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산업의 지형도가 AI 융합 기술을 기점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제조업 자동화에 기반한 산업용 로봇은 이제 AI 기반의 학습과 추론 기능을 탑재하며 차세대 지능형 로봇으로 진화 중이다. 고영테크놀로지 고경철 전무는 “로봇 기술의 본질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더 나아가 데이터 기반 인프라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로봇과 AI의 융합 동향, 기술적 과제, 글로벌 생태계 경쟁 상황을 짚었다. 이 글에서는 로봇 기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AI와의 접목을 통한 미래 전략을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한국 로봇 산업의 궤적과 AI 융합 도입의 배경
국내 로봇 산업의 태동기는 1980~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 LG, 현대, 대우 등 대기업들은 자동화 붐에 힘입어 산업용 로봇 개발팀을 조직하며 본격적인 기술 내재화에 나섰다. 386 PC와 8086 코프로세서가 주요 연산 장비였던 시절로, 컴퓨팅 파워는 현재와 비교해 수천 배 이상 느렸지만, 그 한계 속에서 축적된 제어 기술, 하드웨어 설계 역량은 이후 한국 로봇 산업의 핵심 토대가 되었다. 고영테크놀로지의 고경철 전무 역시 당시 LG에서 로봇 개발팀장을 맡아 산업용 로봇 개발에 앞장섰으며, 이후 고영테크놀로지 설립에 합류해 검사장비 및 의료 로봇 분야로 전문영역을 확장했다.
2000년대 초반, 정부는 ‘지능형 로봇’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지정하며 대대적인 육성 정책을 펼쳤다. 고경철 전무는 당시 로드맵 수립 및 전략 기획에 적극 참여했고, 로봇이 국가 핵심 산업으로 성장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고영테크놀로지는 로봇 기반 검사장비 기술과 컴퓨터 비전 기술, 광학 측정 기술을 결합해 전자기판 불량 검사 장비를 개발했으며, 이는 스마트폰, 자동차 ECU, 서버용 PCB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단순 자동화에서 벗어나 3D 표면 검사, 웨이퍼 레벨 패키징(WLP) 등 고정밀 제조 공정까지 대응하는 기술력은 한국 로봇 산업이 AI 시대를 준비하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로봇의 4대 난제와 기술적 돌파 시도
로봇 기술의 진보는 결국 ‘지능화’라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를 위해 고경철 전무는 로봇의 4대 핵심 난제로 △물체 인식 △위치 인식 △보행 기술 △핸들링 기술을 꼽았다. 각각의 기술은 단독으로도 난이도가 높지만, 이들이 통합되어 인간 수준의 자율성과 대응 능력을 구현하려면 더욱 복합적인 기술 융합이 필요하다.
물체 인식 기술의 경우, 과거에는 정형화된 데이터나 단순 카메라 기반 인식에 의존했으나, 최근에는 유니티(Unity) 기반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ROS(Robot Operating System)와 연동한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2D 이미지 분석을 넘어, 라이더(LiDAR) 기반 3D 인식 기술이 보편화되며 물체의 입체적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로봇이 복잡한 환경에서도 물체를 감지하고 조작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위치 인식 기술도 급격한 발전을 거쳤다. 초기에는 단순 지도 생성 및 추적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시맨틱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을 통해 공간 내 의미를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책상 위에 책이 놓여 있음을 인식하고 해당 공간을 ‘책상’으로 이해하는 식이다. 이처럼 의미 기반의 공간 인식은 AI와의 결합을 통해 로봇의 상황 판단 능력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개별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로봇은 점차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판단하며,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주자들의 전략과 AI 생태계 경쟁
로봇 산업은 기술 그 자체뿐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생태계 경쟁의 양상으로도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AI와 로봇 기술의 통합을 선도하며,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자 커뮤니티 측면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CES 2025에서 공개된 피규어 AI(Figure AI), 아폴로(Apollo), 디짓(Digit), 유니트리(Unitree) 등은 모두 AI 내장형 로봇으로, 로봇의 학습·추론·제어까지 하나의 시스템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들은 아마존, 테슬라,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제조·물류 대기업들과 협력 중이며, 실제 현장 투입을 위한 양산 계획까지 발표하고 있다.
