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설계의 기준점이 이동 중이다. 이제 설계의 출발선은 모양을 만드는 작업 그 너머에 있다. 로봇이 들어갈 공간의 폭·높이, 사람과의 거리, 반복 동작 안정성, 유지보수 동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까지. 로봇 제작의 태동기인 설계 단계부터 실전 변수를 한꺼번에 얹어야 하는 시대다.
서비스 로봇은 이 조건이 더 엄격하다. 규격화된 공장 작업 단위(Cell) 안에서 정해진 매뉴얼만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물체·변수·이변 등이 산재한 날 것 그대로의 공간. 서비스 로봇은 그 전장으로 침투해야 한다.
이처럼 로봇과 같은 자동화(Automation) 기술의 가치는 이제 개별 기능에서 나오지 않는다. 전체 작업 흐름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재구성하느냐에서 판가름 난다는 뜻. 로봇 팔(Robot Arm) 하나의 출력이나 동작 하나의 성공 여부만으로는 제품을 설명할 수 없다. 이제는 물리적 한계를 돌파할 ‘구조’, 우선 검증할 ‘동작’, 실제 운영 지능으로 이어질 ‘데이터’까지 한데 묶어 설계해야 한다.
실환경은 설계자의 판단을 다시 검증대에 올린다. 통제된 공간과 반복 작업이라는 제조·물류 현장의 공식은 서비스 공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소음·동선, 사람의 개입, 물체 위치 변화 등이 실시간으로 뒤섞이는 혼돈이 변수로 작용하는 환경이 그 배경이다. 똑같은 로봇이라도 어느 현장에 놓이느냐에 따라 설계 기준이 뿌리부터 뒤집히는 이유다.
프랑스 소재 시뮬레이션 및 3차원(3D) 설계 솔루션 업체 다쏘시스템은 거대 구조물 검토, 부품 간 연결, 구동 해석, 회로 연동, 오차 분석 등을 핵심으로 내세웠다. 단순히 형상을 그리는 단계는 끝났다는 메시지다. 로봇이 움직이기 전, 가상 환경에서 충돌, 무게, 조립 틈새를 먼저 걸러내는 ‘선(先) 검증’ 체계로의 전환이다.
형상 완성은 시작일 뿐, '운용 가능성'을 점치는 디지털 스레드
현시점 설계 도구는 기존의 ‘제작 지원’ 목적에서 ‘검증 체계 방법론’으로 새롭게 진입했다. 이제 설계 툴은 형상을 그리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같은 신개념 로봇 설계 도구는 기구·전장·구동·배선·문서·이력 등 요소를 한 화면에 통합한다. 이를 통해 실제 로봇 동작 전에 간섭, 하중, 조립 편차 등을 먼저 걸러내는 검증 과정을 구현한다. 특히 서비스 로봇처럼 사람과 밀착하는 제품일수록 이 전환의 압박은 더 크다.
다쏘시스템의 컴퓨터지원설계(CAD) 솔루션 ‘솔리드웍스(SOLIDWORKS)’의 설계 체계도 이 흐름을 관통한다. 단순히 3차원(3D) 기반 CAD에 가두지 않는 방식이다. 대규모 조립체(Assembly) 검토부터 부품 연결(Mate), 모션 해석, 회로 연동, 오차 분석, 전장 3D 설계, 문서 자동화 등 워크플로가 하나의 연속 공정으로 이어진다.
사측은 기구를 먼저 만들고 나머지를 억지로 맞추는 방식은 옛날 방식이라고 목소리를 낸다. 설계 초기부터 충돌 가능성과 수정 비용을 앞당겨 확인하는 구조에 무게를 실은 메시지다. 도면 작성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 방법에서 실제 설계 정보를 담는 도구로 설계 툴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
특히 로보틱스 설계에서 이 변화는 더욱 체감된다. 로봇과 같이 수천 개 부품이 얽힌 조립체는 빠르고 가볍게 구동돼야 하고, 부품 간 관계는 실제 동작 조건까지 반영해 잡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동작 해석은 움직이기 전 하중·간섭·내구성을 먼저 살피는 것이 필수 절차다. 조립체가 커질수록 형상보다 정합성(Consistency), 즉 설계 데이터와 실제 물리적 구조가 오차 없이 맞물리는 일치성이 관리의 핵심이 되는 이유다.
기구와 전장을 별개로 보던 기존의 직렬식 설계도 앞선 통합 검토 방식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회로 데이터가 기구 모델로 실시간 투사되고 모터, 단자대, 컨트롤 박스의 물리적 배치가 3D 환경에서 함께 검토되는 식이다.
로봇 안 케이블의 회전 반경이나 하네스 경로 같은 미세한 간섭까지 설계 초기에 통합되지 않으면, 실제 구동 시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사양 변경이 자재명세서(BOM)·도면에 동시 반영되는 구조가 강조되는 배경이다. 이승철 다쏘시스템 기술팀장은 이를 "개별 솔루션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체계"라고 짚었다.


