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로봇에게 맡긴 사람들. 이들은 돌려받은 시간을 들고 개장 전의 쇼핑몰 매장 사이를 달렸다. 평소 쇼핑객이 오가던 통로에는 러닝복을 맞춰 입은 500여 명의 참가자가 빼곡히 들어찼다. 부모는 아이의 손을 잡았고, 러너는 손목에 찬 기록계 버튼을 눌렀다.
출발선에 섰을 때 기자가 거둔 첫 인식은 다름 아닌 '의구심'이었다. 평소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기자 입장에서 보면, 로봇 청소기 업체 주관 러닝 행사는 브랜드 홍보라는 목적에 마라톤 대회의 형식을 적당히 덧댄 이벤트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차 관리, 참가 등록, 출발 통제, 코스 운영, 완주 기록 측정, 메달 각인에 이르기까지 일반 러닝 대회의 기본 구조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쇼핑몰 바닥 역시 예상과 달리 발을 헛밀어내지 않고 잘 감겼다. 여기에 냉방이 가동된 실내 코스 덕분에 한여름 특유의 찌는 열기와 습도도 빠져 있었다. 현장에 참가한 기자는 가족 단위 참가자를 피해 수차례 주행선을 바꾸고, 실내 위성항법시스템(GPS)의 오차까지 감수한 끝에 기록계가 멈춰 선 숫자는 19분21초. 5km 코스 기준 개인 최고 기록이다.
로보락(Roborock)은 지난 22일 경기 고양시 소재 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에서 실내 러닝 행사 ‘로보락 몰라톤(Mall+Marathon) at 스타필드 고양’을 열었다. 개인·가족으로 세분화된 부문에 도합 500여 명이 참가했다.
로봇 청소기가 줄여준 가사노동의 시간을 가족·친구 등과 함께 보내는 건강한 움직임으로 전환해 보자는 취지의 실험이었다.
한여름 쇼핑몰 5km...찌는 폭염 속 빈틈 노린 ‘이색 도전’
집 안을 청소하는 제품과 쇼핑몰을 달리는 5km. 좀처럼 맞물리지 않는 두 장면을 연결한 고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러닝으로 전환한 배경에는 비교적 한산한 ‘한여름의 공백’이 있었다.
보통 폭염과 높은 습도가 이어지는 여름에는 야외 러닝 대회가 급감한다. 로보락은 냉방이 가동되는 쇼핑몰의 영업 전 공간을 5km 코스로 바꿨다. 쇼핑객이 오가던 긴 통로와 매장 앞 공간이 러너의 주로가 됐다.
이에 대한 반응은 곧바로 나왔다. 사측이 사전에 진행한 참가 신청은 하루 만에 마감됐다. 로보락 측에 따르면, 러닝 플랫폼에 모집 공고를 올린 직후 정원의 절반 이상이 찼다. 아울러 로보락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카카오톡 채널을 통한 신청이 뒤를 이었다.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문의도 이어졌다.
장유정 로보락코리아 매니저는 “한여름에는 외부에서 달리기 어렵고 이 시기에 열리는 대회도 많지 않다”며 “영업 전 쇼핑몰을 가족과 함께 달리는 경험 자체가 새로운 추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스타필드와 함께 행사를 기획했다”고 기획 배경을 언급했다.


▲ (촬영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로보락코리아 /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사실 로보락코리아·스타필드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로보락은 앞서 겨울철 스타필드에서 아이스링크 행사를 운영한 바 있다. 가족 방문객이 많은 공간을 계절형 체험 무대로 활용한 전례다. 이번에는 겨울의 스케이트를 여름의 실내 러닝으로 바꾸며 협업 범위를 넓혔다.
