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업무를 AI에 옮겼더니...통합 관리 체계로 ‘연속적 맥락’ 완성해야
한 글로벌 업체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면서 기존 워크플로를 그대로 이관하려 했다. 오랜 기간 개선을 거쳐 완성한 업무 절차인 만큼, 새로운 기술 위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초기 적용부터 기존 절차와 새로운 기술 사이에서 마찰이 발생했고, 기대한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능을 추가하거나 일부 설정을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이는 기술 도입이 우선이 아니라, 과거 환경에 맞춰진 업무 순서와 협업 구조를 다시 살펴야 한다는 시사점을 도출했다.
미셸 애시(Michelle Ash) 다쏘시스템 시뮬리아(SIMULIA)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이 사례를 인공지능(AI) 전환 과정에서 기업이 마주하는 대표적인 착시로 제시했다. 오랜 시간 다듬은 워크플로라도 이전 도구와 조직 체계 안에서 최적화된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 결국 새로운 기술의 장점까지 반영한 구조는 아닐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기존 워크플로가 과거 맥락에서는 최적화됐을 수 있다”며 “더 빠르고 협업적이며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을 도입했다면 일하는 방식도 함께 다시 설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기업은 결국 첫 번째 적용 대상이었던 일부 워크플로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 여기서 드러난 문제를 조직 전체로 확장해 점검하자 수십여 개 워크플로가 추가됐다. 현재 재설계 대상은 50개가 넘은 업무 흐름으로 늘어났다.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확인될 때마다 업무 방식도 계속 수정해야 한다는 게 애시 CEO의 시각이다.
이 사례의 핵심은 AI로 개별 업무의 처리 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을 활용하는 조직의 업무 흐름까지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데 있다. 새 기술이 더 빠르게 결과를 내놓더라도 기존 업무 방식이 뒤따르지 못하면 혁신은 힘들다는 시사점이다. 승인 절차, 부서 간 정보 전달, 결과 재검토 방식 등 방식을 기술 도입 흐름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도입은 기존 절차에 새로운 기능을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데이터를 공유하고 누가 어느 시점에 판단할 것인지까지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빠르고 협업 지향적이며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을 도입했다면,
일하는 방식도 함께 재설계해야 합니다.
새 기술의 가치는 조직의 판단 구조 혁신에서 드러납니다.
애시는 이 원칙을 요구사항 설정부터 설계·해석·검증까지 담당하는 제품 개발 부문, 즉 엔지니어링 조직에 적용하는 순서로 구체화했다.
출발점은 설계 환경과 시뮬레이션 도구를 하나의 데이터 체계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설계 형상 ▲재료 정보 ▲해석 조건 ▲검증 결과 등 요소가 서로 다른 파일·시스템에 흩어지면 변경 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데이터를 다시 옮기고 관계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AI 역시 어떤 설계 변경이 특정 해석 결과를 만들었는지 맥락(Context)을 연속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데이터를 연결한 다음에는 그동안 축적한 시뮬레이션·시험 결과를 AI 예측에 활용한다. 글로벌 시뮬레이션 및 3차원(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은 가상 환경에 현실을 재현하는 '버추얼 트윈(Virtual Twin)' 방법론을 제시한다. 제품 형상부터 실제 환경에서 발생하는 구조 변형, 열, 유체 흐름 등 물리적 반응까지 다루는 방식이다.
다쏘시스템은 설계와·시뮬레이션을 동일한 데이터 구조에서 다루는 ‘모델링·시뮬레이션 통합(MODSIM)’을 이러한 연결의 기반으로 둔다. 제품 형상이 변경되면 관련 해석 조건과 결과도 함께 갱신된다. AI가 설계·성능 사이의 관계를 단일 맥락에서 학습하도록 하는 접근이다.
이 기반 위에서 두 번째 단계인 AI 기반 성능 예측이 이뤄진다. 기존 시뮬레이션·시험 결과와 가상으로 생성한 데이터를 머신러닝이 학습한 뒤, 새로운 설계안의 물리적 반응을 빠르게 예상하는 방식이다. 다쏘시스템은 이 기능을 ‘버추얼 트윈 물리 거동(Virtual Twin Physics Behavior)’이라고 정의한다.
이 접근법의 핵심은 계산량이 방대한 정밀 해석을 초기 모든 설계안에 일일이 반복하지 않는 유연성이다. 이미 검증된 데이터를 학습한 ‘대리 모델(Surrogate Model)’이 구조 변형, 열, 유체 흐름 등 주요 성능 수치를 우선 예측한다 이로써 작업자는 짧은 시간 안에 다각도의 대안을 비교·분석할 수 있다 게 사측의 기대다. 이후 채택 가능성이 높은 최적의 후보군에만 정밀 시뮬레이션을 집중 투입해 초기 탐색 범위를 대폭 넓히는 구조다.
