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즈업] 인피니언, 업계 최초 차량용 RISC-V MCU 공개…"SDV 판 다시 짠다"

2026.04.22 16:12:12

김재황 기자 eltred@hellot.net

지난 20일, 서울서 국내 기자간담회 열어
인피니언 RISC-V 생태계 로드맵 발표

 

지난 20일,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 코리아가 국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RISC-V로 여는 차세대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 전략 발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 글로벌 1위 기업인 인피니언이 업계 최초로 차량용 RISC-V 기반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제품군 출시 계획을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개방형 아키텍처인 RISC-V를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정착시키겠다는 인피니언의 장기 전략과 실행 로드맵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맞춤형 양복처럼 설계한다"…왜 지금 RISC-V인가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최재홍 인피니언 코리아 오토모티브 MCU 사업부 기술총괄 부사장은 RISC-V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청중에게 쉽게 풀어내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RISC-V를 "기성복이 아닌 맞춤형 양복"에 비유했다. 기존 Arm 코어는 특정 업체의 라이선스에 종속된 고정된 규격이지만, RISC-V는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오픈 명령어 세트로서 필요한 기능만 골라 담고 불필요한 부분은 덜어낼 수 있는 모듈형 구조라는 설명이다.

 

 

최 부사장은 "자동차 산업이 지금 SDV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고 있다"며 "수십 개로 분산된 ECU가 중앙 집중형 컴퓨팅 아키텍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고성능·저전력·확장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코로나 시기 겪었던 반도체 수급난, 로열티 부담, 보안 사고 대응 지연 등은 모두 '특정 벤더 종속'이라는 뿌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주도권이 티어1에서 OEM으로 넘어가는 시대이기에 개방형 표준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그는 "자동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안전(Safety)과 보안(Security), 그리고 엔트리급부터 프리미엄까지 아우르는 확장성을 RISC-V가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며 "RISC-V는 새로운 대안을 넘어, 머지않아 자동차 반도체의 새로운 표준 언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트 오브 조이(Heart of Joy)"…BMW가 선택한 인피니언의 혁신

 

 

바통을 이어받은 토마스 뵘(Thomas Boehm) 인피니언 오토모티브 MCU 사업부 수석부사장은 2026년 현재 자동차 반도체 시장 점유율 36%, 전년 대비 4%p 추가 확장이라는 수치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이 압도적 지위가 25년 이상 쌓아온 장기 투자의 결실임을 강조하며, 자연스럽게 최근 가장 주목받는 협력 사례인 BMW '노이에 클라쎄(Neue Klasse)' 플랫폼으로 화제를 옮겼다. 특히 BMW가 차량의 중앙 컴퓨팅 유닛에 붙인 '하트 오브 조이(Heart of Joy)'라는 이름을 소개하며 "자동차로서는 흥미로운 이름이지만, 산업 전반의 거대한 변화를 한 단어로 압축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자동차가 기계적 정밀성으로 정의됐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견고함과 업데이트 가능성이 구매 결정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2026년 말 양산 예정인 BMW iX3에는 인피니언 부품만 200개 이상이 탑재되며, 고성능 MCU부터 네트워크 컨트롤러, 센서, 전력 반도체까지 차량 전반의 신경계를 인피니언이 책임진다.

 

뵘 수석부사장은 "이제 자동차는 분산된 ECU의 집합이 아니라, 바퀴 위의 고성능 연산 시스템"이라며 "존 아키텍처, 이더넷 기반 고대역 통신, 지능형 전력 분배라는 세 축이 동시에 재설계돼야만 진정한 SDV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유럽의 추가 사례들을 암시하며 "BMW는 그 시작일 뿐"이라는 말로 좌중의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2년 반의 베팅"…인피니언이 그리는 RISC-V 생태계 로드맵은?

 

뵘 수석부사장의 발표 후반부는 인피니언이 RISC-V에 '왜,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으로 채워졌다. 그는 "이미 2년 반 전부터 조용히 움직여왔다"며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내부 전략을 풀어놓았다.

 

2010년대 PC 시대의 x86, 2000년대 모바일 시대의 Arm, 그리고 같은 시기 인피니언이 독자 개발한 실시간 제어용 TriCore까지. 코어 아키텍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진화해왔고 SDV와 AI 정의 차량이라는 다음 파도에는 확장성·아키텍처 통제력·개방성이라는 세 조건을 모두 갖춘 RISC-V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인피니언은 이를 혼자 추진하지 않았다. 2년 전 보쉬, 노르딕, NXP, 퀄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함께 합작법인 퀸타우리스(Quintauris)를 설립해 차량용 RISC-V 코어 프로파일을 공동 정의하고, 지난해에는 실시간 애플리케이션용 프로파일을 이미 발표했다. 소프트웨어 생태계 측면에서도 벡터, 일렉트로빗, 로이소프트 등 주요 파트너사와 컴파일러·디버거·AUTOSAR·OS 포팅 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시프트-레프트(Shift-left)' 전략을 실현하는 가상 프로토타입(Virtual Prototype)이다. 실제 실리콘이 나오기 수개월 전부터 고객이 칩의 디지털 트윈 위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검증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과거 수주~수개월 걸리던 초기 구동 작업을 단 며칠로 단축시켰다는 것. 뵘 수석부사장은 "개발 주기가 5~7년에서 2~3년으로 급격히 짧아진 시장에서, 이 기술은 특히 아시아 고객들에게 결정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Arm과 싸우려는 게 아니다, 공존할 것"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30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기존 TriCore 기반으로 역량을 쌓아온 현대차그룹 등 국내 OEM들이 RISC-V로 전환해야 하는지, Arm의 최근 팹리스 전환 선언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퀸타우리스가 IP 라이선스까지 관리하는지 등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이었다.

 

뵘 수석부사장은 "우리는 Arm과 싸우려는 게 아니다. 인피니언 포트폴리오에도 Arm 기반 제품이 다수 있고, 두 아키텍처는 장기적으로 공존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RISC-V 투자는 2년 반 전 결정된 전략적 선택으로, Arm의 최근 행보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TriCore 고객 지원에 대한 우려에는 최재홍 부사장이 직접 나서 "AURIX EX 세대는 2035년까지 양산 계획이 잡혀 있다"며 단종 우려를 일축했다. 특히 한 기자가 "2027년 상용화가 정말 가능한가"라고 의구심을 제기하자, 뵘 수석부사장은 "이미 리드 고객과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고, 일부는 칩 구현 단계에 들어가 있다"며 "이것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피지컬 AI와의 연계에 대해서도 "자동차와 로보틱스 시장이 구조적으로 수렴하고 있으며, 현재 60개 이상의 엣지 AI 유스케이스가 이미 가동 중"이라며 확장 비전을 제시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 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이 스스로 게임의 룰을 바꾸겠다는 선언의 자리였다. Arm 중심의 폐쇄적 IP 생태계에서 개방형 RISC-V 표준으로의 전환은 자동차 산업 전체의 설계 주권과 혁신 속도를 재정의하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라는 강력한 SDV 추진 세력을 보유한 한국에서 이번 발표가 이뤄졌다는 점은 인피니언이 한국을 단순 소비 시장이 아닌 차세대 표준을 함께 만들어갈 전략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RISC-V라는 새로운 도로 위에서 인피니언이 어떤 속도로 달려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헬로티 김재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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