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세상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참여하며,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까지 하는 기계다
(In short, machines that don’t just process the world,
but participate in it, machines that don’t just talk, but also act).”
피터 시몬스(Pieter Simoens) 벨기에 헨트대학교 교수는 나노전자·디지털 기술 연구기관 아이멕(imec)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이는 에이전틱 AI(Agentic AI)와 피지컬 AI(Physical AI)가 불러올 변화를 시사한 메시지다. 인공지능(AI)의 진화 단계가 디지털 환경 내 업무를 직접 수행하고 물리 세계에 개입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가 공정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최적의 운전 조건을 제안하더라도, 설비가 저절로 가동되는 것은 아니다. 결산 오류를 찾아내 보고서를 작성한다고 해서 사내 시스템의 전표가 자동으로 수정되지도 않는다. 업계는 AI의 판단을 현장의 실행으로 이으려면, 설비·로봇·기업 시스템을 연동하는 실행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즉 실질적인 구동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조 현장에서는 센서·카메라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판단한 뒤, 그 결과를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분산제어시스템(DCS) 등 내부 시스템에 전달해야 한다. 설비가 명령을 수행한 결과는 다시 현장 데이터로 수집돼 다음 판단의 근거가 된다. 사무 환경 역시 조직·직무·권한 등을 검증한 후 내부 시스템과 데이터를 제어하고 그 이력을 남기는 절차가 요구된다.
AI 모델이 내놓는 답변의 정교함보다, 그 판단을 실전 동작으로 전환하는 집행 능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판단’과 ‘실행’ 사이 마지막 공백, 공장은 제어, 사무실은 권한
국내 디지털 전환(DX) 기술 기업 포스코DX가 ‘AI 네이티브 컴퍼니(AI Native Company)’ 전환 전략을 통해 메우려는 것도 바로 이 실행의 공백이다. 산업·공장 자동화(FA)와 정보기술(IT) 역량을 함께 축적해 온 이 회사는 AI를 공정·사무 체계 안에서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업무 수행 주체로 삼고, 이를 전제로 기존 프로세스 전반을 재설계하려 한다.
모니터 화면에서 벗어나 실제 하드웨어를 구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는 로봇·설비·장비를 움직이는 물리 기반 실행을, 에이전틱 AI(Agentic AI)는 조직 시스템 안에서 지식 업무를 처리하는 디지털 기반 실행을 맡는다는 설명이다. 사측은 이달 29일 이 같은 전환 전략과 기술 구상을 공개했다.
최태환 포스코DX 경영기획실장은 “AI를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주체 중 하나로 본다”며 “기존 시스템에 AI를 얹는 것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업무 프로세스 전체를 재설계하는 회사가 ‘AI 네이티브 컴퍼니’”라고 정의했다. 개인이 AI를 활용해 조직의 운영 방식과 성과 창출 구조까지 바꾸겠다는 의미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기반은 현장 센서부터 전사 관리 시스템까지 연결된 계단형 구조다. 제조 현장 최전선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디바이스가 ‘레벨 0(L0)’, 설비를 직접 구동하는 제어 기술이 ‘레벨 1(L1)’, 공정 전체를 감시하고 최적화하는 영역이 ‘레벨 2(L2)’다. 그 위로는 생산·품질·물류를 통합 관리하는 제조실행시스템(MES) 중심의 ‘레벨 3(L3)’, 전사적자원관리(ERP)·공급망관리(SCM)를 포괄하는 ‘레벨 4(L4)’가 차례로 배치된다.
이 통합 구조는 일반적인 시스템 계층도가 아니다.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그 판단을 다시 설비 제어로 순환하는 과정에서의 통로다. 동시에 현장 실행 결과를 MES·ERP까지 수직 전달해 공정 운영과 경영 판단에 반영하는 데이터 아키텍처이기도 하다. 포스코DX가 자신을 운영기술(OT)·정보기술(IT)까지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업체로 정의하는 배경이다.
AI가 아무리 정확한 진단을 내놔도 설비·스위치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다면 실행 공백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 내부에서 실행의 핵심은 제어 권한의 확보다.
포스코DX가 구상한 'AI 오퍼레이터(AI Operator)'는 현장 인지, 상태 판단, 설비 제어 등 숙련공 업무를 수행하도록 설계한 지능형 제조 에이전트 체계다. ▲카메라·센서·PLC 정보를 실시간 수집하는 ‘계측 에이전트’ ▲공정 상태를 진단하고 대응책을 결정하는 ‘슈퍼바이저 에이전트’ ▲판단 결과를 PLC에 전달하는 ‘제어 에이전트’로 나뉜다. 작업자의 눈·두뇌·손에 해당하는 모듈을 제어 고리 하나로 연결한 형태다.
반면 사무 환경에서 실행의 핵심은 데이터와 시스템 접근 권한에 있다. 단순 문서 요약이나 보고서 작성에 그치는 범용 에이전트와 달리, 실무를 수행하려면 소속 조직과 직무에 따른 정보 조회·수정 권한이 정교하게 통제돼야 한다는 게 사측 시각이다. 인사 발령에 맞춰 업무 범위가 연동되고, 회계·인사·사업관리 시스템을 직접 호출해 처리 이력까지 남길 수 있어야 단일 직무를 맡길 수 있다는 의미다.
