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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규의 헬로BOT] ‘피지컬 AI 1강’으로 ② | 실증은 늘렸다, 근데 산업은 아직...‘진짜’ 공장으로 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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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ChatGPT)가 인공지능(AI)을 사용자 화면(UI)에서 체감케했다면, 피지컬 AI(Physical AI)는 그 지능을 현실 세계로 구현하는 기술 방법론이다. 기존 AI가 텍스트·이미지를 만드는 이른바 생성형 AI(Generative AI)라면, 피지컬 AI는 카메라·센서로 실제 환경을 읽는다. 물리 법칙과 상황을 파악해 다음 동작을 예측하고, 로봇·설비·모빌리티 등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는 차세대 기술 체계인 것.

 

현시점 글로벌 로봇 분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 피지컬 AI의 대표 격으로 주목받지만, 핵심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조 장비, 물류 시스템, 자동차, 농기계, 무인항공기(드론) 등 실제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시스템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피지컬 AI는 갑자기 나타난 기술 개념이 아니다. 로보틱스(Robotics),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제어공학(Control Engineering), 체화 AI(Embodied AI) 등 다양한 분야가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다.

 

달라진 건 이 기술들이 통합돼 활용된다는 점이다. 거대언어모델(LLM)의 인식·추론 능력에 월드 모델(World Model), 물리 시뮬레이션(Physics Simulation),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 AI 반도체, 에지 컴퓨팅(Edge Computing) 등이 결합된 형태. 이로써 ‘보고 판단해 움직이는 AI’의 시대가 열렸다.

 


로봇 1000대 깔면 산업?...“개념증명(PoC) 다음이 진짜야”


 

앞선 1편에서 지목된 한국 피지컬 AI의 과제는 AI 모델, 반도체, 데이터, 로봇·설비 등으로 이어지는 기술 체계를 우리 스스로 통제·관리하는 접근이었다. 여기에 각종 현장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다시 기술 고도화로 돌려보내는 ‘풀스택(Full-stack) 자립’이 핵심이다. 정부 역시 월드 모델 개발과 데이터 확보 체계를 가동하는 한편, 다양한 현장을 대상으로 한 선도 개념증명(PoC)에 착수하며 기술을 실제 공간으로 끌어오겠다는 비전을 공론화했다.

 

이제 PoC에서 검증한 기술을 현장에서도 다시 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공장 한 곳에서 로봇이 작업에 성공하고 프로젝트가 종료됐다고 해서 곧바로 산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생산 라인에 들어가면 작업 대상, 설비 배치, 센서 조건, 공정 순서가 달라진다. 이전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옮길 방법이 없다면 다음 현장에서도 다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데이터 수집·학습 등을 다시 수행하는 순환 과정이다.

 

 

이 차이는 실증 사례가 늘어날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수십 개 현장에 로봇을 배치했더라도 각 프로젝트의 결과가 개별 사업 안에 갇히면 현장은 많아져도 본격적인 출발점은 마련되지 않는다. 반대로 한 현장에서 얻은 ▲작업 데이터 ▲실패 기록 ▲작업자 개입 시점 ▲환경 변화 대응 방식 등이 다음 현장의 학습 재료로 이어진다면 실증 하나가 또 다른 기술 배치의 자산(Asset)이 된다.

 

이러한 방향성은 정부가 추진하는 ‘K-문샷 프로젝트(K-Moonshot Project)’의 피지컬 AI 구상과도 연관된다. K-문샷은 미래 전략 기술을 육성하고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한 임무를 설정한 뒤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하는 과학기술 혁신 프로젝트다.

 

특히 피지컬 AI 분야에서는 제조 현장을 출발점으로, 적용 범위를 일상·지역·공공 영역까지 넓히겠다는 입장이다. 로봇·AI·데이터가 실제 현장에서 함께 발전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정부가 제시한 2035년 로드맵 역시 ‘모든 현장과 삶 곁에 피지컬 AI’를 목표로 한다.