애시 CEO는 “이 같은 모델 기반 예측 방식을 적용하면 기존에 수 시간이 소요되던 분석 과정을 수 초 단위까지 단축할 수 있다”며 “개발 초기 단계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신속하게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단계는 '시뮬레이션 데이터 과학(Simulation Data Science)' 체계를 안착시키는 일이다. 해석 전문가 개인이 축적해 온 모델링 기술, 판단 기준, 반복 업무 모범 사례 등을 개별 프로젝트에만 가두지 않고 조직 전체로 확장하는 기법이다. 지식 자산 전환·확정 작업이다. 새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마다 해석 환경을 매번 처음부터 세팅하는 대신, 이전에 검증된 조건과 절차를 그대로 불러와 개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AI가 더 많은 답을 내놓을수록
어떤 판단을 남기고 재사용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어떤 형상·조건에서 유효한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데이터 맥락·이력이 투명하게 관리돼야만 기존 방법론을 안전하게 재적용·보정할 수 있다”고 CEO가 덧붙여 진단했다.
그가 제시한 이 같은 3단계 청사진은 흩어진 설계·해석 데이터를 하나로 묶고, 이를 AI 성능 예측에 투입한 뒤, 검증된 해석 노하우를 조직 전반으로 파급하는 순서다. CEO는 “이러한 선순환이 완성될 때 시뮬레이션은 개발 후반부의 검증 도구에서 진화한다”며 “제품 설계 방향부터 개발 자원 투입, 나아가 출시 여부까지 결정짓는 핵심 의사결정 인프라로 진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데이터 연결, 업무 프로세스 재정의, 인간 검증, 축적된 산업 지식’
이 사박자가 맞물릴 때 AI는 실제 엔지니어링 수행 능력으로 진화합니다.
다만 시뮬레이션 활용의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최종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범위까지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일반 엔지니어가 초기 대안을 직접 비교·검토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해석 전문가의 검증 영역을 어디까지 설정하고 의사결정권자가 어느 정도의 결과값까지 신뢰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다.
이에 대해 “AI·시뮬레이션이 엔지니어의 탐색 범위를 넓혀줄 수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최종 검증과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전문성에 달려 있다”며 애시 CEO 짚었다.
"저품질 지시가 오답 불러" 깨끗한 학습 자산이 먼저다
Q. 시뮬레이션 결과가 기업의 실제 의사결정 기준이 되려면 뭐가 필요한가?
A. 가장 먼저 물리 데이터의 신뢰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품질이 낮은 시험·해석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정교한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잘못된 결과를 내는 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도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형상·재료·하중·경계 등 조건이 적용됐는지 확인하고, 설계 변경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되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일관된 결과를 얻는 반복 재현성도 중요합니다. 특정 전문가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요. 검증된 절차·모델, 허용 기준 등을 시뮬레이션 프로세스·데이터 관리(SPDM) 체계로 표준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조건이 갖춰져야 개인의 분석 결과가 조직이 공유하는 판단 기준으로 전환됩니다.
Q.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을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시작 모델(Beginning Model)’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A. 파운데이션 모델은 조직이 자체 지식을 쌓는 출발점입니다. 기업은 그 위에 보유한 지적재산권(IP)을 비롯해 업무 방식, 산업 경험, 설계 기준을 더하게 됩니다. 같은 기반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축적한 데이터와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적인 산업용 AI(Industrial AI)는 달라집니다. 일부 지식은 업계의 공통 자산이 될 수 있지만, 기업 고유의 노하우는 차별화 요소로 남습니다. 설계 원칙, 판단 기준, 시행착오 등이 있겠죠. 우리는 이를 ‘시작 모델(Beginning Model)’이라고 부릅니다.
Q. AI가 시뮬레이션의 조건 설정, 실행, 결과 확인까지 돕는다면 설계자와 일반 엔지니어도 직접 해석 가능한지.
A. 그렇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목표를 입력하면 적절한 해석 절차를 안내하고, 조건 설정부터 결과 이해까지 지원하는 AI 기능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다쏘시스템은 이러한 지원 체계를 ‘가상 동반자(Virtual Companion)’라고 부릅니다. 이를 활용하면 설계자와 일반 엔지니어도 제품 개발 초기부터 형상, 재료, 주요 조건을 수시로 바꾸며 성능 변화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해석 전문가에게 요청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했던 반복적인 비교·최적화 작업을 설계 과정 안에서 직접 수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능력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구분해야 합니다. 여러 설계안을 탐색하고 후보를 좁히는 비교적 위험도가 낮은 작업은 일반 엔지니어가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품 안전·인증, 규제 준수 등에 영향을 주는 고위험 판단은 해석 전문가가 맡아야 합니다.