김병석 포스코DX AI워크포스 TF팀장은 “현시점 산업에 필요한 것은 보다 정교한 에이전트가 아닌, 조직 일원으로 기능하는 AI 직원”이라며 “하나의 직무를 전담하고, 조직 구조와 권한 체계에 귀속돼 목표·판단을 위임받는 임무를 실제로 수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실제로 포스코DX는 AI 에이전트를 ‘AI 직원(AI Employee)’으로 재정의한 바 있다.
이처럼 공장·사무실의 적용 기술은 달라도 본질적인 과제는 같다. 제조 현장에선 AI가 설비를 움직이도록 제어 경로를 터줘야 하고, 사무 환경에선 AI가 사내 시스템 안에서 구동하도록 직무·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포스코DX가 생각하는 AI 전환은 이 판단 체계가 실제 업무 프로세스에 안착해 상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김 팀장은 “기술 구현이 끝나는 순간이 곧 실질적인 인공지능 전환(AX)의 출발점”이라며 “현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를 반복 활용하고, 그 경험이 조직의 프로세스와 운영체계로 고착화되는 것이 자사가 지향하는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고 강조했다.
명장들의 오랜 경험을 자산으로...실전 업무를 집행하는 비결
앞 내용처럼 제어 경로와 접근 권한을 확보했다고 해서 AI가 즉시 업무를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비의 정상 운전 조건과 이상 징후, 예외 상황 발생 시 대응 절차 등을 AI가 모르면 제어 명령을 내릴 수 없다. 사무 영역 역시 회사 규정, 처리 절차, 과거 판단 기준을 학습하지 못한 AI에 직무를 위임하긴 어렵다.
이 배경에서 포스코DX는 범용 AI와 제조 AI(Manufacturing AI)를 명확히 구분한다. 범용 AI가 대규모 공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질의응답과 작업에 대응한다면, 제조 AI는 특정 설비·공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특화된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동일한 기종의 설비라도 투입 원료, 생산 제품, 작업 환경 등에 따라 운전 조건이 천차만별인 만큼, 공정별 지식과 현장 데이터가 녹아든 맞춤형 지능이 필수적이라는 시각이다.
문제는 제조 AI가 학습해야 할 실전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상 가동 데이터는 지속 축적되지만, 불량·고장·사고 등 이상 상황 데이터는 발생 빈도가 낮아 체계적 수집이 어렵다. 공정 핵심 노하우 역시 문서화된 자료보다 장기간 현장에서 뼈가 굵은 숙련공의 경험·직관 속에 내재된 경우가 다반사다.
포스코DX는 이 과정에서의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조석주 포스코DX AX융합연구소장은 “고숙련자 은퇴를 인력 감소라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그들이 축적한 고난도 암묵지(Tacit Knowledge), 즉 현장 지식과 노하우까지 함께 소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노하우를 디지털·데이터화하고, 반복 작업의 자율화를 달성하는 것이 앞으로 제조업의 핵심 과제”라고 진단했다.
포스코DX는 이러한 제조 지능을 ▲인지형 AI(Perception AI) ▲사고형 AI(Reasoning AI) ▲행동형 AI(Action AI) 등으로 세분화한다.
이때 인지형 AI는 비전(Vision)·센서 데이터로 설비 상태와 제품 결함을 포착한다. 사고형 AI는 수집된 데이터와 공정 지식을 결합해 원인을 추론하고 최적의 운전 조건을 도출한다. 이어 행동형 AI는 그 판단을 로봇·설비·장비·이동체 등의 실제 구동으로 연결한다. 현장 정보를 감지하는 단계부터 대응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까지 단일 지능 체계로 통합한 방식이다.
희소 이상 데이터를 보완하는 수단으로는 가상·현실 전이(Sim2Real) 기법을 채택했다. 가동 중인 설비를 AI 시험 목적으로 멈출 수는 없기에, 현장 설비를 가상 환경에 재현한 뒤 각종 극한 조건을 반복 검증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센서 데이터와 3차원(3D) 스캔 정보로 AI를 사전 학습시키고, 검증된 모델을 실제 현장에 적용한 뒤 발생하는 변수를 다시 가상 환경으로 가져와 재학습시키는 순환 체계다.
이러한 '지식·경험의 파편화' 문제는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기존 AI 에이전트는 정해진 절차에 따른 단발성 작업 처리엔 능하지만, 업무 맥락(Context)이나 이전 수행 경험을 후속 작업에 연속적으로 이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규정 밖의 예외 상황이 발생하면 사람에게 판단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회사는 이를 AI 직원의 생성·배치·협업·평가를 통합 관리하는 AI 인력 운영 플랫폼(AI Workforce Platform) ‘에이전티(Agentee)’에 반영했다. ‘검색증강생성(RAG)’으로 회사 규정과 기본 지식을 호출하고, ‘스킬(Skill)’ 영역에 업무 절차와 노하우를 담는다. ‘모델 콘텍스트 프로토콜(MCP)’은 사내 시스템 제어를, ‘에이전트 간 협업(A2A)’은 다른 AI 직원과의 유기적 연동을 담당한다.
