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물류 창고, 개발자로 가득 찬 회의실...아직도 많은 산업 현장에서 여성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묵묵히, 때로는 거침없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듣다’는 남성이 다수인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매달 한 명씩 만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고 배우며 성장해온 진짜 이야기를 전합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AI 전문 기업 바이브컴퍼니에서 홍보·마케팅을 총괄하는 이찬미 책임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데 유독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기술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AI 전문 기업 바이브컴퍼니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총괄하는 이찬미 책임. 스스로를 ‘테크 마케터’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딱딱하고 어려운 기술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기술이 재미있었던 사람
이찬미 책임의 전공은 AI도, 컴퓨터 사이언스도 아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기술 쪽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과거 비전 AI 분야에서 반도체 검사 솔루션과 스포츠 영상 분석 기술을 다루면서 지도학습이나 데이터 증강 같은 AI의 기초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글로벌 기업의 체험 마케팅 프로젝트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들과 소통했던 경험도 지금의 자산이 됐다.
“AI 기업에서 일하면 좋은 점이 있어요. 남들은 시간을 따로 내서 뉴스를 찾아보고 공부해야 하는 걸, 저는 업무하는 도중에 다 익히게 되거든요. 모르면 옆에 엔지니어한테 바로 물어볼 수도 있고요.”
커리어를 쌓으면서 품게 된 꿈은 ‘테크 에반젤리스트’였다. 어려운 기술을 쉽게 풀어내어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 해외의 한 테크 에반젤리스트가 강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꼭 AI나 테크 쪽으로 하겠다는 집중적인 목표라기보다는, 이 산업의 방향성을 보고 이쪽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누군가에게 어려운 기술이 저한테는 재미있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녀가 말하는 “기획의 밀도”를 높이는 법은?
바이브컴퍼니에 합류한 지 약 3년. 그녀가 요즘 가장 집중하는 것은 AI를 활용해 마케팅 기획의 정밀도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핵심 도구는 자사 서비스인 썸트렌드 MCP다. LLM에 실시간 소비자 데이터를 연결하는 프로토콜로, 올해 3월에 새롭게 출시됐다.
“전략을 세울 때 누구나 데이터를 보지만, 실무에서 마주하는 세부적인 결정을 내릴 때까지 확실한 근거를 갖기는 쉽지 않아요. 이전에는 ‘요즘 이게 트렌드라던데?’라는 주변의 말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AI가 실시간 데이터를 확인해서 사람들이 어떤 포인트에서 열광하는지 짚어주죠.”
최근 브랜드 협업을 검토할 때도 이 워크플로우를 활용했다. 직관적으로 알고 있던 인지도 순위는 데이터와 일치했지만, 언급량의 격차나 전년 대비 성장 곡선의 기울기는 예상과 달랐다. “순위는 같아요. 여기가 1등이고 여기가 2등인 건 아는데, 그 사이의 세밀한 차이를 파악하는 건 분명 어려워요. 예를 들어 성장률이 예상보다 가파르다든지, 둔화된다든지 등에 대한 것인데 이런 걸 데이터로 확인하면 기획의 방향이 달라지거든요.”
AI의 사고방식을 리드하는 마케터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AI 툴을 쓰는 것이 아니라, AI가 어떻게 학습하는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과거 광고는 키워드 단가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AI가 최적화한다. 이때 마케터가 설정하는 ‘전환 가치’가 곧 AI 학습의 가중치가 된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학습시킬지 마케터가 정교하게 설계해야 AI 엔진이 정확한 목적지를 향해 달릴 수 있어요. 원리를 모르고 습관적으로 하는 것과, 이해하고 하는 것은 결과가 달라요.” 단순히 툴을 쓰는 수준을 넘어 AI의 사고방식을 리드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지향하는 전문성이다.
“이것도 될까, 저것도 될까” 작은 자동화에서 시작된 변화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그녀가 AI를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인 계기는 구글 앱스크립트를 활용한 소소한 자동화였다. 예를 들어 기업 문의가 들어오면, AI가 해당 기업의 산업군과 규모 같은 기본 정보를 자동으로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주는 식이다. 예전에는 매번 직접 검색하고 확인해야 했던 일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맛을 한번 보니까 ‘이것도 될까, 저것도 될까’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데이터 분석부터 전략 수립, 콘텐츠 발행까지 워크플로우를 연결해서 쓰고 있어요.” 그녀가 기술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거렸다. 본인 이야기를 꺼낼 때의 조심스러움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꽃꽂이와 요가, 그녀가 AI에서 벗어나는 시간
업무 시간 내내 듀얼 모니터 한쪽에 AI를 띄워놓고 일한다는 그녀의 취미는 의외로 아날로그였다. 바로 꽃꽂이와 요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빠른 흐름에 휩쓸려 가다가, 회복하는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손을 쓰고 자연과 함께하는 쪽으로 끌리더라고요.” AI에 누구보다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이, 쉬는 시간만큼은 디지털과 철저히 거리를 둔다. 그 균형 감각이 오히려 업무의 몰입도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맛을 보는 게 시작이에요”
AI를 잘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물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AI가 발전하는 속도는 업계에 있는 사람들도 벅찰 정도예요.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를 다 따라가려고 하면 진짜 힘들어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작은 것부터,내 업무에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비효율적인 것 하나를 AI로 바꿔보는 거예요. 그 맛을 한번 보면 ‘이것도 될까, 저것도 될까’ 하게 되고, 점점 커져요.” 오는 5월,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이벤트 제작을 위해 AI를 활용하는 여러가지 경우를 인터뷰 중 설명하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 말미 AI 시대 마케터의 본질에 대해서도 분명한 생각을 전했다. “AI 시대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결정을 이끌어내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건 기본이지만, 결국 소비자를 깊이 이해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인간적인 서사로 풀어내는 일이 마케터의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Mini Profile
이찬미 | 바이브컴퍼니 비즈니스전략팀 책임 | MBTI: ENTP
“다들 J인 줄 알아요. 일할 때는 계획적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본성은 P입니다. 여행 갈 때도 계획 안 세우고 가요.”
다음 호에서 또 다른 업계의 그녀를 만나봅니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