전문가의 역할도 해석을 대신 수행하는 일반적인 임무에서, 일반 엔지니어가 탐색한 대안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시스템 전체 안전성을 최종 승인하는 고도화된 영역인 것입니다. AI가 시뮬레이션의 문턱을 낮추더라도, 복잡한 제반 환경을 고려한 최종 의사결정과 위험 관리의 책임은 결국 인간 전문가의 통찰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설계자와 일반 엔지니어는 초기 대안의 탐색·비교를, 해석 전문가는 모델·결과의 신뢰성 검증을 맡게 됩니다. 개발 책임자와 경영진은 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개발 방향과 자원 투입 여부를 결정합니다.


▲ 다쏘시스템은 가상 동반자 아우라(AURA)·레오(LEO)·마리(MARIE)를 통해 설계·해석·제조 업무를 지원한다. 이 가운데 레오는 자연어(Natural Language) 프롬프트로 지시하면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필요한 기능을 구현한다. 자료는 올해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다쏘시스템 연례 행사 '3D익스피리언스 월드(3DEXPERIENCE World)'에서 첫 공개된 레오 데모. (촬영·편집 : 휴스턴(미국)=헬로티 최재규 기자)
AI 답변을 의심하라, 비판적 검증이 핵심 자산으로 떠오르는 이유
이렇게 시뮬레이션 결과의 최종 책임이 인간에게 남는다면 앞으로 필요한 역량도 달라진다. AI가 제시한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결과가 충분히 정확한지 되묻고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인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애시 CEO는 AI와의 상호작용이 인터넷 검색과 다르다고 봤다. 검색창에서 정보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내놓은 답의 빈틈을 발견해 질문을 거듭하며 조사 방향까지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AI가 지나치게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면 더 깊이 파고들어 계속 질문해야 한다”며 “그 정보가 사실인지, 실제 상황에 적용할 만큼 충분히 정확한지 판단하는 능력이은 사용자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이 같은 AI 활용 능력에 대해 그는 AI와 디지털 정보를 다루는 방법을 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 조직에도 업무와 일상에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직접 써봐야 모델마다 다른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어느 답변을 추가로 검증해야 하는지도 익힐 수 있다”고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아울러 AI가 반복 업무와 정보 탐색을 맡으면 인간은 문제 정의, 결과 검증, 새로운 질문 등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그가 AI의 역할을 인간의 대체가 아닌 역량 확장으로 규정한 배경이다.
이러한 역할 변화는 제품 개발의 범위도 넓힌다. 다쏘시스템은 첫 번째 물리 시제품을 제작하기 전에 제품 설계부터 생산·사용·유지보수·재활용까지 전 생애를 가상 환경에서 살펴보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자사 기술 청사진 ‘3D 유니버스(3D UNIV+RSES)’가 그것이다.
제품이 충격·압력·열 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는 기술 청사진인데. 이를 활용하면 공장에서 어떤 로봇·장비가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 설비를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버추얼 트윈에서 검토 가능하다. 여기에 제품을 공급 업체의 부품과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지까지 최종 의사결정으로 도출할 수 있다. 출시 전 사용자가 제품을 경험하고 의견을 제시하거나, 실제 사용 이후의 정비와 폐기·재활용 방식까지 미리 설계하는 구상이다.
CEO는 첫 시제품을 만들기 전에 제품의 전 생애주기(Lifecycle)을 확인할 수 있다면 시장 출시 속도뿐 아니라 비용과 자원 사용 방식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러 물리 시제품을 제작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대신, 가상 환경에서 대안을 좁혀 금속·플라스틱 등 재료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는 인간의 역량을 대체하기보다 확장해야 합니다.
더 많이 배우고 활용하며 협업할수록,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단정하지 않았다. 기술과 업무 방식이 동시에 바뀌는 현재를 긴 등반의 출발점에 비유했다.
그는 “지금 우리는 모두 산 아래에서 첫걸음을 떼는 단계라고 생각한다”며 “아래에서는 정상도 보이지 않고, 정상에 오른 뒤에야 산 너머의 풍경이나 또 다른 산의 존재를 알게 될 수 있다”고 이해를 도왔다. 끝으로 “AI를 더 많이 사용하고 빠르게 배우며 서로 협력할수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실제로 그곳에 도달하기 전까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