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리끼리 논다는 법칙은 과학에도 적용된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고, 이 안을 떠다니는 미세 입자들도 물과 기름 중 자신이 더 편한 쪽, 즉 에너지가 낮은 쪽에 모이게 되는 분포 법칙이다. 하지만 티끌보다 더 작은 세균이더라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같은 통계 분포를 깰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UNIST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 생명과학과 로버트 미첼 교수와 스탠퍼드 대학 쇼 타카토리 교수 연구팀은 세균처럼 작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입자들이 어떠한 통계 분포 원리를 따르는지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2일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살아있는 세균의 분포를 결정하는 요소는 세균의 운동성과 특정 액체상에 대한 선호도다. 세균이 특정 액체상에 끌리는 힘은 세균을 해당 액상에 가두는 역할을 하고, 세균의 운동성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경쟁적 관계다.
연구팀은 세균의 분포를 설명하는 이론 모델을 이 두 힘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만들어냈다. 광학집게 기술로 세균이 특정 액체상에 끌리는 힘을 측정한 결과, 1 피코 뉴턴 (1pN) 수준으로 밝혀졌다. 피코뉴턴은 머리카락 한 올이 느끼는 중력보다 천만 배 작은 힘이다. 세균의 추진력은 10 피코뉴턴 수준이다. 자신의 운동 추진력으로 특정 액상에 가두는 힘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청국장 발효균인 고초균을 덱스트란과 폴리에틸렌글리콜 수용액으로 이뤄진 수계 2상 시스템에 주입하는 실험 모델에서 이뤄졌다. 물에 덱스트란과 폴리에틸렌글리콜을 녹이면 서로 섞이지 못해 분리된 두 액체상이 생긴다. 고초균 표면은 당 성분으로 싸여 있어 원래 덱스트란 수용액상에 끌리는 성질이 있지만 표면처리를 하게 되면 선호도가 바뀌어 폴리에틸렌글리콜 상에 끌리게도 할 수 있다.
실험에서 움직이지 않는 고초균은 선호하는 한쪽 상에 모인 반면, 살아있는 고초균은 양쪽 모두에 고루 분포했다. 고초균이 골고루 분포하는 현상은 기존에 입자의 분포를 지배하는 ‘열적 요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물리, 화학공학, 미생물학을 아우르는 협업 연구를 통해 비평형 상태에서 콜로이드 입자의 분포 법칙에 작용하는 힘을 처음으로 정량화했다”며 “이 모델시스템은 비평형 통계역학과 비평형 상태에서 계면-콜로이드 입자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평형 상태는 외부에서 에너지가 계속 공급되거나 소모되는 상태로, 이번 모델은 세균이 에너지를 써 추진력을 만들기 때문에 비평형 상태에 해당한다.
정준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균이 체내 특정 조직에 자리 잡는 원리를 설명할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단백질 정제, 바이오칩 설계, 미세 로봇 제어 개발에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물리학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9월 16일 온라인 공개됐다. 천지용 UNIST 물리학 박사(現 조지아텍 박사후 연구원)와 최규환 스탠포드 대학교 박사후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수행은 한국연구재단, 미국 국립보건원, 미국 국립과학재단, 미국 공군연구소, 미국 팩커드 펠로우쉽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헬로티 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