이 과정에서 참가 부문은 개인·패밀리로 나눴다. 약 500명의 참가자 가운데 가족 부문은 약 300명, 개인 부문은 약 200명을 차지했다. 가족 고객에만 기대지 않은 구성이다. 장 매니저는 플래그십부터 1인 가구용 제품까지 넓어진 로보락의 제품군을 반영한 참가자 구성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면서 1인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늘리고 있다”며 “개인 참가자도 행사를 통해 로보락의 다양한 제품군을 접하고, 대회 현장에 배치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기록을 향한 질주 vs 추억을 쌓는 보폭
출발 신호가 울리자 참가자 500여 명이 동시에 매장 사이로 쏟아졌다. 기자도 배번호 1019를 달고 대열에 섞였다.
기자처럼 기록 단축을 노린 러너가 앞쪽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 부모와 자녀는 보폭을 맞췄다. 가족끼리 나란히 달리거나 걷는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운영진은 이같이 빠른 참가자와 여유 있게 달리는 참가자의 주행 구역을 구분했다. 코스 곳곳에는 안전요원도 배치했다. 참가 정원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도 500명 선을 유지한 이유 역시 안전이었다.
장유정 매니저는 “더 많은 인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참가자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우선했다”며 “속도를 내고 싶은 러너와 가족 단위로 즐기는 참가자의 구역을 나누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매장 사이의 긴 통로에서는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다만 출발 이후 참가자 간격이 벌어지면서 주행 구역의 경계가 흐려졌다. 앞서 달리던 가족 단위 참가자를 만날 때마다 좌우의 빈 공간을 찾아 추월해야 했다. 쇼핑몰 구조를 따라 방향을 바꾸는 구간도 반복됐다. 직선에서 붙인 속도는 추월과 회전이 겹칠 때마다 끊겼다.
개인적으로 실내 대회 특성상 불안정한 GPS 신호가 아쉬웠다. 그렇기에 손목의 스마트워치에 표시되는 거리와 페이스 대신 코스에 설치된 공식 계측 지점을 기준으로 달렸다. 가족 참가자 사이를 비집고 마지막 직선 구간을 통과한 뒤 확인한 기록은 19분21초. 1km당 평균 3분52초다. 공식 순위는 전체 9위, 남자부 8위로 집계됐다.

반면 가족 참가자가 받아들인 코스의 의미는 달랐다. 현장에서 만난 강신석 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비롯해 지인들과 패밀리 부문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평소에도 운동을 즐기지만, 어린 자녀까지 함께하는 러닝 대회를 찾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그는 “아이들도 운동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다른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했다”며 “이번에는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 신청했다”고 밝혔다.
특히 강 씨는 인터뷰 중 “로보락 제품은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다. 구매를 고민하던 중 아이들과 함께 나올 수 있는 대회가 열려 제품 구매에 앞서 러닝 행사에 먼저 참여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몰라톤이 기존 사용자 외 참가자까지 브랜드 경험으로 끌어들인 사례다.
완주하면 참가비를 돌려준다? 돌아오는 참가비의 정체
참가자가 출발 전 결제한 5만 원은 결승선을 넘자 환급 대상이 됐다. 로보락은 완주자에게 참가비 전액을 돌려주는 조건을 걸었다.
일반적으로 마라톤 대회의 참가비는 대회 운영과 기념품 제작 등에 사용된다. 출전자가 실제 행사장에 나오지 않거나 중도 포기해도 돌려받기 어렵다. 이번 몰라톤은 결제 단계에서 돈을 받되 완주를 조건으로 다시 내주는 방식을 택했다. 참가비의 기능을 매출에서 출석과 완주를 담보하는 보증금으로 바꾼 셈이다.
이러한 설계에 대해 장유정 매니저는 “이번 행사는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라며 “정해진 인원만 참가할 수 있는 만큼, 신청한 후 불참하는 이른바 ‘노쇼’를 방지하기 위해 보증금 개념으로 참가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식 계측 결과 참가자의 97.3%가 5km 결승선을 통과했다. 미완주 비율은 2.74%에 그쳤다. 결제 장벽은 가벼운 호기심에 따른 신청을 걸러냈고, 전액 환급 조건은 현장 참석 이후 완주까지의 동력이 된 것이다.
