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규가 간다] “로봇은 '디지털 인력'”...LG CNS, 로봇을 춤추는 기계에서 ‘일하는 숙련공’으로

2026.05.07 19:37:24

최재규 기자 mandt@hellot.net

마이크는 사람 손을 거치지 않았다. 로봇이 단상 앞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해 연사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이 장면은 쇼케이스·데모 무대에 특화된 로봇의 유연함을 뽐내는 시연이 아니었다. 로봇은 전시장 한구석을 차지한 정적인 기계가 아니라, 업무 흐름 속에 실시간으로 개입하는 실행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준 선언적 장치였다. 로봇이 각종 현장 내 '디지털 인력'으로 신분이 바뀐 순간이다.

 

국내 디지털 전환(DX) 기술 업체 LG CNS가 새로 설계한 로보틱스 전환(Robotics Transformation 이하 RX)의 초점은 로봇 한 대의 물리적 성능보다 높은 가치다. 대신 로봇을 ▲가르치고 ▲검증하고 ▲배치하며 ▲실전 운영하는 과정의 ‘지능적 지휘 체계’에 무게를 둔 모양새다.

 

현신균 사장은 “차세대 산업 현장의 성과는 로봇 하드웨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로봇이 실제 업무의 맥락을 이해하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그 임무를 완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짚었다. 하드웨어가 아닌 '운영 시스템'이 RX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로봇 산업은 걷고, 들고, 춤추는 ‘쇼’를 통해 존재감을 증명해 왔다. 하지만 현장의 요구는 이제 냉혹한 단계로 진입했다. 로봇이 작업을 배정받고, 완수하고, 다음 공정으로 자연스럽게 인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로봇 한 대가 멈췄을 때 다른 로봇이 즉각 업무를 승계하는 ‘유연함’, 기존 설비 및 작업자와의 매끄러운 ‘공조’.

 

회사가 지향하는 RX의 핵심은 바로 이 ‘현장의 흐름을 끊지 않는 것’에서 시작될 전망이다.

 

전시장 속 기계에서 현장 ‘인력’으로...로봇의 신분 전환 선언한 LG CNS

 

이진호 LG CNS 스마트물류·시티사업부 전무는 RX를 자동화(Automation)의 다음 단계로 규정했다. 기존 자동화가 정해진 동작의 반복이었다면, 피지컬 AI(Physical AI) 기반 로봇은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한 뒤 작업을 수행하는 구조로 이동한다는 설명이다. 이때 피지컬 AI는 AI가 물리적 환경을 직접 학습·적응해, 로봇·설비가 실제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과 협력하도록 구현하는 기술 방법론이다.

 

주목할 점은 로봇을 바라보는 산업계의 시선이 변했다는 점이다. 이 전무는 “로봇이 작업자와 비슷하게 걷거나 춤추는 모습에 감탄하던 ‘쇼케이스’의 시대는 저물었다”며 “이제 무게중심은 제조·물류 현장에서 로봇이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실전 적용’으로 옮겨갔다”고 역설했다.

 

이 전무가 짚은 변화의 요소는 다섯 가지다. ▲현장 적용 ▲데이터 ▲월드 액션 모델(World Action Model) ▲피지컬 AI 구조 변화 ▲풀스택 확보 경쟁이다. 이 가운데 반복해서 강조된 축은 현장 데이터다. 로봇이 똑똑해지기 위한 재료는 양질의 작업 데이터고, 데이터 확보 속도와 품질이 로봇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구조라는 것.

 

 

그가 지목한 로봇 투입 영역도 명확했다. 전기·전자 공정, 특히 인쇄회로기판(PCB) 적재함인 빈 매거진(Magazine) 투입 구간이다. 여기에 이차전지 공정에서 가루 형태의 원재료를 담는 폴리콤백(Polycom-bag) 취급, 조선 현장의 용접(Welding) 보조 등 사람이 기피하는 고강도·유해 공정이 1순위다.

