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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듣다] "소리가 데이터가 되는 순간, 세상이 달라져요"

디플리 이수지 대표, 제조 현장의 청각을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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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 물류 창고, 반도체 공장—아직도 많은 산업 현장에서 여성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때로는 거침없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듣다'는 남성이 다수인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매달 한 명씩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배우며 성장해온 진짜 이야기를 전합니다. 네 번째 주인공은 AI 음향 분석 스타트업 디플리의 이수지 대표입니다. 


 

공장 안은 시끄럽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진동, 마찰음. 그 복잡한 소음 속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잡아내는 일을 AI로 한다는 스타트업이 있다. 디플리(Deeply)다. 이수지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인지과학 석박사 과정을 밟다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만 8년 차 대표인 그녀에게 디플리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리를 데이터로 만드는 회사

 

디플리는 '소리를 통해 세상에 의미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회사'라고 이수지 대표는 소개한다. 우리는 소리를 너무 자연스럽게 듣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갑작스러운 위험 신호, 설비 이상, 누군가의 외침. 이 모든 것이 소리다.

 

디플리가 집중하는 곳은 제조 현장이다. 공장에는 수십 종류의 기계가 동시에 돌아가고, 그 속에서 특정 이상음을 포착하는 것은 과거의 단순 신호처리 기술로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딥러닝과 LLM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은 가능해졌다.

 

현장에 가면 “귀가 제일 예민해, 귀만큼은 대체 못 할 걸”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솔루션을 써보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다고 이 대표는 전했다. 현재 디플리는 작년과 올해 거의 대부분의 납품이 인바운드로 이뤄질 만큼 시장에서의 위치를 다지고 있다. 대부분의 AI가 시각 데이터에 집중하는 사이, 청각이라는 틈새를 먼저 파고든 결과다.

 

처음부터 제조에 집중했던 것은 아니다. 이수지 대표는 창업 초기 소리라는 소재로 네 가지 아이템을 동시에 그렸다. 아기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이 상태를 파악하는 서비스, 디지털 청진기를 활용한 헬스케어, 비명 소리를 감지해 안전을 지키는 솔루션, 그리고 제조 현장의 이상음 탐지. 하나씩 시장에 부딪혀보며 가능성을 타진했고, 결국 가장 절실한 수요가 있는 제조 현장에 닻을 내렸다. "시장이 열린 게 2~3년 전인 것 같아요. 옛날에도 시도는 했는데 그때는 반응이 없었거든요." 기다린 자가 이긴다는 말처럼, 기술과 시장이 동시에 익은 타이밍이 찾아왔다.

 

뇌파 연구자에서 AI 스타트업 대표로

 

이수지 대표의 이력은 얼핏 뜬금없어 보인다. 카이스트 전자과, 서울대 인지과학(뇌파 분석), 의료기기 스타트업, 그리고 제조용 청각 AI. 하지만 연결 고리는 하나다. '시계열 신호 처리'다.

 

“뇌파 신호도, 오디오 신호도 기술적으로는 같은 계열이에요. 사실 뇌파를 분석하는 기법 상당수가 오디오 처리에서 가져온 거거든요.”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과학 키트가 보물 1호였고, 집에서 납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반도체 연구실에서 졸업 연구를 하던 중 “더 넓은 분야의 연구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고자 인지과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입학했지만 연구자보다 사업가의 길이 끌렸고, 카이스트 선배의 의료기기 스타트업에 합류하며 창업 생태계를 몸으로 익혔다.

 

이후 네트워킹 파티에서 공동창업자를 만나 본격 창업에 나선 것이 지금의 디플리다. 처음에는 아기 울음소리 분석, 디지털 청진기, 안전 비명 감지 등 네 가지 아이템을 구상했다. 제조 쪽으로 최종 안착한 것은 8년 창업 역정 끝의 선택이었다.

 

여성 대표가 남초 제조업을 헤쳐나가는 법

 

제조업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산업이다. 현장 영업, 설비 담당자와의 소통, 공장 문화. 이 대표에게 여성으로서 힘든 점은 없었냐고 묻자 그녀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창업하면 나이에서 오는 불리함이 있고, 나이 많으면 또 그것대로 편견이 있고, 여성이면 여성으로서 불리한 점이 있죠. 그런데 남성이라고 불리함이 없을까요? 중요한 건 어떻게 보완하느냐라고 생각해요.”

 

보완 방법은 팀이었다. 제조 현장 소통에 능한 팀원, 현장 기술을 잘 파악하는 팀원을 두고 각자의 강점을 살리는 방식이다. 이 대표 본인이 하기 어려운 영역은 그걸 잘하는 팀원에게 맡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한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뾰족함'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내 연차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내가 이 부분만큼은 낫다는 게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소음 속에서 찾은 확신

 

그녀가 이 길을 버티게 하는 힘은 확신이다. 우리나라가 AI를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제조라는 믿음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자동화 노하우는 다른 나라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렵고, 한국은 1인당 로봇 사용 대수가 전 세계 1위인 나라다. 그 밀도 높은 제조 환경에서 쌓인 AI 데이터가 곧 글로벌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믿음이다. 북유럽이 전통적인 음향 강자였다면, AI 음향 분석에서는 한국이 앞설 수 있다고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창업을 꿈꾸는 이에게,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수지 대표가 처음 창업을 결심한 건 20대였다. 경험이 없었기에 오히려 두려움도 없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당시에는 실패하면 다른 거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실패도 경험이니까요." 그 후 5년 가까이는 좌충우돌의 시간이었다. 아이템이 시장의 반응을 얻지 못할 때, 무료로는 쓰지만 유료 전환이 되지 않을 때, 아예 사용 자체가 없을 때.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이 지금의 디플리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

 

이 대표가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조언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먼저 아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잘못 알고 창업의 길에 들어서면 정말 괴로운 길이 될 수 있어요.”

 

창업이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신중하게 답했다. 예민한 분들은 좀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창업을 하다 보면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많은데, 그걸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건강을 잃기 쉽다고. 본인은 좋아하는 걸 할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힘든 길도 재미있게 왔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느끼는 행복 속에서 디플리를 이끌고 있는 이수지 대표, 그것이 남초업계인 제조업에서 그녀가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힘이었다.


Mini Profile

 

이수지 | 디플리 대표 | MBTI : ENTP

 

“좀 무던한 편이에요. 힘들었던 일들이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요. 그게 창업을 버티게 해준 것 같아요.”

 

다음 호에서 또 다른 업계의 그녀를 만나봅니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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