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동산 상담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전세가 사라지는 건가요?”였다. 금리 급등과 역전세 공포가 뒤섞이며 집주인들은 월세를 선호했고, 세입자는 높은 보증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월세로 이동했다.
그러나 최근 상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30대 직장인 C씨는 “전세가 다시 오르고 있어요. 월세보다 전세가 더 유리해 보이는데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불과 1년 만에 전세 시장의 흐름이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월세로 이동했던 수요가 다시 전세로 돌아오고, 전세 가격이 바닥을 찍고 반등하면서 시장은 조용하게 다음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세의 반격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월세 중심 구조가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인지, 그리고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살펴본다.
전세는 죽지 않았다: 반격의 시작은 수요가 아니라 구조에서 비롯됐다
전세가 다시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전세 제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금융 시스템으로, 금리가 오를 때 약해지고 금리가 다시 안정될 때 강해진다. 월세 전환율이 높아지면서 “월세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전세의 핵심 경쟁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입자는 목돈을 맡기고 주거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집주인은 대출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금리가 고점에서 안정되기 시작하면 전세 수요는 자연스럽게 되살아난다. 2024년 말부터 월세 부담이 커진 2030 세대가 다시 전세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전세 강세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전세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전세값 반등은 이미 시작됐다
서울 강서·성동·송파를 비롯해 경기 과천, 성남, 고양 등 주요 지역에서 전세가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2024년에 크게 하락했던 단지들이 2025년 들어 수백만 원씩 회복하고, 일부 단지는 전세금이 1억 가까이 올라 전 고점 대비 손실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 인천 연수·남동, 경기 양주·김포 등 조정폭이 컸던 신축 단지들은 전세 대기 수요가 붙으며 급감했던 전세 매물이 소진되고 있다. 전세가 반등은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시장 심리가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는 매매보다 변동성이 작고 회복 속도가 빠르며, 반등 신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영역이다. 전세가 오르면 매매는 반드시 뒤따른다. 시장은 지금 그 전형적인 패턴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월세 시대가 끝나는가: 답은 “부분적으로 그렇다”
많은 전문가들은 월세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시장은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월세는 더 이상 세입자에게 유리한 선택이 아니다. 급격히 오른 월세 부담, 관리비 상승, 금리 안정은 전세의 매력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월세 시대가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 1인 가구 증가, 단기 거주 수요, 직주근접 선호 등 구조적 요인은 월세의 기반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대세 흐름은 분명 바뀌기 시작했다. 월세 중심 구조가 약해지고 전세의 비중이 다시 늘어나는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시장은 극단에서 극단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월세 부담이 커지고 전세 회복 속도가 빠르면 시장의 무게 중심은 자연스럽게 전세 쪽으로 기울게 된다.
전세의 반격은 매매 반등의 전조다
전세 반등은 독립적인 현상이 아니다. 매매 반등의 첫 번째 신호다. 과거 모든 부동산 사이클에서 전세가 먼저 움직였고, 그로부터 3~9개월 사이 매매가 반등이 뒤따랐다. 전세가 상승은 매도자의 부담을 줄이고, 급매를 줄이며, 매수자의 기대심리를 높인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그 패턴이다. 급매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전세가 반등하며, 일부 단지는 이미 호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직 거래량은 적고 심리는 조심스럽지만 시장은 숫자보다 먼저 움직인다. 전세의 반격은 단순한 가격 회복이 아니라 사이클 전환의 전조다. 하락의 마지막이 아니라 상승의 첫 신호가 시장에서 켜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 실수요자와 투자자가 해야 할 일
전세 반등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매매 반등을 놓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타이밍을 재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을 정비하는 일이다. 실수요자라면 전세와 매매의 비용 차이를 비교해야 한다. 전세가 빠르게 회복되는 지역은 매매 전환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결정을 미루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다. 투자자라면 전세 수요가 강한 지역과 입주 물량이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을 재점검해야 한다.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이어질 공급 절벽은 전세와 매매 모두에 강한 압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의 반격은 일시적인 반등이 아니라 구조적 회복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회복의 파동은 곧 매매 시장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시장은 다시 한번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고 있다.
이지윤 부동산전문기자/작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