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제조 운영 환경은 현장 데이터와 작업자 인터페이스 간의 간극을 여전히 안고 있다. 이는 효율적인 의사 결정과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각종 제조 인프라에서는 로봇·센서, 제조실행시스템(MES)·전사적자원관리(ERP)·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등에서 초 단위로 데이터가 쏟아진다. 이를 통합하고 직관적으로 시각화하는 기술이야말로 현장 효율화를 위한 핵심 요소가 됐다.
지난 20여 년 동안 3차원(3D) 기반 컴퓨터지원설계(CAD), 해석 솔루션, 데이터 기반 시뮬레이션 모델 등이 제조 현장에 도입됐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자산의 대부분은 사무실 모니터 속에서 일부 엔지니어와 담당자만 들여다보는 정보로 남은 경우가 많다. 또한 아직 많은 현장에서는 작업자·관리자가 마주하는 인터페이스가 이전 방식에 머물러 있다. 2차원(2D) 도면, 엑셀, 종이 작업지시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로봇 밀도(Robot Density)와 산업·공장 자동화(FA) 측면에서 글로벌 최상위권에 있는 한국 제조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라인 밑단까지 디지털 도구가 내려온 곳은 많지 않고, 생산성·품질·안전을 좌우하는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은 많지 않은 엔지니어 화면 안에 머문다고 지적한다.
이 배경에서 설계, 생산, 운영의 전 과정을 가상과 실제 세계에 연결·최적화하는 기술 생태계가 있다. 이들은 시뮬레이션 기반 가상 모델링 접근법을 통해 오랜 시간 혁신을 달성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 가상 환경 방법론을 구축·고도화한 시뮬레이션 및 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자사 3D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체계인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을 내세운다. 이를 기반으로 한 ‘3D익스피리언스(3DEXPERIENCE)’ 플랫폼을 통해 오랜 기간 활약하고 있다.
이는 제조 엔지니어 및 생산 기술자, 품질·설비 엔지니어, 항공우주·자동차 개발자, 도시 계획가 및 건축가 등 다양한 사용자가 하나의 버추얼 트윈 환경 안에서 협업하도록 돕고 있다. 이 환경에서 설계 모델링과 해석·시뮬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동시 공학(Concurrent Engineering)이 구현된다.
이러한 다쏘시스템이 이달 14일 국내 지사 사옥에서 애플의 공간 컴퓨팅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활용한 새로운 버추얼 트윈 기반 상호작용 기술을 공개했다. 사측은 이 시도를 ‘센스 컴퓨팅(Sense Computing)으로 정의했다.
현실과 가상의 단절을 끊다...애플 비전 프로와 3D익스피리언스의 동행
다쏘시스템이 제안한 센스 컴퓨팅은 제조·서비스 현장의 고질적인 세 가지 문제에서 시작한다. 제품 개발 시 실물 프로토타입 제작에 드는 시간·비용이 첫 번째 한계다. 이어 정교한 물리 법칙 기반 모델링보다 경험·추정에 의존하는 시뮬레이션 활용법이다. 마지막으로 설계·해석·제조·서비스 데이터가 파편화돼 관리되므로 버전 불일치 문제가 빈번하다는 지점이다. 결국 각 조직·담당자마다 흩어진 정보를 참고하기 때문에 효율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다쏘시스템은 이러한 문제의 해법으로 버추얼 트윈을 활용한 기법을 강조했다. 이는 설계, 해석, 생산 계획, 운영 데이터를 단일 플랫폼에 축적하고, 이를 실제 공장이나 제품을 가상 환경에 그대로 복제해 의사결정까지의 과정을 순환하는 개념이다. 3D익스피리언스는 이러한 주기를 통합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공개된 센스 컴퓨팅은 이 버추얼 트윈에 애플 비전 프로를 융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는 시각화와 조작 방식을 혁신하기 위한 시도다. 구체적으로 버추얼 트윈과 스페이셜 컴퓨팅(Spatial Computing) 기술이 융합된 접근 방식이다. 이때 스페이셜 컴퓨팅은 실제 공간 위에 3D 정보를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사용자의 시선, 손 동작, 신체 움직임을 등을 인식하는 컴퓨팅 기법이다.
이날 ‘3D익스피리언스 이그제큐티브 센터(3DEXPERIENCE Executive Center 이하 3DEC)’에서 이 같은 시연이 펼쳐졌다. 이 시설은 다쏘시스템이 버추얼 트윈과 3D익스피리언스 기반 산업별 시나리오를 대형 스크린과 몰입형 콘텐츠로 시연하는 전용 체험 공간이다.
이 자리에서는 설비, 생산 라인, 항공기 객실 등을 사용자의 1인칭 시점에서 큰 화면에 띄워 참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러한 사용자 시점 화면 구성은 설비 점검, 작업자 교육, 의사결정 과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인터페이스 실험이다. 앞서 언급한 데이터와 현장 화면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주목받았다.