 

이와 관련해, 김욱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피지컬AI 프로그램매니저(PM)는 로봇의 보급량 자체보다 이 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그는 피지컬 AI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으로, 핵심 기술과 함께 로봇·데이터 인프라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데이터도 일종의 인프라라고 규정하며 “로봇 100~1000대 도입이 AI 기술 체계 고도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로봇·데이터가 충분한 규모로 현장에 전파되고, 그 과정에서 AI·로봇이 함께 고도화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현장 투입이 경험·노하우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다음 배치의 밑천으로 축적돼 다른 환경의 로봇을 더 빠르게 움직이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증이 일회성 검증을 넘어 산업의 축적 과정으로 전환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문제는 기술 도입을 목표로 한 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공정 영상과 설비 정보 자체가 생산 노하우라는 점이다. 로봇이 더 많은 연산 자원과 외부 데이터를 필요로 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공장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이 다음 과제는 현장 지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연산과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공장 노하우는 못 내보내는데 로봇은 연결돼야 한다


 

하지만 이 구조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려면 장벽에 부딪힌다. 피지컬 AI가 다른 현장에서도 이전 경험을 활용하려면 데이터와 연산 자원이 오갈 통로가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제조 업체가 축적한 공정 영상, 설비 상태, 작업 조건 등은 외부에 쉽게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생산 방식 자체를 드러낼 수 있는 기업의 노하우이기 때문이다.

 

모든 연산을 로봇 내부에서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 기기 자체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가 주목받지만 한계가 있다. 모델이 고성능화될수록 연산 과부하, 발열, 전력 소비 등 로봇에 요구되는 요소가 늘어나는 탓이다. 여기에 탑재된 센서만으로는 로봇 사각지대의 환경 변화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하기는 어렵다.

 

이때 KT는 이런 물리적 제약을 근거로 피지컬 AI 구현 범위를 로봇 자체에서 현장 인근의 연산 자원과 통신망까지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종식 KT 네트워크부문 미래네트워크랩 전무가 주목하는 부분은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과 연결성 사이의 충돌이다. 제조 현장에서는 데이터가 외부로 이동하는 순간 생산 노하우가 함께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게 그의 언급이다. 반면 추론·학습에 필요한 컴퓨팅 성능을 개별 로봇에 집어넣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 전무는 이에 대한 근거로 “로봇이라는 기기의 본질은 물리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지, AI 연산을 처리하는 게 아니다”라며 외부 연산 자원과의 유기적 연결을 강조했다. 연이어 네트워크상에서 공정 데이터를 다룰 때 독립된 컴퓨팅 공간과 철저한 보안 환경이 동시에 담보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가 지목한 연결의 성격도 기존 통신 방법과 달라진다.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이나 웹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평균 전송 속도를 높이는 것이 주요 지표였다. 피지컬 AI는 카메라·센서가 수집한 고해상도 데이터를 지속 올리고, 외부에서 처리된 제어 명령을 다시 받아 로봇을 움직인다. 데이터가 한 번 늦게 도착해도 버퍼링으로 넘길 수 있는 영상 서비스와 달리, 로봇 제어에서는 도착 시점 자체가 동작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관건은 패킷 전송의 불확실성, 즉 ‘지연시간 변동(Jitter)’을 잡는 일이다. 수신 주기가 불규칙할수록 센서·제어 간 동기화가 깨지고 로봇 제어 주기도 불안정해진다. KT는 이 오차가 공정 품질 및 생산성 저하를 유발한다고 우려한다. 기존 대용량 전송 중심 통신에서 벗어나 데이터 도착 시점을 보장하는 ‘확정적 전송(Deterministic Transmission)’ 기술이 피지컬 AI의 필수라는 것이다.

 

이 전무 역시 통신망의 역할을 속도 중심으로만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정 순간 5밀리초(ms)까지 지연을 줄이는 것보다, 20ms라면 매번 그 시간을 일정하게 보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피지컬 AI에는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기존 ‘빠른 통신’에서 ‘안정적인 통신’으로 통신 인프라의 설계 목표가 바뀌는 대목이다.

 

KT가 제시한 해법은 연산 자원을 로봇과 대형 데이터센터로 단순 이분화하지 않는 방식이다. 현장과 인접한 통신 거점에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컴퓨팅 자원을 두는 'AI 에지(AI Edge)'가 실시간 추론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대규모 연산이 필요할 때만 데이터센터를 호출하는 방안이다.

 

기존 기지국과 통신 거점 자원을 AI 연산에 다각도로 활용해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전략도 포함됐다. KT는 이를 전국 단위 AI 전용망인 'AI 하이웨이(AI Highway)'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공론화했다.

 

이 비전은 조선소에서 실제 검증 단계에 들어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은 지난달 총사업비 약 172억 원 규모의 ‘고성능 AI(Hyper AI) 네트워크 기반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자립형 5세대 이동통신(5G Standalone, 5G SA)과 AI 무선접속망(AI Radio Access Network, AI-RAN)을 산업 현장에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이로써 업로드 속도뿐 아니라 지연시간, 지연 변동 폭, 자율 운용성 등을 함께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KT·SK텔레콤이 각각 컨소시엄을 맡았다.