여기에 스프레드시트·이메일 등 업무 도구를 다루는 ‘도구 호출(Tool Calling)’, 판단·분석을 맡는 ‘거대언어모델(LLM)’, 축적된 업무 경험과 개념 간 관계를 구조화하는 ‘온톨로지(Ontology)’를 결합했다. AI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내 시스템을 구동하고, 동료 에이전트와 협업하며, 이전 경험을 다음 판단에 반영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에 대해 김병석 팀장은 “신입 사원이 회사 고유 규정을 익히고 선배에게 업무 절차와 노하우를 전수받듯, AI 직원 역시 세부 기술 요소를 통해 필요한 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직원의 성능을 단일 모델의 한계에 가두지 않고, 지식·절차·도구·협업·경험이 집약된 종합 직무 수행 체계로 접근한 셈이다.
채용부터 유지보수까지...AI 직원·로봇이 ‘운영 자산’ 될까?
에이전티는 AI 직원을 만든 뒤 운영·관리 기능을 단계별로 나눴다. ‘빌더(Builder)’는 현업 업무에 맞는 AI 직원을 제작·배치하고, ‘오퍼레이터(Operator)’는 응답 품질과 속도, 운영 비용을 감시한다. 연이어 ‘임프루버(Improver)’는 지식 데이터·프롬프트·모델을 조정해 성능을 높이면서, ‘거버너(Governor)’는 버전과 업무 권한을 통제한다. 또 다른 ‘관리자(Administrator)’는 플랫폼 전체의 접근 권한과 규제 준수 여부를 관리한다.
사측은 이를 인력의 채용·협업·평가·육성·승진·퇴직에 빗대 관리한다. 업무·프로세스를 분석해 AI 직원을 배치한 후 품질, 운영 지표, 사용자 피드백을 평가하고, 성능이 떨어지면 지식·프롬프트를 다시 조정한다. 새 버전을 배포하거나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롤백(Rollback), 권한 회수와 데이터 삭제까지 플랫폼에서 처리한다.
재무 영역에서는 결산 담당 AI 직원 아래 회계·부가세 업무를 나눠 맡은 90여 종의 에이전트가 작동한다. 전체 계정을 검사해 이상 계정과 누락 전표를 찾고 위험요소 보고서를 작성하면, 담당자가 원인 판단과 후속 조치를 승인한다. 사측에 따르면, 약 3시간이 걸리던 사전 결산 점검은 1분 안팎으로 단축됐다.
포스코DX는 이를 회계 결산 전반으로 확대할 경우 조직 생산성이 최소 30% 향상될 것으로 봤다. 견적원가 산출, 인사 발령 등록, 퇴직 면담, 교육 추천·평가에도 AI 직원을 적용했다.
제조 영역에서는 일반 로봇에 피지컬 AI를 결합하는 로보틱스 전환(RX)을 추진한다. 윤석준 포스코DX 로봇자동화센터장은 “일반 로봇에 피지컬 AI를 융합하는 것이 포스코DX가 정의하는 RX”라며 “지금은 완성된 단일 기술보다 인지·판단·동작을 구성하는 개별 기술에 AI를 적용해 현장에 투입하는 단계”라고 언급했다. 추진 방향은 비정형 수작업 자동화, 기존 작업자 제어 설비의 로봇화, 도입 로봇 운영·유지보수 최적화 등 세 갈래다.
실제 현장에는 비전 AI(Vision AI)가 용융로 위 불순물 분포를 판별해 제거하고, 코일 밴드의 종류·위치를 인식해 결속재를 절단하는 식으로 기술을 적용했다. 최대 65톤급 철강 제품을 운반하는 무인운반차(AGV)는 여러 센서를 결합해 장애물과 위험 상황을 교차 감지하는 적용 사례도 도출했다.
여기에 다종·이기종 산업용 로봇에서 관절 전류, 토크, 온도, 엔드이펙터(End-effector) 등 정보를 공통 수집해 고장 징후를 관리한다. 형태가 다른 자율주행로봇(AMR)·AGV는 자율제어시스템(ACS)으로 통합하고,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으로 경로와 작업 순서를 최적화하고 있다.
포스코DX는 현재 2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100여 개 프로젝트에 500명 넘는 임직원을 투입한 상태다. 자사를 첫 검증 무대로 삼는 '커스터머 제로(Customer Zero)' 전략을 통해 그룹사 공통 모델을 확립한 뒤, 대외 시장으로 공급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이 가운데 에이전티는 연내 첫 외부 계약을 달성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확산에 나선다. 피지컬 AI의 경우 올해 하반기 내부 기술 고도화를 마친 뒤, 연속 공정과 유사한 산업군을 시작으로 외부 적용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회사가 제시한 향후 3년간의 AX 사업 수주 및 매출 성장 목표치는 약 30%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