▲ 다쏘시스템은 자사 가상 환경 방법론 '버추얼 트윈(Virtual Twin)'을 통해 선제 검증을 지원하고(좌), 이를 기반으로 이후 실제 현장에서의 테스트도 맡는다(우). (촬영·편집 : 휴스턴(미국)=헬로티 최재규 기자)
오차 분석(Tolerance Analysis) 역시 제작 이후의 보정 단계가 아닌, 설계 단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수 변수로 자리 잡았다. 부품 간 수치 편차는 설계대 위에서 이미 해결돼야 할 변수라는 의미다. 이는 조립 정밀도는 물론, 반복 구동 시 발생하는 유격과 유지보수 효율성까지 가상 환경에서 먼저 확인하는 절차가 선행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팔·센서·배선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로봇 설계에서 공차 관리는 기기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요소다.
설계 생산성을 높이는 자동화 기능의 지향점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반복 입력이나 도면 정리 같은 소모성 작업 비중을 낮추고, 엔지니어가 검토·판단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다. 이러한 접근은 설계 속도 자체를 높이는 것보다, 이후 단계에서 발생할 수정 비용을 앞선 과정에서 차단하는 리스크 관리에 무게가 실린다. 결국 설계의 목적이 ‘형상 완성’에서 실제 현장에서 버티는 ‘운용 가능성 확보’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러한 기준 변화는 로봇의 하드웨어 구조를 정의하는 기준을 바꾼다. 어떤 구조의 로봇이 실환경의 변수 속에서 안정적으로 구동하는지를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다. 다양한 설계점이 개별 요소가 아닌 하나의 데이터 덩어리로 설계되는 이유다.
"머리는 떼고 시선을 남겼다" 현장에서 '덜어냄'의 미학이 먹힐까?
국내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로봇 기술 업체 엑스와이지가 지난달 발표한 듀스(DEUX)는 사람과 가까운 서비스 공간 투입을 겨냥한 상체형 양팔 로봇이다. 세미 휴머노이드(Semi Humanoid) 형태의 이 기체는 카페·사무실·식당 등 동선이 개방되고 사용자 반응이 즉시 돌아오는 현장을 전제로 개발됐다.
최근 글로벌 산업에 전개되는 화제성을 모으기 위한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 재현보다, 실제 공간에 놓였을 때 낯설지 않고 덜 위협적인 실생활형 로봇. 바로 운용 가능한 구조의 로봇을 내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황성재 엑스와이지 대표는 “예컨대 자판기 형태의 로봇 카페는 사용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고 짚은 배경도 여기 있다. 엔지니어 관점의 완성도만으로는 서비스 공간의 수용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듀스의 사용자경험(UX) 설계를 맡은 김대광 팀장은 초반 설계 기준을 사용 환경에 맞는 최소 기능 구현에 뒀다. 카페에서는 ‘친근’, 병실에서는 ‘부담 없이’, 사무실에서는 ‘낯설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 (출처 : 엑스와이지, 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단일 환경에서만 통하는 표정과 비례를 고집하는 대신, 여러 공간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기능·인상을 먼저 남기는 방향으로 듀스를 설계했다.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요소를 덧붙이는 것보다, 서비스 공간에서 오래 지속 가능한 형태를 먼저 만드는 일이다.
가장 먼저 덜어낸 것은 ‘머리’다. 김대광 팀장은 듀스 설계 초기에 디스플레이를 얹어 표정을 구현하는 안을 검토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방향은 장소에 따라 표정이 다르게 해석될 위험이 컸기에 무산됐다. 또한 머리에 센서를 몰아넣을수록 무게중심이 올라가 좁은 거리에서 사용자에게 위압감을 준다는 점도 한계였다. 결국 머리를 없애고 ‘시선’만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듀스는 손과 하부 구조도 실용주의를 택했다. 다섯 손가락 대신 세 손가락 구조를 채택해 파지 기능은 유지하면서 복잡도·유지보수 부담은 낮췄다. 하부 역시 화려한 보행 대신 안정적인 베이스를 택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넘어지지 않는 안정성이 기술적 난도보다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실생활 침투를 위한 현실적 타협, 겉모습보다 '속' 꽉 찬 설계의 분기점
Q. 다양한 실제 공간에서 활약을 예고한 로봇인데.
A. 처음부터 기능보다 인상을 먼저 본 건 아니다. 그런데 서비스 공간은 사용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바로 반응하는 환경이라, 결국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중요했다. 무인 로봇 카페 자회사 ‘라운지엑스(LoungeX)’ 같은 오픈형 공간에서 확인해 보니, 헤드리스(Headless) 구조와 최소한의 시선 체계는 오히려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팔이 커 보인다는 반응이 있었고, 그 피드백이 어깨 두께와 몸통 비례를 다시 조정하는 계기가 됐다.