 

 

KT 컨소시엄이 택한 현장은 HD현대삼호 조선소다. 사족 보행 용접 로봇과 현장 인근 에지 컴퓨팅 자원을 연결해, 카메라 영상과 제어 명령을 주고받는 시험망이 제시됐다. 단말에서 코어망까지 16ms, 지연 변동성 1ms 수준을 목표로 한 검증 과정이다.

 

같은 사업을 수행하는 SK텔레콤 컨소시엄은 다른 제조 환경에서 가능성을 확인한다. SK인천석유화학에서는 사족 보행 순찰 로봇과 이동형 CCTV가 고화질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고, AI-RAN이 이를 분석해 위험 상황을 감지하는 산업 안전 관제를 거치고 있다.

 

특히 물품 무인 자율 이송은 라이다(LiDAR)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모아,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같은 가상 환경을 구성한 뒤 차량을 원격 제어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1차년도 경기 성남시 판교동 실증을 거쳐, 2차년도에는 KG모빌리티 평택 공장 물류 현장까지 적용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여기에는 로봇의 복잡한 AI 연산 일부를 기지국으로 분산해 배터리 부담을 낮추는 휴머노이드 로봇 저전력 모드도 실증 대상에 포함됐다.

 

 

다른 한편, NIA는 이번 사업을 통해 앞선 양사의 네트워크 성능을 비교·검증한다. 각 컨소시엄은 서로 다른 제조 현장에서 용접·도장·순찰 등 고위험·고난도 작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크 체계 전반의 안정성과 자율 제어 역량을 점검하게 된다.

 

실시간 인지·판단·제어와 다중 로봇 협업 성능을 우선 확인한 뒤, 오는 2027년 이후에는 휴머노이드로 실증 범위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온디바이스 AI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한계를 통신망과 외부 연산 자원이 어디까지 보완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실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통신 통로를 완성했으면, 다음은 ‘연결된 데이터’를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화된 언어’로 변환하는 작업이다.

 


A공장의 실패를 배우는 B로봇, ‘경험’에도 공통언어가 필요하다


 

이제 통신망이 데이터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됐다. 다음은 그 경험을 서로 다른 로봇이 같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다. 같은 ‘부품 집기’ 작업에서도 한 로봇은 관절 각도와 힘·토크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다른 로봇은 카메라 영상과 엔드이펙터(End-effector) 위치를 중심으로 저장한다. 여기에 좌표계, 센서 주기, 작업 시작·종료 등을 구분하는 기준까지 제각각이면, 서로 다른 현장에서 축적한 기록을 하나의 학습 데이터로 통합하는 과정부터 장벽에 막힌다.

 

해외에서는 이미 서로 다른 로봇의 경험을 합치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오픈 X-임바디먼트(Open X-Embodiment)’는 33개 연구실이 22종 로봇에서 수집한 100만 회 이상의 작업 에피소드를 통합한 프로젝트다. 쉽게 말해, 다종 로봇 행동 데이터 모음이다.

 

이를 활용한 로봇 제어 AI 모델 ‘RT-1-X’는 여러 연구기관의 로봇 평가에서 기존 개별 모델보다 평균 성공률이 50% 높았다. 특정 로봇·기계가 직접 겪지 않은 경험까지 다른 로봇의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 구글 딥마인드의 ‘제미나이로보틱스(Gemini Robotics)’ 로봇이 서로 다른 물체와 배치 조건에서도 집기·이동·배치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다. 시각·언어 이해를 실제 조작 행동으로 연결하고, 다양한 환경과 작업으로 확장하는 피지컬 AI의 범용성을 검증한다. (출처 : 구글 딥마인드 /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데이터 형식도 바뀌고 있다. 구글리서치의 강화학습 데이터셋 규격 ‘RLDS(Reinforcement Learning Datasets)’는 로봇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에피소드와 단계 단위로 기록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학습 체계에서도 데이터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AI 모델·데이터 공유 플랫폼 허깅페이스(Hugging Face)의 로봇 학습 프로젝트 ‘르로봇(LeRobot)’이 공개한 르로봇 데이터셋 3.0(LeRobotDataset v3.0)도 같은 문제를 겨냥한다.

