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은 더 이상 공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인류의 다음 혁신을 이끌 핵심 기술로 자리 잡으며, 글로벌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2023년 약 3조3000억 원 규모였던 휴머노이드 시장은 2033년에는 157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미국과 중국은 각각 민간 혁신과 국가 전략 투자를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테슬라·피겨AI·보스턴다이내믹스 같은 선두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도 지난해 휴머노이드를 국가 첨단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K-휴머노이드 연합을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지능·핸드·구동 모듈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만 한국형 휴머노이드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로봇 업계 일각에서는 한때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 개발 투자를 망설였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를 반영해 이제는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절실한 시기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뒤바꿀 다음 혁신은 바로 인간을 닮은 로봇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통찰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러한 통찰의 핵심에 있다. 곧 ‘체화 AI(Embodied AI)’의 결정체로 정의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미 기술 하이퍼사이클(Hype Cycle)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진단되고 있다.
글로벌 연구·자문 업체 가트너가 선정한 2025년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하나인 ‘다기능 로봇(Polyfunctional Robot)’이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과 괘를 함께한다는 설명이다. 이 로봇 폼팩터는 사람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을 갖추고, 인간의 작업 환경에서 자유롭게 작동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40%대 성장률 폭발...글로벌 생태계의 뜨거운 휴머노이드 전쟁
휴머노이드 시장은 이미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23년 24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규모였던 시장은 불과 10년 뒤인 2033년에는 1140억 달러(약 157조8000억 원)로 무려 50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CAGR)은 40~50%에 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장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그리고 다양한 환경을 누비는 족형(Bipedal) 로봇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장을 이끄는 기업들은 미래 패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로봇 개발 업체 ‘피겨 AI(Figure AI)’는 AI 기술 업체 ‘오픈AI(Open AI)’와 협력하고 있다. 이 협력을 통해 피겨 AI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불과 3개월 만에 작업 속도 4배, 정확도 7배가 향상됐다.
미국 자동차 업체 ‘테슬라(Tesla)’는 2만 달러(약 2700만 원)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목표로 자사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의 대량 생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기존 수익 모델인 자동차보다 로봇에서 더 큰 가치를 찾고 있다.
다른 한편,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전기 구동 방식의 휴머노이드 ‘애틀라스(Atlas)’를 연중 현대자동차 생산 공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물류 로봇 업체 ‘어질리티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디짓(Digit)’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활약하며 실용성을 입증했고, 중국 로봇 업체 유니트리(Unitree)는 1만6000달러(약 220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휴머노이드 ‘H1’을 보유했다.
韓·美·中, ‘로봇 패권’ 향한 드라이브 본격화
이처럼 글로벌 로봇 시장은 현재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앞선 민간 기업의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보다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체화 AI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두 나서 막대한 자금과 정책을 쏟아붓고 있다. 오는 2029년까지 휴머노이드 시장을 15조 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국가 첨단 전략 기술에 포함시켰다. 이는 로봇 산업 전반에 걸친 지원을 넘어 휴머노이드 분야에 대한 집중 육성을 시작하겠다는 신호탄이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오는 2030년까지 한국형 휴머노이드 상용화를 목표로, 산학연 협의체인 ‘K-휴머노이드 연합’이 출범했다. 이 연합은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국내 주요 대학들과 손잡고 로봇의 ‘뇌’에 해당하는 공용 AI 모델과 핵심 부품 개발을 추진한다.
또한 지난해 7월,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AI 자율제조 얼라이언스’가 조직됐다. 153개 기업이 참여하는 이 협의체는 제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와 같은 AI 기반 로봇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8년까지 200개의 선도 프로젝트에 민관 합동으로 2.5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2030년까지 제조 현장 AI 도입률을 40%로 끌어올려 생산성을 20% 이상 끌어올린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5월 기존 ‘AI 자율제조’ 사업을 ‘AI 팩토리’로 확대 개편하고, 협의체도 재편해 제조업 전반과 물류·유통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휴머노이드 상용화의 핵심 열쇠, 3대 기술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가 스마트폰 이상의 파괴적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분석한다. 특히 지능, 핸드, 구동 모듈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 허들은 지능 기술 고도화다. 데이터 표준화와 함께 온디바이스 AI(On-device)처럼 로봇에 직접 탑재되는 경량 AI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 또한 로봇이 스스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AI(Controllable AI)’와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 모델에 대한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이어서 로봇 핸드(Robot Hand) 기술이다. 인간의 손처럼 섬세한 촉각 지능을 갖춘 로봇 핸드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의 로봇 핸드는 크고 무겁거나 기능이 제한적이다. 핸드에 촉각 센서를 탑재해 물건을 파악하고 힘을 조절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손처럼 작고 가벼우면서도 다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동 모듈 기술이다. 로봇 전체 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구동 모듈은 테슬라처럼 부품을 공용화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 또한 사람의 근육을 모방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새로운 구동 모듈 개발 역시 시급하다. 이러한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휴머노이드가 산업 현장을 넘어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강조된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