돈을 받았지만 수익으로 남기지 않은 유료 대회. 로보락이 설계한 거래의 대가는 500여 명의 실제 움직임과 완주 기록이다.
대회 끝났는데 계속되는 행사, 완주 뒤 펼쳐진 ‘로보락 생태계’는?
5km 결승선을 통과한 참가자의 다음 목적지는 스타필드 고양 지하 1층 내 로보락 플래그십 스토어다. 러닝으로 시작한 경험을 제품 체험까지 연결하는 두 번째 동선. 사측이 내세운 기획 설계점이다. 이곳에서는 완주 후 사진 촬영, 럭키드로우, 제품 체험, 메달 각인, 아쿠아필드 할인 혜택 등이 차례로 전해졌다.
완주 메달에는 로봇 청소기와 진공 물걸레 청소기의 형상이 함께 들어갔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참가자의 이름과 기록을 메달에 새겼다.

제품 기능을 러닝 동작으로 바꾼 체험도 마련됐다. ‘스텝업 투 100℃(Step-Up to 100℃)’는 참가자가 제자리에서 스테퍼(Stepper)를 밟아 화면 속 온도를 100℃까지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로보락의 고온 물걸레 세척 기능을 달리기와 연결한 과정이다. 여기에 반응 속도 측정과 보안 콘셉트의 문 여닫기 체험도 이어졌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모두 거친 참가자에게는 로보락 제품 이미지를 넣은 키캡이 제공됐다.


▲ 이 기획 부스 안에 배치된 '스텝업 투 100℃' 존(좌)와 로보락 보안 정책 메시지가 숨겨진 콘셉트 존(우).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이 과정에서 스타필드 측도 쇼핑몰 내 부대시설 할인권 등 참가자를 위한 혜택을 더했다. 러닝과 매장 체험 이후에도 쇼핑몰 안에서 시간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구성한 장치다.
운영진은 레이스 종료와 매장 개점 사이에 공백이 생긴다는 점을 고려했다. 장유정 매니저는 “먼저 완주한 참가자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메달 각인, 제품 체험, 아쿠아필드 혜택까지 연결해 가족이 스타필드에서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찍 결승선을 통과한 참가자에게는 플래그십 스토어 개점까지의 대기 구간이 다소 길게 느껴졌다. 출발·도착 지점과 매장을 잇는 안내를 더 촘촘히 하고, 제품 체험의 종류와 깊이를 넓힌다면 레이스에서 형성된 기대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념 촬영, 럭키드로우, 메달 각인 등에 이러한 연결 장치가 더해질 경우, 행사 전체의 흐름도 한층 매끄러워질 전망이다.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에는 로보락 플래그십 모델 'S10 맥스V 울트라(S10 MaxV Ultra)’가 참가자를 맞이했다.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반대로 레이스 운영 측면에서는 로봇 청소기 업체가 만든 첫 러닝 행사라는 예상을 넘어섰다. 사회자는 출발 전 안내사항을 전달하는 사이 참가자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딱딱한 행사 멘트보다 러닝 대회에 맞는 유쾌한 진행을 이었다.
사전에 공개된 코스맵만으로는 실제 회전·반환 동선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주행 중 안내요원이 갈림길마다 방향을 짚어줘 코스를 이탈할 여지를 최소화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쇼핑몰 내부라는 조건에 비해 주로 폭이 넉넉한 부분도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가족 참가자가 밀집한 구간에서도 추월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배번호에 부착된 기록칩은 출발부터 결승선까지의 시간을 안정적으로 집계했고, 주행 직후 공개된 공식 기록도 실제 체감 페이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끝으로 장 매니저는 “아이스링크·몰라톤과 동일한 행사를 다시 연다고 확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사용자가 로보락 제품을 흥미롭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은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