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이 글로벌 원유와 가스 시장에 장기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경고가 주요 석유·가스 기업 CEO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가 3월 28일(현지 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 경영진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S&P 글로벌(S&P Global)의 연례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CERAWeek)에서 이란 전쟁이 에너지 공급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평가했다. 이들은 현재 시장이 공급 차질의 규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와 유럽이 연료 부족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영진은 전쟁이 이어질 경우 아시아와 유럽에 항공유, 디젤, 휘발유 등 정제 제품 부족이 확산되고, 특히 아시아에서 시작된 공급난이 4월 중 유럽까지 번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각국이 고갈된 비축 물량을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 유가가 기존 수준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전망 속에서 유가는 변동성을 보이면서도 3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라이언 랜스(Ryan Lance)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 CEO는 세라위크 참석자들에게 전쟁으로 하루 800만~1000만 배럴의 원유와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약 20%가 공급망에서 이탈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랜스 CEO는 이 같은 물량이 세계 시장에서 빠지면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물리적 공급 흐름이 가격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셰이크 나와프 알사바(Sheikh Nawaf al-Sabah) 쿠웨이트석유공사 CEO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함으로써 중동 산유국들을 상대로 사실상의 경제 봉쇄를 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이 걸프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을 세계 시장과 잇는 핵심 통로라고 설명했다. 알사바 CEO는 이번 사태가 걸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는 공격이라고 규정하면서, 전쟁의 비용이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는 ‘도미노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사바 CEO는 이 전쟁의 비용은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 공급망 전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걸프 아랍 국가들의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수준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보안 전문가들도 전쟁의 추가 격화를 예상하며, 지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폴 샌키(Paul Sankey) 생키리서치(Sankey Research)의 독립 애널리스트는 이번 충격이 1973년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지한 미국과 서방을 상대로 한 아랍산유국의 원유 금수조치 이후 최악이라고 진단했다. 국제에너지기구에서 1990년에 경력을 시작한 그는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으며,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것은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샌키 애널리스트는 현재 사실상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는 상황이라며 사태를 매우 엄중하다고 평가했다.
경영진의 이 같은 우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업계와 시장을 안심시키려는 메시지와 대조를 이뤘다.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CNBC에 시장이 단기간의 혼란을 겪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장기적 이익을 위해 이 정도 비용은 감수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 전쟁으로 막대한 자산이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랜스 CEO는 코노코필립스가 카타르에 있는 미국 소유 자산과 수억달러 규모 투자에 대해 군사적 보호를 요청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사실상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 허브가 있는 카타르 시설이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랜스 CEO는 지난 몇 주 동안 비필수 인력 상당수를 현지에서 대피시켜야 했으며, 이 과정이 큰 과제가 됐다고 전했다.
3월 28일(현지 시간) 기준으로 유가는 전쟁 관련 협상 기대가 커질 때마다 하락했다가, 긴장 재점화 우려가 커지면 다시 상승하는 등 요동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주 초 이란의 발전소를 폭격하겠다는 위협을 철회했고, 한 주 내내 이란이 분쟁 종식을 위한 협상에 나서길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투자 심리는 불안한 상태가 이어졌고, 결국 주간 마지막 거래일인 3월 28일(현지 시간)에는 3년 넘게 보지 못한 고점에서 마감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월 28일(현지 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이후 배럴당 99.64달러까지 49% 급등했다. 국제 기준인 브렌트유 가격은 같은 기간 55% 이상 치솟아 배럴당 112.57달러에 도달했다. 시장에서는 협상 기대와 군사 충돌 우려가 교차하며 향후 가격 변동성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와엘 사완(Wael Sawan) 셸(Shell) CEO는 가격 논쟁도 흥미롭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실제 물량의 흐름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분자와 전자, 즉 실제 에너지 공급이라며, 물리적 공급 부족이 가격 지표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이크 워스(Mike Wirth) 셰브런(Chevron) CEO는 선물시장 가격이 보여주는 것보다 실제 원유 공급이 훨씬 더 빠듯하다며, 현재 시장 반응은 부족한 정보와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