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잇따라 발간하며 비재무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최종안 발표는 다시 한번 미뤄졌다. 기업들은 자율 보고서를 통해 지속가능경영 정보를 시장에 제시하고 있지만, 향후 적용될 공시 대상과 방식, 법정공시 전환 여부, 스코프3 유예 범위 등 핵심 쟁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6월 30일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당정협의 일정 취소로 발표를 보류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 지연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최종안 공개 시점도 다시 늦춰질 전망이다. 올해 들어 로드맵 공개 시점은 1분기, 4월 이후, 6월 말로 미뤄진 데 이어 한 차례 더 연기됐다.
로드맵 초안은 2028년부터 연결자산 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시작하고, 2029년부터 10조 원 이상 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았다. 공시 채널은 우선 거래소 공시로 운영한 뒤 제도 안착 이후 법정공시 전환을 검토하는 구조였다. 스코프3 공시는 산정·추정 인프라 구축 기간을 고려해 2031년부터 시작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최근 거론되는 최종안은 초안보다 강화된 방향으로 알려졌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최종안에는 2028년부터 연결자산 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를 법정공시로 의무화하는 방안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스코프3 공시는 초안과 마찬가지로 3년 유예하는 방안이 유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도체부터 자동차, 철강까지' 기업들이 공개한 비재무 정보

삼성전자는 지난 26일 ‘2026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환경, 사회, 거버넌스 분야의 전략과 주요 성과를 공개했다.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2025년 말 기준 전체 전력 사용량의 94.8%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대표 제품 모델에는 고효율 에너지 기술을 적용해 2019년 대비 평균 34.4%의 소비전력을 줄였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자원 순환과 수자원 관리 성과도 제시했다. 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 중 재활용 플라스틱 비중은 33.7%로 높아졌으며, 2025년 수자원 환원율은 67.2%를 기록했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25년 공정가스 처리시설(RCS) 3대를 추가 도입하고 설비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고용과 사회적 가치 관련 지표를 공개했다.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국내 사업장 기준 전체 이직률은 0.9%, 자발적 이직률은 0.5%로 집계됐다. 신규 채용 인원은 3201명으로 전년 942명의 3.4배 수준이었다. 회사가 지난해 창출한 전체 사회적 가치는 20조 3247억 원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례는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성 이슈가 환경 지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도체 제조는 전력과 용수 사용량, 공정가스 배출, 제품 에너지 효율, 인재 확보, 협력사 관리가 모두 주요 비재무 정보로 연결되는 산업이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가 생산과 투자를 키우는 동시에 기업이 설명해야 할 지속가능성 정보의 범위도 넓히고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30일 발간한 ‘2026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유럽, 북미, 인도 지역 전 사업장의 RE100 달성과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147MW 규모 태양광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결과를 담았다.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 통합 수소 밸류체인, 차세대 전동화 전략도 함께 제시했다.
현대차는 사회 부문에서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충돌평가 16개 차종 최고 등급 획득, 2030 안전경영 전략, 전동화와 AI 전환에 따른 임직원 지원 방안을 소개했다.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선임 사외이사 제도, 이사회 다양성, 2025~2027년 총주주환원율 최소 35% 목표,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개발 등을 담았다.
포스코홀딩스는 그룹 차원의 통합 ESG 공시 체계를 적용한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포스코홀딩스는 ESG 공시 의무화에 대응하기 위해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이앤씨, 포스코퓨처엠, 포스코DX, 포스코스틸리온, 포스코엠텍 등 연결 사업회사의 공시 데이터를 표준화했다. 각 사가 일관된 이중 중요성 평가를 통해 도출한 핵심 ESG 이슈도 그룹 관점에서 통합 선정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올해 처음으로 투자자와 ESG 평가기관의 요구사항에 맞춰 그룹 내 ESG 공시 항목과 데이터 집계 방식을 표준화했다고 밝혔다. 공시 정보의 일관성과 정합성을 높이고 사업회사 간 데이터 비교 분석의 편의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LG전자도 지난 30일 ‘2025-2026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LG전자의 지난해 국내외 사업장 직접·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84만 2000톤으로 집계돼 2030년 목표치인 87만 8000톤을 조기 달성했다. 제품 사용 단계의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도 2020년 대비 22.5% 줄었고, 사업장 폐기물 재활용률은 97.3%를 기록했다. 지난해 56개국 91개 지역에서 회수한 폐전자제품은 64만 톤으로 집계됐다.
LG전자는 사회 부문에서 장애인과 고령층을 위한 제품 및 서비스 접근성 확대를 제시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해 운영하고, 올해 보고서에 인공지능(AI) 윤리 기준과 운영체계를 담은 ‘AI 책임경영’ 항목을 새롭게 포함했다.
자율 보고서에서 공시 데이터로
ESG 공시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보고서에 담기는 비재무 정보는 향후 공시 대응의 기초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제조기업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용수, 폐기물, 공급망, 산업안전, 제품 사용 단계 정보까지 관리해야 할 항목이 넓다.
특히 법정공시 전환 여부는 기업의 부담을 크게 바꿀 수 있는 변수다. 거래소 공시보다 법정공시는 공시 책임과 내부 통제, 외부 인증, 임원 책임 문제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스코프3 역시 협력사와 공급망, 제품 사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포함하기 때문에 제조기업에는 산정 난도가 높은 항목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공시 로드맵 발표 지연이 기업에 추가 준비 시간을 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어떤 기준으로 내부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주요 제조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비재무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 보고서 발간 여부보다 정보의 정합성, 비교 가능성, 검증 가능성이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한 만큼, 차후 확정되는 로드맵의 공시 대상, 공시 채널, 법정공시 전환 시점, 스코프3 유예 범위에 귀추가 주목된다.
헬로티 이동재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