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한 무게중심이 기존 ‘모델 개발’에서 ‘대규모 연산 인프라 확보’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그래픽처리장치(GPU)만 대량으로 도입하는 수준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메모리·네트워크·전력·소프트웨어를 통합해 지능을 생산하는 ‘AI 팩토리(AI Factory)’가 국가·기업의 핵심 기반 시설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SK그룹·네이버가 서로 다른 방식의 대규모 AI 팩토리 구축에 나섰다. SK그룹은 자회사 SK텔레콤의 최대 2기가와트(GW) 규모 AI 인프라와 또 다른 자회사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를 결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각 세종특별자치시 소재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최대 1GW 규모의 멀티테넌트(Multi-tenant) 소버린 AI(Sovereign AI) 클라우드를 추진한다. 쉽게 말해, 여러 기업·기관이 하나의 대규모 AI 인프라를 각자 분리된 환경에서 함께 이용하면서도, 데이터, 모델, 운영 권한은 국내 체계 안에서 통제하는 방식이다.
두 사업의 공통 기반은 엔비디아(NVIDIA)의 AI 팩토리 설계·배포·운영 청사진인 ‘엔비디아 DSX(NVIDIA DSX)’다. 다만 SK그룹이 메모리 공급과 통신·클라우드 인프라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네이버는 외부 기업과 기관이 함께 사용하는 AI 컴퓨팅 서비스와 투자 구조를 강조한다.
칩셋·통신망·기지까지 일체화...SK그룹, AI 팩토리 공급망 전체 통합 노려

이 가운데 엔비디아·SK그룹 양사는 AI 팩토리와 차세대 AI 메모리를 아우르는 전략적 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해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골자는 SK텔레콤이 추진하는 최대 2GW 규모 AI 팩토리와 SK하이닉스의 장기 AI 메모리 파트너십이다.
SK텔레콤의 AI 팩토리에는 엔비디아 차세대 가속 컴퓨팅 플랫폼 ‘엔비디아 베라 루빈(NVIDIA Vera Rubin)’과 DSX가 적용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HBM4’도 베라 루빈 기반 인프라에 탑재한다. 첫 번째 AI 팩토리의 가동 목표 시점은 2027년이다.
DSX는 칩과 서버 시스템뿐 아니라 네트워크·소프트웨어·시설·파트너 기술을 함께 설계하는 풀스택 AI 팩토리 아키텍처다. 전력 사용 효율을 높이고 같은 에너지 안에서 처리하는 AI 토큰의 양을 늘려 토큰당 비용을 낮추는 데 초점을 둔다.
SK텔레콤은 이를 기반으로 소버린 AI와 피지컬 AI(Physical AI), 에이전틱 AI(Agentic AI), 기업용 AI 서비스에 필요한 대규모 컴퓨팅 자원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국내·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AI 인프라 수요까지 겨냥한다는 구상이다.
이때 엔비디아·SK하이닉스의 협력도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차세대 AI 메모리의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둔다. 거대언어모델(LLM)부터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에 최적화된 메모리 솔루션을 공동 개발한다는 로드맵이다.
엔비디아는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AI 메모리 공급 기반을 확보하고,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제품의 수요 가시성을 높이는 구조다. SK그룹은 메모리, 통신망, 데이터센터, AI 클라우드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하게 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시대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지능을 생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와 SK텔레콤의 AI 인프라 역량을 기반으로, 엔비디아와 세계적 수준의 AI 팩토리를 구축할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독자 기지 구축이 신생 기업도 끌어안나?...공유형 컴퓨팅 자원이 여는 자율 생태계

한편 네이버는 엔비디아·브룩필드(Brookfield)와 함께 각 세종 데이터센터의 AI 팩토리 규모를 확대한다. 지난달 발표한 초기 55메가와트(MW) 규모를 2028년까지 200MW로 세 배 이상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 AI 인프라 구축 용량을 1G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00MW 규모 AI 팩토리에는 베라 루빈과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 등 엔비디아 기술이 도입될 예정이다. 네이버는 ‘엔비디아 클라우드 파트너(NVIDIA Cloud Partner)’로서 기업·산업·정부기관 등 이해관계에 AI 모델 개발과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한다.
핵심은 여러 기업이 하나의 인프라를 나눠 사용하는 멀티테넌트 구조다. 대규모 자본을 직접 투입해,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어려운 스타트업·기업도 네이버 AI 클라우드를 통해 프로덕션 규모의 연산 자원을 이용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는 글로벌 자본 결합이 진행된다. 엔비디아는 네이버에 10억 달러(약 1조46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때 글로벌 투자 업체 브룩필드와는 최대 90억 달러(약 13조2000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위한 비구속적 조건합의서를 도출했다. 네이버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나머지 자금을 조달한다.
엔비디아의 투자 계획에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네이버가 엔비디아 투자와 별도로 최소 90억 달러 규모의 확정 자금을 확보하고, 통상적인 거래 종결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브룩필드의 최대 90억 달러 자금 지원도 비구속적 조건합의 단계다. 실제 투자 규모와 집행 시점은 후속 계약 과정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엔비디아의 전략적 투자 계획과 브룩필드와의 인프라 공급 계약을 통해 네이버의 AI 팩토리 사업 비전이 본격 실행 단계에 진입했다”며 “소버린 AI 생태계를 지속 육성하고, 우리나라 AI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韓 수도권 실제 공간 데이터를 디지털로
네이버는 구축한 연산 인프라를 자체 AI 모델과 서비스로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자체 데이터와 훈련 역량을 활용해 엔비디아의 LLM·멀티모달(Multimodal) 파운데이션 모델 ‘엔비디아 네모트론 3 울트라(NVIDIA Nemotron 3 Ultra)’를 기반으로 하이퍼클로바X(HyperCLOVA X)를 고도화한다. 올 하반기에는 엔비디아 에이전트 도구를 활용한 AI 에이전트 플랫폼도 국내에 출시된다.
이 밖에 네이버의 도시 거리뷰와 공간 모델링 데이터도 엔비디아 플랫폼과 융합된다. 물리 법칙 기반 월드 모델(World Model) 플랫폼 ‘엔비디아 코스모스(NVIDIA Cosmos)’가 그것이다. 양사는 서울의 물리적 환경을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하는 ‘서울 월드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AI 팩토리에서 확보한 연산 자원을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 개발로 확장하는 흐름이다.
이어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창립자 겸 최고경영책임자(CEO)는 “AI 팩토리는 지능의 시대에 국가가 경쟁·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인프라”라고 말했다. 끝으로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반도체 기술, 산업 기반 등 한국이 갖춘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대의 AI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여 강조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