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배우는 로봇, 산업은 갈라진다”...휴머노이드 앞의 세 문턱 [헬로즈업]

2025.09.30 20:41:26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헬로즈업 세줄 요약]

 

· 오준호 삼성전자 미래로봇추진단장, CoRL 2025 기조연설서 “휴머노이드 황금기” 선언

· 신뢰성·내구성·가용성, 산업 상용화 3대 버틀넥 우려...표준화·데이터 학습 병행 강조해

 

· 초기 B2B 도메인 검증 후 가정·서비스 분야로 확산 전망


 

韓 휴머노이드 20년...‘휴머노이드 황금기’ 선언했다

 

이달 30일 서울 삼성동 전시장 코엑스에서 열린 ‘제9회 로봇학습국제학술대회(Conference on Robot Learning 2025, CoRL 2025)’ 무대에서 오준호 삼성전자 미래로봇추진단장이 기조연설 연사자로 나섰다. 그는 한국 휴머노이드 연구의 궤적을 되짚으며 ‘휴머노이드의 황금기’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핵심은 ‘데이터 기반 진화’와 ‘산업별 분화’...이것이 피지컬 AI의 시대상일까

 

오 단장은 먼저 로봇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을 짚었다. 전통적인 모델 기반 제어는 정밀성과 안정성에서 강점을 갖지만 외란에 취약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비전·언어·행동(Vision-Language-Action, VLA) 모델 등 인공지능(AI) 기반 접근은 비정형 환경 대응과 고기동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점찍었다.

 

그는 “로봇은 이제 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몸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물리적 세계를 학습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차세대 산업 혁신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이 하나의 단일 형태로 수렴하지 않고, 산업별 도메인에 따라 최적 폼팩터가 분화·병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단장은 본 세션에서 연구 트렌드를 네 갈래로 소개했다. ▲강화학습 기반 높은 기동성을 목표로 한 ‘아크로바틱 휴머노이드(Acrobatic Humanoid)’ ▲가정·서비스 환경에 맞춘 ‘인간 친화적 휴머노이드(Human-friendly Humanoid)’ ▲제조·물류 현장에서 중량물을 다루는 ‘고중량 휴머노이드(Heavy-load Humanoid)’ ▲양팔형(Dual-arm) 기능에 최적화된 ‘바퀴 기반 휴머노이드(Wheel-based Humanoid)’ 등을 주목했다.

 

단장은 “앞으로는 특정 형태가 표준으로 굳어지지 않고, 도메인별 맞춤형 진화가 가속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세 가지 문턱과 산업 과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 데모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세 가지 문턱이 있다. 오 단장은 이를 신뢰성(reliability)·내구성(durability)·가용성(availability)으로 꼽았다.

 

그는 “실험실에서 10분 성공하는 것과 공장 라인에서 1만 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센서 오류, 연산 지연, 환경 잡음에도 균형과 동작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신뢰성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내구성은 구동기(Actuator)·감속기(Reducer) 등 로봇 핵심 부품이 고강도 반복 작업에서 성능을 유지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가용성은 작동 가능 여부를 뜻하는 게 아니다. 유지보수 주기, 부품 교체 비용까지 포함하는 산업적 활용성을 뜻한다.

 

데이터와 표준화의 난제도 짚었다. 단장은 “거대언어모델(LLM)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것과 달리, Physical AI는 실제 로봇이 넘어지고 부딪히는 물리 데이터를 통해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 기반 데이터 증강, 도메인 랜덤화(Domain Randomization), 시뮬레이션·현실 전이(Simulation to Reality, Sim2Real) 등 기법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또 데이터 자체 수집과 생성 데이터를 결합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예쁜 데모 영상(Pretty Demo)’만으로는 산업적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기능 표준, 성능 벤치마크, 안전·보안 검증 절차가 국제적 합의 수준에서 마련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상용화 경로에 대해서는 단계적 확산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선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서 공장·물류센터 같은 프로 도메인에 투입해 신뢰성과 투자수익률(ROI)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후 점차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영역인 가정·서비스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초기에는 중량물 이송, 위험 환경 작업 등 로봇이 효율성과 안전을 입증할 수 있는 분야가 우선 적용된다. 이어 간호·돌봄·가사 보조 같은 생활 밀착형 서비스로 점차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집중과 선택으로 특정 분야에서 가치를 입증해야 시장이 열린다”고 강조하면서 상용화 초기에는 병원·공장 등 특수 도메인에서부터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전자·가전·반도체·물류 등 다각적 사업군을 보유한 만큼, 이러한 단계적 상용화 과정에서 테스트베드와 데이터 확보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분석도 곁들였다.

 

‘실험실에서 산업으로’ 휴머노이드의 다음 무대

 

한국 휴머노이드의 흐름은 개인 연구자의 궤적으로 끝나지 않고 산업 생태계로 이어지고 있다. 오준호 단장의 행보는 그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는 지난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부임해 KHR-1, KHR-2, 휴보(HUBO)로 이어지는 한국 최초의 휴머노이드 계보를 구축했다.

 

2015년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관 국제 로봇 대회 ‘DARPA 로보틱스 챌린지(DRC)’에서 HUBO가 전 과업을 완주하며, 세계 무대에 한국 로봇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같은 해 창업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연구 성과를 산업으로 확장하는 첫 사례가 됐다.

 

현재 오 단장은 2023년 하반기 삼성전자에 합류해 ‘미래로봇추진단(Future Robotics Track)’ 리더로 활동 중이다. 이는 삼성의 장기 로봇 전략을 총괄하는 연구조직에 영입된 것이다. 삼성은 이미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해, 산업용 로봇 영역을 챙기고 있다.

 

 

동시에 오 단장을 직접 영입해 휴머노이드 연구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산업용 로봇을 통한 안정적 매출 기반과 휴머노이드 연구개발(R&D)을 통한 미래 투자 축을 한데 챙기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그는 삼성의 강점을 ‘공급자이자 사용자(Both as a field provider and also as a user)’라는 수직적 에코시스템에서 찾았다고 했다. 전자·가전·반도체·물류·건설·바이오 등 다각 사업군은 로봇 연구에 필요한 핵심 부품 기술, 대규모 실증 무대, 시장성 검증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오 단장은 “도전의 무대는 더 넓어졌다”며 연구와 산업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자임했다. 이어 지금의 흐름에 대해, 한국 휴머노이드 연구가 산업 현장으로 확장될 수 있는 분기점임을 시사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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