 

LG CNS는 이 과정을 단순한 장비 도입이 아닌, 앞선 ‘디지털 인력’ 관리의 문제로 정의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가 로봇별 역할을 할당하고 성과를 관리하면서도, 필요시 재교육까지 시키는. 말 그대로 로봇을 ‘인력’으로 다루는 지능형 작업 체계인 것이다.

 

사람이 기피하는 그곳이 로봇의 ‘진짜 무대’?

 

이렇게 로봇을 인력으로 정의했다면, 다음 과제는 그들을 어떻게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숙련공'으로 만드느냐다. 로봇은 상자에서 대상물을 꺼내자마자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완성형 존재가 아니다. 현장의 복잡한 변수와 돌발 상황을 학습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LG CNS는 이 교육과 훈련의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피지컬웍스(PhysicalWorks)'라는 차세대 플랫폼의 첫 번째 엔진을 가동했다. 그 첫 기술 체계가 바로 ‘피지컬웍스 포지(PhysicalWorks Forge 이하 포지)’다. 포지는 로봇 학습 데이터를 수집·정제하고,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을 학습·배포하는 플랫폼이다. 이름 그대로 로봇을 현장 업무에 맞게 단련하는 일종의 ‘가상 교육장’ 역할이다.

 

박상혁 LG CNS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기술적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한번 '춤추는 로봇'의 한계를 꺼내 들었다. 원격 조종으로 화려하게 움직이는 로봇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지만, 그 움직임이 곧장 생산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로봇 한 대에 사람 한 명이 붙어 조종하는, 이른바 원격 조작(Teleoperation) 방식으로는 산업 현장의 비용 구조를 맞출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로봇이 스스로 일하는 법을 배우고, 목적에 맞는 신체(Hardware)를 골라 스스로 움직이는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박상혁 CTO는 이 숙련의 과정에 필요한 기술만 120개 이상, 전문 인력 50명, 최소 1만 시간 이상의 물리적 시간이 투입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포지는 이 진입 장벽을 플랫폼으로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텔레오퍼레이션부터 시뮬레이션, AI 생성 데이터까지 한데 모아 '성공하는 동작'만 정교하게 걸러내는 과정을 자동화했다는 게 그 배경이다.

 

그는 “로봇의 뇌를 학습시키는 과정도 '원클릭(One-click)'으로 설계해 현장 투입 기간을 수개월에서 1~2개월 수준으로 단축했다”며 “실제 효과는 세탁 로봇의 경우, 추가 학습을 통해 작업 실패 횟수를 40% 이상 줄였고, 물류 로봇은 주문 처리량을 시간당 140개에서 165개로 끌어올렸다”고 내세웠다.

 

이처럼 로봇의 지능은 똑똑한 범용 모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현장의 결이 담긴 데이터, 즉 맥락(Context)이 확보된 범용 지능이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전문가 모델(RFM)’로 고도화될 때 실전 지능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다종·이기종 로봇이 ‘각자도생’하지 않는 이유

 

다음은 로봇의 실전 배치다. 피지컬웍스의 두 번째 카드인 ‘피지컬웍스 바통(PhysicalWorks Baton)’은 현장의 실무를 지휘하는 ‘작업 반장’ 역할을 수행한다. 제조사가 제각각인 다종·이기종 로봇을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한 점이 특징이다. 이후 작업을 배정하고, 최적 이동 경로를 설계하며, 실시간 수행 상태를 관제하는 지령실이다.

