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를 두고 국가·기업 간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AI 반도체는 IoT, 자율주행,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 첨단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손꼽힌다. 미래 산업 경쟁력은 AI 반도체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술 개발을 수반하는 제조 인프라, 인재 양성 등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직 시작 단계다.
왜 AI 반도체인가?
AI 반도체는 AI의 학습, 추론 등의 서비스를 처리하기 위해 대량 연산을 수행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AI를 위한 반도체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정보 저장을 위한 메모리 반도체와 정보 처리를 위한 시스템 반도체로 분류되는데, AI 반도체는 후자에 해당한다. AI 반도체는 흔히 인간의 두뇌와 비교된다.
사물에 지능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두뇌의 기능을 하는 요소가 필요하다. AI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해 결과를 도출해내는 기능을 구현함으로써 사물에 지능을 부여한다. 마치 사람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영리하게 대응한다. 이것이 AI 반도체가 지능형 반도체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다만 시스템 반도체 범주에서 볼 때 연산하는 반도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기술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산기와 컴퓨터, 스마트폰에도 내장돼 있다. 여기에서 일반 시스템 반도체와 AI 반도체의 차이가 존재한다.
범용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기존 반도체가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처리한다면, AI 반도체는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함으로써 AI 서비스를 구현한다. 성능이 낮은 일반 시스템 반도체 수백 개를 한 개의 AI 반도체가 대체한다. 제품을 개발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효율 상승과 비용 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AI 반도체의 특징이자 갖춰야 할 조건으로 고성능과 저전력을 꼽는다.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추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 사회는 페타바이트와 엑사바이트를 넘어 제타바이트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ID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오는 2025년에는 전 세계 데이터 총량이 175ZB(제타바이트)로 예측됐다. 지난 2016년 인텔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백 개의 센서가 내장된 자율주행차가 하루에 생산하는 데이터량이 4TB에 이른다.
진화 거듭하는 AI 반도체 기술
AI 반도체 기술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한 1세대에서 시작해 필드 프로그래머블 게이트어레이(FPGA) 및 주문형 반도체(ASIC)칩을 활용하는 2세대를 거쳐, 뉴로모픽 칩을 활용하는 3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특허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AI 반도체 특허신청은 최근 3배 이상 폭증했다. 이러한 증가세는 지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AI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1세대부터 3세대까지 AI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이 37%, 중국이 36%로 국제 특허신청을 양분하고, 우리나라가 3위에 기록돼 있다.
세계 최대 시장이자 핵심기술 위주로 특허신청되는 미국에서의 특허동향을 살펴보면, 전 분야에서 미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AI 반도체 1·2세대에서 중국, 일본, 대만과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였으나 3세대 뉴로모픽에서는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AI 반도체 세대별 주요 특허신청인을 살펴보면, 모든 분야에서 인텔, IBM, 삼성전자 등 반도체·컴퓨팅 기술 선도 기업이 상위 그룹을 차지했다. 뉴로모픽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위와 5위에 올랐다.
김지수 특허청 특허심사기획국장은 “AI 반도체는 AI와 시스템 반도체가 융합되는 핵심 분야다. 특히 전 세계 산업 패러다임인 탄소중립과 디지털 뉴딜의 성공과도 연계된 필수 산업”이라고 언급했다.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의 조사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에 1289억 달러(약 153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지난 6월 국내에서는 ‘2022 국제 인공지능 회로 및 시스템 학술대회(AICAS 2022)’가 열리기도 했다.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AICAS 2022는 AI 반도체 기술을 망라하는 학술 행사로 알려져 있다. 전기전자기술자학회(IEEE)는 AICAS 2022가 학회의 학술 대회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행사라고 소개했다.
이 행사에서는 세계적인 반도체 석학과 전문가가 최근 업계에서 AI 반도체 기술 동향을 소개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엔비디아·그래프코어 등 국내외 반도체 기업이 참가해 고유의 기술을 선보였다.
AI 반도체 개발, 정부 협력 이뤄져야
AI 반도체는 높은 기술 잠재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래 산업에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AI 반도체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 후 첫 행보로 AI 반도체 설계 기업인 퓨리오사AI를 방문해 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이종호 장관이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AI 반도체 기업을 찾은 것은 정부의 AI 반도체 개발 의지가 반영됐음을 시사한다.
이종호 장관은 행사 일정에서 간담회를 진행하며,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반도체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메모리 반도체 리더십을 지키고,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과 노하우를 접목하고 인재 양성을 확대한다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도 기대할 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국산 AI 반도체 성공사례 창출방안을 다루며, 대학·스타트업의 칩 제작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를 요청했다. 또한, AI 반도체를 포함한 AI 생태계 전반의 발전을 위해 정부 차원의 AI 반도체 테스트베드 및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정부는 AI 반도체 기술 혁신과 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산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AI 반도체 산업 성장 지원대책을 계획 중이라고 언급했다. 과기정통부는 AI 반도체 분야 산학연 협력을 강화해 기술 개발, 전문 인재 양성, 산업 성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AI 반도체뿐 아니라 AI, 5G, 우주, 양자, 바이오 등 전략기술 분야별로 다양한 산업 및 연구 현장방문을 통해 민간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가겠다고 발표했다.
헬로티 서재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