 

관절 각도나 모터 동작값 같은 로봇의 움직임 정보와 카메라 영상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저장한다. 이를 토대로 수행 작업, 사용한 로봇 종류, 초당 프레임 수(FPS), 작업 시작·종료 시점 등 정보를 하나의 공통 구조로 엮는다. 서로 다른 장비에서 수집된 데이터라도 ‘어떤 로봇이 어떤 작업을 언제, 어떤 상태와 행동으로 수행했는지’를 같은 기준으로 찾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3.0 버전부터는 여러 작업 에피소드를 하나의 파일로 묶고, 대규모 데이터셋을 전부 내려받지 않고도 스트리밍 방식으로 바로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확장했다.

 

손병희 한국피지컬AI협회 표준협의회 의장도 행동 데이터에 대한 표준화 과정을 동일한 기술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는 “행동 데이터 표준은 서로 다른 로봇의 경험을 잇는 공통 언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파일 형식을 맞추는 게 아니라 로봇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디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까지 같은 문법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실제로 이 기관이 제안한 구성은 ▲작업(Task) ▲동작(Action) ▲대상(Object) ▲공간(Space) ▲시간(Time) ▲사건(Event) 등 여섯 요소다. 작업 의도, 실제 움직임, 대상, 좌표, 시간 정보에 더해 성공·실패와 사람의 개입 여부까지 함께 기록하는 방안이다.

 

특히 시간 정보는 실패 경험을 데이터로 남긴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손 의장이 말했다. 성공한 동작만 쌓아서는 로봇이 왜 틀렸는지, 사람이 어느 순간 개입했는지, 이후 어떤 방식으로 복구했는지를 학습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가 “이벤트 항목이 빠질 경우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AI’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다만 이렇게 포맷을 통일했다고 모든 데이터가 곧바로 학습에 쓰이기는 어렵다. 시간 동기화가 틀리거나 좌표 정확도가 낮고, 실패 사례가 빠져 있다면 활용 가치는 떨어진다. 표준협의회는 이에 따라 행동 데이터 체계를 표준·품질·인증으로 구분했다.

 

 

이 과정에는 국제 표준도 참고 기준으로 활용되면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제표준화기구(ISO)·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공동 운영하는 ‘ISO/IEC JTC 1’ 산하 ‘인공지능 분과위원회(SC 42)’는 AI·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전용 데이터 품질을 측정·평가하기 위한 국제 표준 ‘ISO/IEC 5259-2:2024’이 그 예다.

 

여기에 AI 데이터 생애주기 국제표준 ‘ISO/IEC 8183:2023’은 데이터 취득·생성부터 개발·배치·유지관리·폐기까지 AI 시스템의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 처리 단계를 정의한다. 표준협의회는 이런 국제 기준과 정합성을 맞추면서 정확성·완전성 같은 품질 요소뿐 아니라, 개인정보와 산업 기밀 처리까지 검증하는 국내 체계를 만들자는 입장을 내놨다.

 

국내에서는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진행 중인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PoC가 이런 논의를 현장에서 실현할 후보로 거론된다. 국내 AI 플랫폼 업체 마음에이아이는 사족 보행 로봇 ‘해치-02(HAECHI-02)’를 투입해 공공 안전 공간을 순찰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영상·이동 궤적·회피·위험 탐지 등 다양한 행동 기록을 축적하고 있다. 협의회는 이렇게 확보한 실증 데이터를 향후 분야별 참조모델과 국가표준(KS), 국제표준 논의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중이다.

 

김형철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원장은 해당 논의 범위를 산업·공공 데이터 전반으로 넓혔다. 피지컬 AI가 제조부터 공공·행정 영역까지 들어갈수록, 데이터를 모으는 단계에서부터 표준·안전체계·관리체계(Gevernance)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인사이트다.

 

그는 산업 분야 데이터 역시 이러한 체계 아래 수집·축적돼야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꺼내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표준·안전 체계가 함께 관리되는 상태에서 데이터를 모아야 1·2년 후에도 후회하지 않고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며 “당장의 실증이나 단일 사업에만 쓰이는 데이터가 아니라, 이후 새로운 피지컬 AI 개발과 적용에도 이어질 수 있는 형태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마지막 현안은 이 규칙을 실제 제조 라인에 구현할 사람, 즉 인재다. AI 모델, 로봇 제어, 센서, 통신, 공정을 하나의 현장 시스템으로 녹이는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AI 따로, 로봇 따로 알아선 안 된다...공장에 필요한 건 ‘현장 통합형’ 인재


 

피지컬 AI가 요구하는 인재는 기존 AI·로봇 교육에서 더 높은 차원을 요구한다. 앞으로의 제조 현장은 AI 모델과 로봇 제어뿐 아니라 센서·통신·공정 조건까지 통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이 멈췄을 때 원인이 뭔지 구분하고 다시 연결하는 역량까지 필요하다.