Q. 초기 디자인 판단과 이후 구조 설계 과정에서의 합의점이 있었나?
A. 디자인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내기로 한 결정은 설계 단계에서 배선 최적화, 간섭 방지, 유지보수성 확보라는 실질적인 과제로 이어졌다. 한때 팔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골조(Frame) 노출 구조도 검토했으나 상용 제품으로서의 한계가 명확했다. 전선과 프레임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특정 동작 시 장력 문제와 배선 간섭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터의 배치 방향을 틀고 배선 경로를 내부로 완전히 숨기는 구조 변경을 단행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정리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조립 편의성과 사후 관리 효율성이라는 제품의 기본기를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Q. 왜 두 다리가 아니라 바퀴(Wheel) 기반 모바일 매니퓰레이터 형태인지?
A. 두 다리 보행은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많은 구조인 건 맞다. 다만 서비스 현장에서는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 된다. 기술 난도와 개발 기간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실제 공간에 바로 들어가야 하는 제품이라면 안정성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단순히 이동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넘어지지 않는 구조를 우선한 이유다.
첫인상 설계 역시 실전 지향적 기준을 따랐다. 듀스는 불필요한 감정 연출을 배제한다. 표정의 가짓수를 늘려 혼란을 주기보다, 시선의 방향과 예고된 팔 움직임으로 기체의 의도를 전달하는 식이다. 먼저 동작 직전 시선이 먼저 목표를 향하도록 설계했다.
이어 휴지(Idle) 상태의 팔을 사용자의 시야 안에 두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얼굴 표정보다 '동작 예측 가능성'이 더 큰 안전 신호라는 판단에서 기인했다. 본체 색상 또한 흰색·회색을 기조로 하되, 비상정지 및 전원 버튼에만 주황색 포인트를 남겨 직관적인 시인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외형 설계 전략은 하드웨어 구조 설계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김병수 구조 설계 파트장은 “로봇이 매장 환경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가를 핵심 지표로 꼽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구현 난도가 비교적 낮은 단일 팔 대신 양팔 구조를 택한 이유도 현장에 있다. 컵홀더 체결, 빨대 삽입 등 서비스 공간의 실질적 작업은 두 팔의 협응 없이는 품질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가 주목한 지점이다.
엑스와이지 자체 제작 데이터 수집 장치 ‘글러브엑스(GloveX)’ 역시 같은 철학을 공유한다. 김민서 연구원은 이 기기에 대해 “외부 인프라 없이 단일 착용형(Wearable) 기기 안에서 데이터 수집·처리·저장을 완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글러브엑스가 유연한 소재를 적용하는 대신 딱딱한 외골격(Exoskeleton) 구조를 채택한 이유는 데이터의 '무결성(Integrity)' 때문이다. 학습에 즉시 투입 가능한 정교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손동작의 미세한 흔들림을 물리적으로 잡아줄 기구학적 강성이 필수적이었다는 분석이다. 몸체를 먼저 정립하고, 그에 맞는 행동 데이터를 정교하게 추출하는 입력 구조를 독립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기능은 데이터를 따른다
Q. 실제 공간에서 나온 반응 가운데, 외형 수정으로 이어진 피드백이 있을 거 같은데.
A. 가까운 거리에서 로봇을 보는 환경에서는 작은 비례 차이도 크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팔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는 반응이 반복됐고, 그 피드백이 어깨 두께와 몸통 비례를 다시 조정하는 계기가 됐다. 보기 좋은 형상을 만드는 문제라기보다, 낯섦과 위압감을 줄이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Q. 듀스가 처음부터 겨냥한 작업 시나리오를 구체화한다면?
A. 실제 공간에서 필요한 작업을 바로 구현하는지를 먼저 타깃했다. 매장에서 비어 있는 물건을 채우고 방향을 맞추는 상품화(Merchandising)을 비롯해, 정리정돈, 청소 등 반복되지만 상황 변수도 많은 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시나리오를 놓고 보면 몸체 구조, 양팔 설계, 입력장치까지 함께 설계해야 하는 당위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Q. 글러브엑스를 듀스 몸체와 별개의 독립적 장치로 설계한 전략적 이유가?
A. 듀스의 물리적 하드웨어를 정립한 뒤, 수행할 행동 모델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학습 가능한 데이터로 치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글러브엑스는 수집·처리·저장의 전 과정을 단일 장치 안에서 완결하는 ‘입력 인프라’로 설계됐다. 이렇게 몸체 설계와 행동 데이터 수집 구조를 이원화함으로써, 특정 로봇에 종속되지 않는 범용성을 확보했다. 동시에 실제 서비스 현장 작업으로 이어지는 학습 경로(Training Path)를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기술적 과시를 멈추고 현장의 생존을 고민할 때,
‘볼거리 기계’가 아닌 ‘필요한 도구’가 되는 로봇
그것이 실전형 로봇 설계의 시작
헬로티 최재규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