 

박상혁 CTO는 바통에 대해, 로봇을 위한 '인력 관리(Workforce Management)'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로봇 기기별로 따로 놀던 관제 사용자 화면(UI)을 하나로 통합한 플랫폼 형태인데, 박 CTO는 “이 플랫폼의 가장 큰 무기는 포용력”이라며 이는 그동안 산업 현장은 특정 브랜드의 로봇만 써야 하는 제약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제조사가 다르면 운영 시스템이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바통의 실제 UI. 통합 관제 화면(좌)와 AI 워크플로 빌더(우).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그에 따르면, 바통은 이 기술적 장벽을 허물었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들을 하나로 묶는 멀티 벤더(Multi Vendor) 환경을 지원하는 덕분이다. 여기에 두 발로 걷거나 바퀴로 이동하는 등 제각각인 로봇 형태, 즉 멀티 타입(Multi Type)의 기기까지 단일 시스템에서 제어한다. 브랜드가 다르고 족보가 다른 로봇들을 하나의 지령실에서 부리는 셈이다.

 

이 가운데 바통은 상위 시스템과의 결합 또한 경쟁력으로 부각된다. 전사적자원관리(ERP)·제조실행시스템(MES)·창고관리시스템(WMS) 등에서 도출된 작업 지시는 바통을 거쳐 각 로봇에게 배정된다. 명령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이 일을 끝냈는지, 도중에 막혔는지, 다른 로봇에게 업무를 넘겨야 하는지까지 과정을 관리하는 메커니즘이다.

 

사측이 실제 구현한 물류 워크플로는 이 구조를 직관화했다.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 비정형 물체인 비닐백을 집어 상자에 담으면, 자율주행로봇(AMR)이 이를 받아 운송한다. 이어 바퀴(Wheel) 기반 이동 로봇이 선반에 대상물을 적재하고, 사족 보행 로봇은 순찰 임무로 전환되는 식이다.

 

▲ 각 로봇이 순서대로 잇는 연속 공정. (촬영·편집 : 헬로티 최재규 기자)

 

여기서 회사가 내세운 핵심은 ‘작업 연속성’이다. 사족 보행 로봇이 순찰로 빠지면 기존의 이송 업무는 가용 가능한 다른 AMR로 인계됐다. 이때 바통의 UI에는 로봇 위치·상태는 물론, 현재 수행 중인 업무와 다음 예정 업무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로봇 네 대가 하나의 근무표가 로봇 사이를 매끄럽게 이동하는 장면이다.

 

“효율은 제조에서, 확장은 도시에서”

 

LG CNS가 가장 먼저 겨냥한 시장은 제조·물류다. 이 영역은 반복 작업의 비중이 높고 유해 환경 노출이나 인력난 같은 고질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생산성, 운영비, 장애 대응 시간이 명확한 숫자로 환산되는 시장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즉, 로봇 투입에 따른 투자수익률(ROI)을 계산할 수 있는 최적의 실전 연습장이라는 것이 사측 설명이다. LG CNS는 이미 물류, 전기·전자, 화학, 이차전지, 조선 등 주요 산업 플레이어와 20건 이상의 개념증명(PoC)을 진행 중이다. 현신균 사장에 따르면, 현장 성과가 가시화되는 시점은 향후 2년 내외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회사의 실전 배치 경험은 제조 담장 너머 도시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부산 에코델타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가 그 예다. 이곳에선 바리스타, 청소, 순찰, 짐 운반 등 각기 다른 임무를 가진 로봇이 바통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제조·물류가 효율·비용으로 검증되는 1차 시장이라면, 도시 서비스는 운영 주체, 안전 책임, 과금 방식까지 복잡하게 얽힌 고난도의 확장 시장이다.

 

결국 LG CNS가 내놓은 전략의 본질은 로봇이라는 기계를 많이 보급하자는 제안이 아니었다. 로봇을 현장의 실질적 인력으로 재정의하고, 그들에게 일 가르칠 ‘교육장’과 현장을 지휘할 ‘작업 책임자’를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시스템적 접근이었다. 포지가 가르치면 바통이 배치하고, 현장의 데이터는 다시 포지의 학습 재료로 돌아온다.

 

이와 관련해 현 사장은 “이 선순환이 반복될수록 로봇은 단순한 기계에서 믿음직한 인력으로 진화한다”고 말했다.

 

헬로티 최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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