안정적이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 된 것이다.
수익 중심으로 재편된 일본 부동산 시장
실제 사례를 보면 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도쿄 도심의 중소형 오피스 빌딩이나 임대주택은 연 3~4퍼센트 수준의 수익률을 꾸준히 제공한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화려하지 않지만, 금리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자산이다. 여기에 엔저가 더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율 메리트까지 확보됐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 역시 외국인 투자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시장의 흐름을 막지 않았다.
일본 부동산의 회복은 갑작스러운 가격 반등의 결과가 아니다. 수익 중심의 자산 인식, 일관된 정책, 자본 유입을 허용한 구조가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다.
가격을 붙잡아 온 한국 부동산의 선택
반면 한국 부동산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국 부동산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집은 거주의 수단이자 정치적 이슈였고, 동시에 ‘오르면 성공, 떨어지면 실패’라는 이분법적 자산으로 인식돼 왔다. 이 인식은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은 가격 하락 국면이 올 때마다 규제로 대응해 왔다. 대출을 조이고, 거래를 막고, 보유와 처분 모두에 부담을 얹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 방어 효과가 있었지만, 그 대가는 거래 실종과 시장 경직이었다. 가격은 버텼지만 시장의 숨통은 막혔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단순하다. 사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망설이게 되고, 팔고 싶어도 세금과 불확실성 때문에 미루게 된다. 이 상황이 길어질수록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이 하락을 받아들이며 구조를 바꿔온 반면, 한국은 하락을 막으려다 구조 자체를 굳혀버린 셈이다.
같은 조건, 다른 결과를 만든 결정적 차이
일본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고령화, 인구 감소, 낮은 성장률이라는 조건은 거의 비슷하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의 체감 온도는 완전히 다르다. 차이는 선택의 방향에서 갈린다. 일본은 가격이 아니라 구조를 선택했고, 한국은 구조보다 가격을 선택했다. 일본에서는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부동산 투자가 성립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투자 자체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이 차이는 자본의 움직임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글로벌 자금은 감정이 아니라 수익과 예측 가능성을 본다. 규제가 잦고 출구 전략이 불확실한 시장보다는 느리더라도 안정적인 시장을 선택한다. 최근 글로벌 자금이 서울보다 도쿄를 먼저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부동산의 다음 국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한국 부동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다만 조건이 따른다. 정책의 방향이 가격 통제에서 거래 정상화로 이동해야 하고, 부동산을 다시 수익 자산으로 정의해야 한다. 임대 수익과 운영 효율, 자산 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일본도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았다. 10년,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역시 단기간 반등을 기대하기보다 구조 전환의 초입에 서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앞으로 한국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수요가 검증된 지역과 상품은 서서히 회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장기간 정체를 겪을 수 있다. 일본처럼 전체가 함께 오르는 시장이 아니라, 선별적으로 회복되는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봐야 할 시점
요즘 일본 부동산이 좋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많은 이들이 부러움부터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일본 부동산의 회복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누적이다. 하락을 받아들이고, 구조를 고치고, 자본의 흐름을 열어둔 결과다.
한국 부동산도 언젠가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 다만 그 출발점은 “지금이 바닥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시장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가격을 붙잡을 것인가, 구조를 바꿀 것인가. 이 선택이 앞으로 10년 한국 부동산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지윤 부동산전문기자/작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