 

박태준 한양대학교 에리카(ERICA) 지능형로봇사업단장은 이에 필요한 인재상을 ‘현장 통합형(Field-Integrated) 인재’로 정의했다. AI·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실제 산업 문제와 결합하고, 현장에서 곧바로 적용·개선할 수 있는 실용 역량을 갖춘 인재다.

 

실제로 한양대학교 에리카가 제시한 방식 중 하나는 산업 연계 문제 기반 학습 ‘IC-PBL+(Industry-Coupled Problem-Based Learning+)’다. 산·학에서 산업 현장의 실제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이 협업해 해법을 만드는 방식이다. 현재 두산로보틱스 임직원 다섯 명이 현장 통합형 멘토로 참여하고 있고, 향후 일부 과목을 제외한 개설 교과목의 60% 이상에 해당 방식을 적용하는 방안이 공론화된 바 있다.

 

 

교육은 자율 이동, 정밀 제어, 자율 행동 등 실제 장비를 활용하는 실증 교과목까지 이어진다. 로봇 제조사, 공정 장비 업체, AI 연구소, 산·학 프로젝트, 인턴십 등을 연계해, 배운 기술을 테스트베드에서 검증하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까지 교육 안에 포함하는 구조다.

 

석사 과정에서는 기업이 제시한 현장 문제를 두 학기에 걸쳐 해결하는 ‘G-캡스톤디자인(G-Capstone Design)’도 운영한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결과물을 석사 학위 청구 논문 대신 인정하고, 3·4학기에는 IC-PBL+ 과목과 연계한 160시간 이상 인턴십도 수행한다. 결과물은 기술 이전과 취업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단순한 채용처가 아니라는 게 박 단장의 언급이다. 산업체연계자문위원회(IAB)가 현장 문제와 수요 기술을 발굴하면 이를 교과목과 산학 프로젝트로 가져오고, 수업에서 만든 초기 해법은 연구와 테스트베드 실증을 거쳐 다시 기업으로 이전한다.

 

 

단장은 “결국 표준화된 데이터와 로봇 경험이 있어도 이를 실제 공정에 구현하고 수정할 사람이 없다면 다른 현장으로의 이전은 시스템 통합 단계에서 머문다”고 지적했다.

 


기술보다 느린 법...실증의 속도를 제도가 따라갈 수 있나


 

실제 사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피지컬 AI가 기존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속도와 이를 허용하는 법·제도의 속도가 맞지 않을 수 있어서다.

 

이 지점에서 국회가 제시한 방향은 규제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이 기술 개발 이후의 사업 경로를 예측할 수 있도록 제도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 기술을 법률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규제 방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는데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하지 말라’고 막는 방식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한도를 정한 뒤 ‘이 범위 안에서는 마음껏 해보라’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지컬 AI와 AI데이터센터(AIDC) 관련 법률을 다루는 국회 논의도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정부·산업계와 함께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을 받아 법률 처리로 연결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글로벌 생태계가 우리에 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정책 메시지 일관성’인 것이죠.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향이 달라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AI와 피지컬 AI에 계속 집중한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합니다.

 

규제 절차도 마찬가지인데요. 피지컬 AI 특별법에는 관련 규제 샌드박스와 인허가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일괄 처리하고, 일정 기간 동안 판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통과된 것으로 보는 ‘타임아웃’ 방식이 담겼습니다. 기술을 개발하고도 행정 절차 때문에 현장 적용이 늦어지는 시간을 줄이자는 취지입니다.

 

◆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국은 피지컬 AI와 로봇 분야에 수많은 산·학이 참여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규모로 따라가는 데만 집중해서는 차이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제조 현장에 많은 로봇이 투입돼 있고,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 기반도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이러한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도체·피지컬 AI·AIDC를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지정해 대규모 투자와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패키징 역량을 확대하는 동시에 제조 현장의 AI·로봇 전환을 가속하겠다는 전략인데요.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AIDC까지 함께 구축하는 구상입니다.

 

이미 로봇 활용 경험이 축적된 제조 현장을 실증 무대로 삼고, 기존 국내 기술 역량을 AI·로봇 개발과 결합해 한국이 강한 산업에서 먼저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후 검증된 기술을 다른 산업으로 넓혀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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