NVIDIA는 Isaac Sim, Omniverse, World Foundation Model 등으로 시뮬레이션 기반 로봇 학습 인프라를 구축했다. 해당 기술은 실제 공정 환경을 디지털 트윈 기반으로 재현하고, 수백만 번의 학습 시뮬레이션을 통해 강화학습 기반 제어 모델을 훈련시킬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물리적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식이며, Sim2Real(시뮬레이션-현실 간 전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적 접근도 활발하다.
중국은 ‘딥시크(DeepSeek)’와 같은 자체 LLM 모델을 활용해 로봇 AI 모델을 독자적으로 훈련시키는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대회 (CHREC 2025)를 통해 실제 공정에 투입 가능한 로봇 기술을 공개했으며, 상하이 자동차, 항공기 제작 현장에서의 실제 활용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글로벌 주자들은 단순히 로봇을 제작하는 수준을 넘어, 로봇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는 AI 중심의 개발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오픈소스 플랫폼과 로봇 교육 생태계의 확산
AI 시대의 로봇 기술 경쟁은 더 이상 하드웨어 중심의 경쟁이 아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소프트웨어 개방성과 커뮤니티 기반 생태계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Hugging Face는 이를 대표하는 사례로, 145만 개 이상의 AI 모델, 수천 개의 로봇 제어용 모델, 다양한 학습 데이터셋과 코드를 자유롭게 공유하고 있다. 이는 개발자 간 협업과 재사용성을 극대화함으로써 AI 기술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고 있다.
교육용 로봇 플랫폼의 대표주자 유니트리는 로봇 하드웨어 구매 시 SDK, API, 개발 툴킷을 모두 제공한다. 사용자는 로봇을 직접 제어하고, 데이터를 연동해 실시간 학습 환경을 구성할 수 있다. 연구자 및 개발자들은 유니티(Unity), ROS, GPT 기반 코드 생성 도구 등을 활용해 복잡한 로봇 동작 시뮬레이션을 구현하고, 이를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고경철 전무는 이러한 개방형 생태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 로봇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툴킷을 공개하고, 개발자와 학생들이 직접 로봇을 학습시킬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 기술 개발을 넘어 인재 양성, 산업 저변 확대, 글로벌 진입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로봇 훈련소 개념 도입과 테스트베드 구축 등 실증 환경 제공도 병행되어야 국내 로봇 기술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강화학습과 기존 제어 기술의 하이브리드 접근
강화학습은 알파고 이후 로봇 제어 기술의 핵심 방법론으로 부상했다. 특히 보행, 물체 인식, 핸들링 등 복잡한 물리 환경에서 로봇의 자율성과 적응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어 강화학습의 성능은 탁월하다. 하지만 95% 이상의 정확도가 요구되는 의료, 제조, 국방 등 산업현장에서는 강화학습 기반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고정밀도 제어가 요구되는 산업 분야에서 하이브리드 접근법을 대안으로 만들고 있다.
기존의 모델 기반 제어 기술은 수학적 이론과 물리 모델링에 기반해 고정밀 동작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개발 시간이 길고, 초기 설계 난이도가 높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데이터 기반의 강화학습은 반복 학습을 통해 빠르게 동작 패턴을 학습할 수 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최근에는 두 방식을 결합해, 강화학습으로 기반 동작을 학습하고, 모델 기반 제어로 보정하는 형태의 하이브리드 로봇 제어 구조가 부상하고 있다.
고 전무는 피규어 AI의 제어 구조 사례를 언급하며, 로봇 내부 AI가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중 구조를 형성하는 흐름을 강조했다. 전자는 강화학습 기반 자동 제어, 후자는 추론 기반 의사결정을 맡는 방식이다. 이는 일종의 인간의 본능적 반응과 논리적 판단을 모사하는 방식이며, 앞으로 인바디드 인텔리전스(Embedded Intelligence) 구현의 핵심 프레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AI와 전통적 제어기술의 융합은 로봇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한국 로봇 산업의 과제와 대응 전략
중국과 미국은 AI와 로봇 기술의 융합 속도를 높이며 압도적 격차를 벌려가고 있다. 한국은 하드웨어 기술에 비해 소프트웨어 생태계와 오픈소스 참여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개발자 커뮤니티 형성과 인재 유출 방지, 교육 인프라 구축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고경철 전무는 “이제는 데이터와 인프라, 그리고 인재가 승부를 가른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정책적 뒷받침과 산업계의 오픈 전략 전환 없이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향후 10년, 로봇과 AI 융합의 주도권은 ‘누가 더 빠르게 열고 공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헬로티 임근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