▲ 백강민 다쏘시스템코리아 카티아(CATIA) 인더스트리 프로세스 컨설턴트가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시연에 나섰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이곳을 이끄는 김현진 센터장은 “버추얼 트윈은 생산 라인 운영부터 제품 설계 검토까지 아우르는 공통 인터페이스로 확장하려는 다쏘시스템의 청사진”이라며 “센스 컴퓨팅은 이러한 다쏘시스템의 구상이 실제 시연 수준까지 구현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페이셜 컴퓨팅의 힘으로 사용자의 설계와 제조 방식을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부연하며 사측의 비전을 역설했다.
현장의 안전 확보 매뉴얼: 가상 속 '위험 영역' 최소화하기
첫 번째 시연은 생산 라인 장애 대응과 안전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비전 프로 화면에는 자동차 조립 라인의 버추얼 트윈이 실제 시점과 유사하게 펼쳐졌다. 시연 시나리오는 로봇이 멈추고 경고 알람이 뜨는 상황이다.


▲ 가상의 공정을 시각화해 둘러보는 모습(좌)과 로봇을 활용한 자동차 용접 공정에서 위험 상황을 감지해 대응하는 화면(우).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비전 프로를 착용한 작업자는 가상 라인 안으로 들어가 문제 지점을 직접 확인한다. 이때 가상 환경은 위험 영역과 점검 가능 영역을 색으로 구분하고, 설비 정지 및 점검 포인트를 단계별로 안내한다.
김현진 센터장은 실제 라인 투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상 환경에서 반복 연습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안전 거리, 동선, 점검 포인트 등을 체화해 안전성과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2D 지시서의 전환: 3D 분해로 익히는 직관적 작업 표준
이어 작업자 교육과 작업 지시 전파 방식의 새로운 기술 관점을 다뤘다. 기존 현실 교육 환경에서는 작업자들이 2D 도면과 텍스트 위주의 작업지시서로 공정을 익혔다. 이러한 과정은 부품의 위치·깊이·순서 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종이 문서로 인해 설계 변경 사항이 반영되지 않은 채 구버전 기준으로 작업이 진행될 위험이 있었다.


▲ 공정을 센스 컴퓨팅으로 구현해 조립 주기의 전체 워크플로를 가상으로 수행하고 있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센스 컴퓨팅 기반 교육은 비전 프로 화면에 장비 구성품이 3D로 분해된 상태로 나타난다. 사용자는 본체를 회전시켜 구조를 파악하고, 안내에 따라 부품을 분리하는 순서를 그대로 따라 한다.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화면이 업데이트되고, 잘못된 순서를 시도하면 경고가 뜬다.
이 같은 교육법은 가상 환경 연습을 통해 부품 처리 순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사용자의 작업 정체나 실수 데이터를 수집해 교육 커리큘럼, 작업 표준, 나아가 공정 설계 자체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버추얼 쇼룸: 시간과 비용을 초월하는 공간 설계법
항공기 객실을 예시로 한 화면도 도출됐다. 제품 사양과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과정에 센스 컴퓨팅을 적용한 사례다. 현장 내 비전 프로 화면에는 비행기 내 비즈니스·이코노미 클래스가 실제 크기에 가깝게 펼쳐졌다. 이때 사용자는 좌석 배치, 통로 폭, 조명 색상, 마감재 등 다양한 요소를 조정할 수 있다. 여기에 객실을 실제처럼 걸어 다니며 둘러볼 수도 있다.
김 센터장은 이를 통해 실물 모형(Mock-up), 쇼룸 시공 등에 드는 비용·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버추얼 트윈 기반 센스 컴퓨팅 환경에서 즉석으로 디자인 요소를 변경하며 사양을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 비행 중 통신 품질을 위한 와이파이 증폭기 위치를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이 시각적으로 보여졌다. 증폭기 위치를 옮길 때마다 전파 도달 범위와 음영 구간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방식이다. 이는 승객에게 고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최적의 배치를 검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다쏘시스템은 올해 초 애플과의 협업을 공식화했다. 이 가운데 자사의 차세대 기술 전략인 ‘3D유니버스(3D UNIV+RSES)’와 함께, 애플 비전 프로를 3D익스피리언스에 통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회사는 버추얼 트윈으로 만든 공장·제품 모델을 비전 프로로 불러오는 메커니즘을 내세웠다.
이날 또 다른 핵심은 애플 비전 프로의 운영체제(OS)인 비전OS(VisionOS) 기반 애플리케이션 ‘3D라이브(3DLive)’이다. 3D익스피리언스에서 구축한 버추얼 트윈 모델을 실제 공간 위에 1:1 크기로 띄워 놓고, 각 조직·담당자가 같은 화면을 보며 동시에 검토·협업할 수 있게 해주는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의 모습이다.
이번 센스 컴퓨팅 시연은 이 글로벌 파트너십이 생산 라인 장애 대응, 작업자 교육, 항공기 객실 설계 등 구체적인 산업 시나리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국내 무대에서 입증한 사례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